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하게 해야죠. 하지만 여기에 전제될 것은 기업의 투명성과 도덕성입니다.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위해 도덕적 해이와 같은 것들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그렇다고 통제 일변도로 갈 수도 없는 것이 국가가 감정적으로 기업을 통제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적인 경제 침체와 불황은 계속되고 미국의 대 이라크전과 북핵문제 등은 금년 경제 전망을 불확실하게 하고 있다.
본지 이인원 회장은 오늘날 한국경제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경기의 활로를 찾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45년간 경제학자의 길을 걸어온 고려대 곽상경 명예교수를 만났다.
이인원 회장 = 우리 사회의 화두는 보수와 진보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물론 늘상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만 경제적 측면에서도 ‘보수’, ‘진보’ 또는 ‘개혁’이라는 것이 있겠죠?
곽상경 교수 = 물론입니다. 경제수준을 높이고 성장해야한다는 기본 개념 위에, 자유경쟁과 시장을 중요시 하는 ‘보수’가 있다면 사회정의와 분배를 강조함으로써 국가의 바람직한 목표를 두고 정부통제가 이루어지는 ‘진보’, ‘개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 그렇게 보면, 경제적 진보주의는 바람직한 면이 많은 것 아닙니까?
곽 = 효율성이란 경제에서 가장 근본적인 개념입니다. 경제란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혁신 진보주의는 기업의 자율과 경쟁을 국가가 통제하고, 재원을 정부가 동원하며 이를 인위적으로 조절함으로써 사회전반적으로는 효율을 저하시키게 됩니다.
바로 이 때문에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죠.
이 = 기업의 경제활동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어떻게 보십니까?
곽 =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해야죠. 하지만 여기에 전제될 것은 기업의 투명성과 도덕성입니다.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위해 도덕적 해이와 같은 것들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그렇다고 통제 일변도로 갈 것인가하면 이것도 문제가 되는 것이 국가가 감정적으로 기업을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업의 활동은 자유롭게 하도록 하되 부정부패나 편법과 같은 불법적 사항에 대해서는 엄중하고 강력하게 통제를 가해야한다고 봅니다. G7 국가 즉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의 경우는 이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될 겁니다.
이 = 1997년 금융대란 이후 현재를 제2의 금융위기라고들 하는데, 이러한 경제적 당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구조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대외적인 것입니까?
곽 = 지난 9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U자형, 풀어 말하면, 당장에는 마이너스 성장이 한동안 유지되더라도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으면서 과감히 개혁을 시도해 본질적으로 탄탄한 기초를 다진 후 본격적이고 지속적으로 성장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한 정책들은 하나같이 소위 W자형을 지향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단기처방적인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너무도 성급하고 안이하게 위기상황을 피해보려 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소위 워크아웃을 실시해 기업을 임시방편으로 살려놓고 금융기관 공적자금을 투입해 인위적으로 기업을 유지시키는가 하면 가계부채를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등 요령부리기 대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이렇듯 다시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 =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우리의 경제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십니까?
곽 = 직접적 영향은 한가지, 원유문제입니다.
물량수급과 가격이 문제인데, 장기전으로 가게 되면 물량문제가 치명적으로 닥쳐올 수 있을 것입니다. 단기전으로 끝나더라도 가격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겁니다. 하루 700만 배럴, 1년에 10억 배럴의 석유를 소비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영향을 받게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라크전을 간접적으로 보면,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가 호황을 맞게 됨으로써 우리 한국은 유대관계 강화를 통해 경제적인 파급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되고 전쟁 후 중동지역의 복구산업이 활기를 띠게 되면 경제적 플러스 요인들을 유리하게 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세계경제 교역이 곤란해지고 전후 회복이 늦어진다면 전 세계적 경제침체가 더 심화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당장은 근본적인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든지 기업활동에 큰 저해를 가져온다든지 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만큼의 막대한 영향은 없다고 봅니다.
이 = 세계 1,2차 대전 이후 세계 경제는 전환기를 맞으며 급속도로 성장했지만 한국전이나 베트남전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했단 말이죠. 이라크전도 국지전이면서 일시적인 전쟁이기 때문에 세계 경제에 그다지 큰 영향을 가져올 것 같지 않기도 한데요.
곽 = 한국전과 베트남전은 미국이 의도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전쟁이었습니다. 전쟁결과로 미국은 성장요인을 얻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라크전은 좀 다릅니다. 만약 미국의 의도대로 이번 전쟁의 결과가 이어진다면 중동경제를 부흥시키고 미국 경제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세계경제는 활기를 얻게 될 겁니다.
이 = 한미관계를 보자면,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미국에 대한 한국의 자주성을 회복하자는 움직임이 국내에서 활발하게 일고 있습니다. 이것이 경제문제와 연결되었을 때는 어떻게 된다고 보십니까?
곽 =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계에서 미국을 제외하고 경제적 자주성을 언급할 수 있는 국가는 없습니다. 러시아나 일본, 독일도 불가능합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세계 판도라는 것은 경제우위국가에 대해 자주를 내세울 수도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단적으로 우리 한국은 식량자원이나 에너지 자원, 광물 자원의 8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기술이나 의약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수출에 비상을 걸리게 할 공업소유권이나, 달러가 없으면 경제적으로 힘을 쓸 수 없는 국제사회 속에서의 금융과 자본에 대해서는 더군다나 자주라는 것을 내세울 수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경제적 자주라는 것은 국가적 생존 때문에라도 내세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건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 적용됩니다.
