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 커뮤니티에는 개강을 맞아 교재 제본에 대한 학생들의 문의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학교 주변 제본 할 수 있는 곳’부터 ‘전공 서적 단체 제본 하실 분’까지 학생들 사이에서 전공 교재 제본 정보가 활발하게 넘나들고 있는 것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하지만 제본에 따른 저작권 위반을 우려하는 글은 단 한 건도 찾아 볼 수 없다. 신입생 이모씨(20)는 “전공 서적 제본이 불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며 “강의 시간에 교수님도 제본하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지 학생들은 저작권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대학이 저작권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공 서적을 단체로 제본하거나 실습에 이용하는 프로그램을 불법으로 복사해 공유하는 등 대학에서 저작권 위반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른 대학 교수의 강의 서적을 베껴 자신의 강의 교재로 출판해 사용한 교수에게 법원이 민사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판결도 나왔다. 이에 대학가 전체에 만연한 저작권 불감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대학이 저작권 예방 교육을 사전에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는 전공 서적 제본판을 들고 다니는 학생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전공 서적 무단 복제가 학내외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학과 별로 학교 인근 복사집 한 곳을 지정, 매학기 마다 전공 서적 제본판을 공동구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대학 3학년 이모씨(22)는 “전공 서적이 비싼 편이라 많은 학생들이 제본을 통해 절반 이하 가격으로 구매하고 있다”며 “중앙도서관에서 대출한 도서를 학내 복사 코너에서 제본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저작권보호센터가 전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출판물 불법복제를 합동 단속한 결과 246건, 5천 761점의 불법 복사물을 적발했다. 특히 적발한 불법 복제물 중 교내에서 적발된 물량이 전체의 33%인 1천 927점에 달하는 등 대학에서 저작권 위반은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인문사회계열이 전공 서적을 무단으로 제본 한다면, 이공계열은 불법 프로그램 사용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형성됐다. 서울의 모 대학 건축학과에 다닌다고 소개한 한 학생은 교수들이 높은 수준의 작품을 원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에 맞춰 최신 프로그램을 불법으로 다운 받아 공유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 학생은 “Auto CAD 2010 LT나 Mac 9.0 등 공대생들이 작품을 만들 때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이 수 백 만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학생 신분으로는 도저히 구입할 수 없다”며 “하지만 교수들은 이 프로그램을 사용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작품으로 나눠서 성적을 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법으로 다운 받고 친구들과 공유하고 있다. 대학에서 불법 프로그램의 사용이 허용되고 거의 의무시 되고 있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 교수의 강의 교재를 베껴 출판한 교수에게 법원이 민사상 책임을 물은 경우도 있다. 교수 사회에서도 저작권 위반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A교수는 자신이 공학부 관련 교재를 집필해 판매한 뒤, B교수가 비슷한 내용의 교재를 제작해서 판매하자 소송을 냈다. 해당 재판부는 공학 학문 관련 교재 시장과 저작권 침해 등 불법 행위에 해당되는 부분의 비율 등을 고려해 재산상 배상액 500만원, A교수와 B교수의 직업,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해 위자료 500만원을 산정, 총 1000만원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A교수가 국내외 자료를 종합해 나름의 노동력과 비용을 들이고 자신의 전문지식을 활용해 오류가 있는 부분을 수정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며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도표나 수식, 기호라 사용한 서적이라도 저작권법 보호 대상”이라고 밝혔다.
대학가 전반에 걸쳐 만연한 저작권 불감증에 대해 김종원 상명대 저작권보호학과 교수는 대학 내에 저작권과 관련 된 자문 기구 설치와 교양 교과목을 개설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김 교수는 “대학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저작권 침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다”며 “저작권 침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만큼 대학에서 저작권 관련 교과목을 개설해서 학생들의 인식 개선에 도움을 줘야 한다. 아울러 대학 내에 저작권 관련 기구를 설치해 교수들에게도 강의나 교재 집필 시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학교가 직접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