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근 충남삼성고 교사

권용근 충남삼성고 교사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단어인 ‘문해력(文解力)’이 등재돼 있다. 이와 유사한 단어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하는 문식성(文識性, Literacy)이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이라는 단어와 결합해 ‘디지털 문식성(디지털 리터러시)’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기술의 변화에 따라 문식성의 개념도 변화하고 있다.

문해력 혹은 문식성은 인간의 정신적 활동과 연관되는 속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신적 활동 중, 정수(精髓)는 무엇일까.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심오한 학문이나 예술을 들 수 있다. 문맹률이 높았던 과거에는 글자를 익히는 일이 문맹 탈출의 첫걸음이었다. 글자를 익히면 읽을 수 있고,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기 생각을 글로 적고 싶어진다. 아마도 글을 쓴다는 것은, 비교적 높은 수준의 정신적 활동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글쓰기조차 AI에 의해서 대체되고 있다. 대부분 학생은 막막한 과제를 앞에 두고 AI의 도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편하지만 윤리적 문제가 걸려있고, 최종 산출물에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제 AI를 위시한 디지털 환경의 변화는 엄연한 현실이 됐다. ‘기술 발전에 따른 디지털 전환’은 ‘감염병과 기후 위기’와 더불어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첫 번째 개정 배경으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래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교육과정 개정의 근거가 되고 있으며, 교실에서 교과서를 활용한 지식 전달 위주의 수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일종의 위기감도 감지되고 있다. 이제 새롭게 문식성을 정의할 때가 됐다. 어떻게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물론 AI의 대중화라는 글로벌 트렌드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AI와 문식성을 결합해 간략하게 표현하면 ‘AI 리터러시’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EC)와 OECD가 공동으로 출범해 제작한 특정 사이트에 이 AI 리터러시에 대한 내용이 PDF 파일로 잘 정리돼 있다. 파일의 제목은 ‘AI 시대 학습자들의 역량 강화(Empowering Learners for the Age of AI)’이며, 부제로 ‘초·중등 교육을 위한 AI 리터러시 프레임워크(An AI Literacy Framework for Primary and Secondary Education)’가 달려 있다. 이때 프레임워크(framework)는 어떤 일에 대한 판단이나 결정 따위를 위한 틀을 말한다. 원문에 제시된 AI 리터러시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AI가 정보 접근, 소통, 의사 결정 방식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면서, AI 리터러시는 일상생활을 탐색하고, 목적을 가지고 창작하며, 미래의 학습과 일자리를 준비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AI 리터러시는 학습자와 교육자가 AI가 제공하는 위험과 기회를 이해하고, 그 사용에 대해 의미 있고 윤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AI가 자신의 삶, 교육,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미래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그러나 AI 리터러시가 학습을 변화시키는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AI 리터러시가 무엇이며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공통된 이해 부족’ ‘AI가 다양한 교과 영역에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불확실성’ 등의 장애 요소를 해결해야 한다.”

이 자료를 기반으로 유추해 보면, 아직은 교육 전반에서 AI 리터러시에 대한 명확성이 다소 부족한 상태인 듯하다. 그러나 이미 세상은 변했고, 또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교육의 본질을 굳건히 지키되 유연하게 시대의 흐름을 타야 한다. 교육에 종사하는 교육자들은 ‘AI 리터러시’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이제 새로운 모습의 문식성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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