이 = 대북경제지원 문제로 연일 정계가 떠들썩합니다. 대북지원이 우리 경제에는 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보십니까?
곽 = 저는 경제학자로서 이성적 냉정과 온정적 태도를 동시에 갖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대북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2천5백만 동포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되어야 북한 경제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남한이 지속적인 협력이나 요구를 통해 북한의 개방을 촉구하고 시장을 활성화 시켜서 주민들이 스스로 먹고살 수 있게 해야한다는 겁니다.
북한에 대한 투자, 식량, 개발 등의 문제는 일방적 지원으로 북한 정부에 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반드시 위임기관이나 우리 기업이 직접 북한으로 들어가 원래의 지원목적대로 돈이나 현물이 사용되도록 해야한다고 봅니다.
북한의 체제는 금전적 지원을 한다고 해서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체제도 아니고 그럴만한 의지도 없습니다. 냉정해야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죠.
온정적인 측면이라면 북한과의 경제협력관계에서 실질적인 한국의 이익은 전혀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협력과 공조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간 교역량만도 3000억달러인 남한이 간신히 30~40억달러를 채우는 수준의 북한으로부터 얻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만은 우리 동포들이지 않습니까?
이 = 최근 국내 NGO들이 경제분야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국가경제 차원에서 보면, 이들의 이러한 활동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 걸까요?
곽 =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문제도 안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NGO가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점과 최근 들어 난립하다보니 목소리를 내는데 일관성이 없고 정당성마저도 상실한 경우가 간간이 눈에 띄인다는 것입니다.
NGO들의 책임감있는 정당한 목소리만이 우리 한국을 온전히 발전시켜 나가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 최근 SK의 분식회계문제가 불거져나온 바 있는데 그렇다면 한국의 재벌정책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곽 = 이것 역시도 양면성을 다 갖고 있습니다. 인기주의에 영합해 재벌을 다룬다는 점이 그렇고 이중잣대를 가지고 필요할 때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최대한 이용하고 나서 개혁논의가 나오면 제일 먼저 개혁 대상으로 낙점시킨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어느 정권도 일관성과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재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대우의 사례나 SK 문제도 다르지 않습니다.
상호출자, 소유권, 경영, 투명성, 회계 등을 다루되 차근차근 시간을 두고 세밀하게 접근해 중요한 핵심적인 문제를 정확히 집어내어 근본적인 변혁을 꾀해야 합니다.
현행범도 아닌데 기업의 CEO를 바로 구속하는 등의 최근의 일은 너무 감정적으로 흘렀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 한국의 노사문제가 원만히 타결되어야 경제소생의 밑거름이 될 외자 유치에 힘이 좀 실릴텐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곽 = 우선 해외 투자유치가 한나라 경제를 예견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볼 때, 한국의 노사관계가 일방적인 주장이나 감정적인 주도, 정치적 개입 등으로 악화되면 해외투자유치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도 해외로 빠져나가 버리게 됩니다.
결국 중국과 같이 노조도 없이 저임금에 한창 급성장세를 타고 있는 국가들에게 추월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 경제의 존망에 관련된 부문이라고 할 수 있죠.
이 = 대학생들에게 올바른 경제관을 심어주기 위해 한마디 해주시겠습니까?
곽 = 현실을 인식하고 문제를 정확히 포착해 바로 잡기 위해서는 젊은이들과 기성세대들의 노력이 동시에 요구됩니다.
점진적인 변화와 혁신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할 것이 따로 있지 않겠습니까? 현실과 단절된 극단적인 이상주의만으로는 현실을 변화시키기가 당연히 힘듭니다. 현실을 바꿔내지 못하는 이상이라면 단지 이상일 뿐이죠.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해 이것을 차분히 풀어갈 줄 아는 젊은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 세계적으로 경제가 연계되어 있어 미국마저도 실제로는 독자적으로 경제를 유지하기가 어렵죠. 한국도 그 연결고리 속에 끼어있는데 금년도 세계경제에 대해 간단히 전망해 주시겠습니까?
곽 = 그다지 희망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세계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는 근거를 찾기가 힘듭니다. 미국의 9.11테러가 많은 영향을 끼친데다 새롭게 경제를 소생시킬만한 영향력을 갖춘 원천(source)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금년에는 세계경제가 눈에 띄게 회복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어떤 작은 계기라도 마련만 된다면 이를 전환점으로 삼아 시장경제가 활발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년 정도에는 그와 같은 새로운 활력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곽상경은 누구인가
1937년 경북 달성 출생
<학력>
1962년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1970년 美 웨인주립대 대학원 졸업(석사)
1974년 美 뉴욕주립대 대학원 졸업(박사)
<경력>
1970년~71년 美 뉴욕주립대 강사
1975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1981년~ 고려대 경제연구소 소장
1998년~99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1999년~ 고려대 국제대학원 원장
2002년~ (현) 고려대 명예교수
<저서>
1977년 계량경제학
1992년 도해경제전망
1994년 계량경제학입문
1997년 대통령의 경제학
<상훈>
1992년 국민훈장 목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