윤정용 아주대 첨단ICT융합대학교학팀장(교육학 박사)
노란 은행잎이 캠퍼스를 물들이는 가을이 오면 아주대학교에는 여러 언어와 색이 한데 어우러진 축제가 열린다.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유학생들이 고향의 음식과 문화를 소개하고, 각국의 부스마다 다양한 언어가 오가며 활기를 띤다. 말 그대로 작은 지구촌을 보는 듯하다. 올해로 28회를 맞은 ‘아주 인터내셔널 데이(Ajou International Day)’는 대학의 역사이자 국제화를 상징한다. 한 공간에서 70개가 넘는 나라의 문화가 서로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국제화가 단순히 숫자나 양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가치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지난 20년간 약 17배 증가해 2024년 20만 명을 넘어섰다. 해외 대학과의 교육 협력도 활발해져 단기 연수나 교환학생과 같은 전통적인 교류 프로그램을 넘어 복수학위나 공동학위로 확장됐고, 관련 제도 개선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최근에는 외국대학에서 국내 대학의 교육과정과 학위를 제공하는 사례도 있어 국제화의 영역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외형을 보면 확실히 국내 대학들의 국제화는 지속적인 발전을 이뤘고, 이러한 성장은 한국 대학 전반의 글로벌 인지도 제고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내실의 성장은 또 다른 얘기다. 이민정책연구원의 보고에 의하면 2024년 기준 국내 대학(전문대학 포함)의 절반 이상이 10개국 미만의 유학생을 유치해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 심지어 유학생의 중도 이탈로 대규모 불법체류가 발생한 사례도 있다. 연구 역시 활발한 국제협력에도 불구하고 QS 세계대학평가가 국제공동연구의 다양성 지표를 도입하자 국내 대학 순위는 일제히 하락했다. 영어 강의도 평가지표에서 빠지자 축소되거나 일부는 이름만 영어 강의로 남아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예도 있다고 한다. 해외 대학과의 파트너십 또한 실질적 교류는 없고 명목상으로만 유지되는 ‘종이 협정’도 대학마다 적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단순히 대학의 의지나 실천 부족만으로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수나 비율 중심의 평가지표, 재정 부담, 수도권 쏠림, 국내외 유학생 유치 경쟁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양적 국제화’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연구 협력 측면에서도 연구 성과나 연구비 구조의 특성, 인센티브 체계, 각국의 협력 여건 차이 등으로 국제공동연구의 폭과 다양성을 확장하는 데 제약이 있다. 결국 대학의 자발적 선택보다는 구조적 요인들로 인한 결과라는 측면이 크다. 그럼에도 이제는 그간의 성장을 발판으로 한 단계 더 고도화된 국제화를 고민해야 할 때이며, 이를 위해 대학 국제화의 본질과 가치를 되짚어 볼 만하다.
대학 국제화의 보편적 정의는 교육과 연구, 봉사라는 대학의 역할 전반에 국제적 관점을 통합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국제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연결하고 그 만남 속에서 긍정적 경험을 확장하는 일이다. 다른 문화적·학문적 배경을 가진 학생이나 연구자가 만나 사고의 폭을 넓히고, 지식이 순환하며 협력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국제화의 진정한 가치가 창출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치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협정의 수보다 협력의 깊이에 무게를 둬야 한다. 실질적 성과가 없는 협정은 대학의 역량을 분산시키고 관리 부담만 늘린다. 반면 교육과 연구에 있어 지속적인 교류가 발생하는 파트너십은 비록 수는 적을지라도 대학의 신뢰도와 경쟁력을 높여 준다. 협정 대학과의 교류 현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교류 성과 관리, 분야별 핵심 협력 대학을 설정하는 전략적 파트너십, 공동 교육이나 연구를 지원하는 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보다 밀도 있게 파트너십을 관리할 수 있다.
둘째, 국제화는 대학의 일상적인 교육 경험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정규수업에서의 국제 공동수업, 글로벌 프로젝트, 외국인 학생을 위한 학사·언어 지원, 지역 사회와 기업과의 연계 프로그램 등은 학생 경험을 국제적 맥락과 자연스럽게 연결해 준다. 이를 통해 국내 학생과 유학생 모두에게 의미 있는 학습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셋째, 국제화는 특정 부서만이 담당하는 업무가 아니라 대학 전체의 과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교수와 직원, 학생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대학 차원의 비전과 정책이 부서 간 긴밀하게 연결될 때, 국제화는 단발성 사업이 아닌 대학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수 인력과 예산, 제도적 정비 등 대학 전체 차원의 시스템 정비와 문화 정착이 필요하다. 이러한 필수 기반이 부족하면 국제화는 늘 바쁘고 피곤한 구호로 남을 뿐,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없다.
끝으로 국내외 대학평가 방식 및 국가 차원의 지원 체계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국제화의 깊이와 다양성을 반영하는 지표의 개발, 지역 사회와 대학이 협력하는 국제화 모델에 대한 재정적 지원, 우수 외국인 학생의 취업과 지역 정착을 돕는 제도 개선 등은 대학이 장기적 관점에서 국제화를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아주 인터내셔널 데이’의 풍경을 떠올려 보면 사실 국제화는 그렇게 복잡한 개념이 아니다.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만나 배우고 협력하며 성장하는 경험,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지속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와 문화가 바로 국제화의 핵심이다. 이러한 이해가 대학과 지역 사회, 국가 차원에서 공유된다면 대학은 세계와 연결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