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는 세상을 읽는 창이다. 인터넷에 회자되는 패러디를 보면 지금 대중들의 관심이 어디에 쏠려 있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읽을 수 있다. 최근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MBC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소재로 한 패러디가 화제다.

처음 등장한 패러디는 <나는 가수다>와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을 합성한 동영상이다. 이소라, 박정현, 정엽 등 당대 최고 가수들의 열창에 대해 가수 박완규가 “왜 이렇게 슬프게 불러?”, “계속 그렇게 움직여야 돼? 산만해”, “노래에 잔뜩 겉멋이 들어 불러” 라며 독설을 날리는 <위대한 탄생>의 장면들이 결합된다. 가수 지망생들을 향한 박완규의 심사평이 내노라하는 가창력 소유자들의 창법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큰 재미를 안겨준다.

또 다른 패러디는 이 프로그램에서 탈락 운명에 처한 김건모의 재도전 논란을 소재로 삼는다. 청중평가단 투표로 김건모의 탈락이 발표된 후 김제동이 재도전 기회를 요청하자 난데없이 KBS <1박 2일>의 이승기가 튀어나와 “안됩니다. 땡!”하고 외친다. 평소 <1박 2일>의 복불복 게임에서 나영석 PD가 출연자들을 향해 자주 하던 말을 흉내낸 것인데, 김건모의 재도전 허용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을 잘 대변해 준다.

이 두 개의 패러디에는 대중들의 정서를 긁어주는 공통된 코드가 숨겨져 있다. 바로 이중 잣대에 대한 냉소와 비판이다. 슬픔을 한껏 머금은 이소라의 목소리, 혼신을 다한 박정현의 몸짓, 수준 높은 테크닉을 구사한 정엽의 바이브레이션이라면 누구도 감히 박완규와 같은 불편한 독설을 날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가수다>의 프로 가수들과 <위대한 탄생>의 가수 지망생들 간 수준 차이는 확연하다.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도 이들 두 부류 사이의 차이는 명백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들에게 적용된 잣대가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박완규의 독설은 그 대상이 가수 지망생이라는 사회적 약자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이 패러디를 보며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두 번째 패러디는 보다 노골적으로 이중 잣대를 풍자한다. 꼴찌를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방식을 도입했던 것은 제작진이 첫 번부터 스스로 정한 원칙을 깨뜨려버리는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만약 탈락 위기를 맞은 가수가 최고참 김건모가 아닌 후배 가수였다면 이런 재도전 논란 따위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나는 선배다’, ‘나는 PD다’ 같은 패러디물이 잇달아 만들어진 것도 그런 맥락이다.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게 원칙을 고수하며 “안됩니다. 땡!”을 외치는 경쟁 프로그램 담당 PD의 모습을 여기에 투영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이중 잣대가 비단 이 프로그램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중 잣대는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그리고 사회가 경쟁으로 치달을수록 이중 잣대의 해악은 점점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요즘 ‘정의’나 ‘공정’ 같은 단어들이 중요한 키워드로 부각되는 것도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사회 속에서 최소한의 합의된 원칙만큼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위기감으로부터 비롯된 결과라 하겠다.

애초에 <나는 가수다>의 방송을 두고 우열을 가름하기 힘든 최고의 가수들을 모아놓고 순위 경쟁을 시키는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제작진이 서바이벌이라는 극한 경쟁 방식을 채택했다면 단일 잣대의 원칙만큼은 끝까지 지켰어야 옳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비록 일개 방송 프로그램일지라도 이중 잣대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대중들의 움직임을 보았다는 점, 그리고 원칙을 깨뜨린 당사자들이 기꺼이 책임지고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 줬다는 점이다. 이런 장면들을 방송 프로그램 밖 우리 사회 각 영역에서도 자주 보게 된다면 ‘정의’나 ‘공정’ 같은 키워드가 그저 공허한 추상명사로만 들리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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