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문 한국연구재단 중앙RISE센터장

김봉문 한국연구재단 중앙RISE센터장.
김봉문 한국연구재단 중앙RISE센터장.

오늘날 대한민국의 많은 지역이 ‘소멸’이라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인구 감소와 청년층의 지속적인 유출이 지방의 산업·문화·교육 기반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가운데, 지역대학의 약화는 단순한 교육 환경 문제를 넘어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협하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제 지역혁신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과 국가의 생존이 걸린 필수 과제가 됐다.

다행히 정부도 이 위기 인식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지역과 대학 간의 연계·협력을 강화하고, 교육·연구·산학 협력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지역혁신중심대학지원체계(RISE)’를 구축, 운영 중이다. 여기서 핵심은 지역대학이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 인재를 육성하고, 연구 성과를 산업화하며, 지역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지식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지역대학이 지역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정부는 동시에 수도권 집중 현상을 완화하고 전국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치분권에 기반한 5극 3특 중심의 국가균형성장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 전략은 전국을 5대 권역과 3개 특화 축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로, 각 지역이 고유한 산업·문화·인재 기반을 갖춘 자립형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대학은 지역산업을 뒷받침하는 허브이자 혁신의 거점으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해외의 성공 사례들은 이 같은 정책방향의 타당성을 충분히 입증한다. 일본은 지역대학·기업·지방정부 간 연계를 강화해 지역경제 재건을 도모하는 ‘지역창생’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나가사키현은 지역대학을 중심으로 관광과 바이오 산업을 성공적으로 육성해 청년 일자리 창출에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핀란드 오울루시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노키아의 몰락 이후 오울루시는 대학·연구기관·스타트업이 연계된 혁신 클러스터를 구축해 ICT 기반의 신성장 모델을 창출했다. 이처럼 지역혁신은 개별 지역만의 문제를 넘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인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구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역혁신의 실행력이다. 이를 위해 다음 세 가지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첫째, 지역대학을 핵심으로 하는 지·산·학·연 연계 플랫폼을 전면 활성화해야 한다. 지역의 다양한 혁신 자원이 공유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대학의 연구개발 결과가 사업화를 통해 지역 기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지산학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해양·바이오·에너지·문화콘텐츠 등 지역 특화 산업에 최적화된 맞춤형 인재 양성에 집중해야 한다.

둘째, 지자체-대학-기업-주민이 참여하는 포괄적 거버넌스 모델을 정착시켜야 한다. 단기적 프로젝트에 의존하기보다는 지역의 혁신 주체들이 공동의 비전과 목표를 공유하는 장기적 협력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예컨대 다양한 지역혁신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지역별 RISE위원회를 중심으로 지역 R&D 투자, 창업 지원, 생활 인프라 개선 등이 통합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셋째, 청년층의 지역 정착을 위한 실질적인 생활 여건 개선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일자리만 제공하는 것을 넘어 주거·문화·교통 등 생활 전반의 질을 향상 시켜야 한다. 지역대학 졸업생들이 ‘굳이 서울로 가지 않아도 충분히 질 높은 삶을 누릴 수 있는 지역’임을 체감할 때, 비로소 진정한 지역혁신이 완성될 것이다.

지역혁신은 더 이상 중앙정부의 일방적 지원만으로는 불가능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지방정부·지역대학·기업·주민이 협력해 자생적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대학이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 파트너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때, 우리는 지역소멸의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지역혁신은 바로 이 ‘동반 성장’의 실천 속에서 찬란하게 피어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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