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표절논란…‘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논문 실적 등 성과위주 평가방식도 문제  
‘황우석 사태’로 연구윤리 의식 강화돼 

▲ 출처 : KASIT 연구윤리 관련 강의자료 캡쳐
[한국대학신문 송아영·이용재·이재 기자] 7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 모 교수가 논문 표절 문제로 스스로 사직한 사실이 알려졌다.  최근 서울대에서는 김 모 교수 외에도 연구부정 시비가 계속해서 불거졌다. 2005년 황우석 박사 사건 이후에도 지난 1월 수의대 강수경, 약대 김상건 교수의 ‘연구 부적절 행위’가 논란이 됐다.    

이처럼 논문표절, 중복게재, 논문 자기표절 등 연구부정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연구윤리 문제는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도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이번 새 정부 인사에서도 어김없이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논문표절 의혹이 제기돼도 공직에 오르는 데는 문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연구부정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연구자 스스로도 연구윤리 의식 제고가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 끊이지 않는 연구부정 =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공직후보자들의 검증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논문표절 의혹은 어김없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은 1999년 건국대 행정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이 1996년 발표된 한 사립대 교수의 논문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의혹을 받았다. 허 비서실장은 의혹에 대해 표절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비서실장 자리에 오르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박사논문 짜깁기 및 자기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윤성규 환경부장관 후보자도 “논문 초안에는 인용표기를 했으나 (논문)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의 지적에 따라 인용표기를 삭제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 외에도 류길재 통일부장관 후보자, 서승환 국토해양부장관 후보자, 이동필 농림축산부장관 후보자 등이 연구윤리 의혹을 받고 있지만, 국회는 잇달아 후보자들의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하고 있다. 비서실장을 비롯해 장관 후보자들을 둘러싼 연구윤리 의혹이 쌓여있지만 이들이 고위공직 자리를 꿰차는데 ‘연구부정 행위’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 셈이다.

이처럼 고위공직 후보자들에 대해 연구부정 의혹이 제기돼도 그대로 임용되는 것이 언제부턴가 자연스런 수순이 됐다. 그러나 선진국에선 공직자의 논문표절 사실이 밝혀질 경우 공직 사퇴로까지 이어지는 등 연구부정에 대해 엄격한 편이다.

독일은 올해 2월 아네테 샤반 교육부장관이 박사학위 논문 표절로 장관직을 사임했으며, 앞서 2011년에도 칼-테오도르 추 구텐베르크 독일 국방장관이 박사학위 논문 표절 판정으로 사임했다. 지난 해 4월에는 헝가리 슈미트 팔 대통령이 논문 표절로 박사학위를 박탈당하면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학계 전문가들은 2005년 ‘황우석 사태’에 이후 연구윤리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지만 여전히 교수들의 연구윤리 문제는 공공연한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따라 연구부정에 대해 학위 박탈, 의원직 낙마, 공직 사퇴뿐만 아니라 더 강력한 처벌과 책임의식이 부여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태훈 고려대 교원윤리위원장(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표절이라고 판별되면 교수의 경우 교수직 파면에 상응하는 강력한 책임을 물어야한다”며 “그래야 연구윤리 문제가 학자, 연구자로서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부정은 개인의 책임인 동시에 대학의 책임이기도 하다. 문제가 있는 논문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연구부정을 눈감아 준 대학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 학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지나친 성과위주 평가도 문제 = 학계의 관행이나 솜방망이 처벌뿐만 아니라 논문 게재 실적 등 성과주의식 평가방식도 연구부정 문제를 부추긴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학이 교수의 논문게재 실적이나 연구 성과를 승진이나 업적평가에 높게 반영하면서 교수들은 연구부정 유혹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 남들보다 높은 연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그런 분위기가 교수들을 연구부정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지적이다.

양적으로 치우친 대학평가 역시 문제로 꼽힌다. 하태훈 교수는 “단기간 양적으로 평가되는 대학평가 방법도 문제다. 대학은 평가를 잘 받기 위해 매년 양적으로 결과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경쟁적·양적으로 흘러가는 대학평가 방식이 개선돼야한다”고 꼬집었다.     
하 교수는 이어 “대학마다 인력구조 등 여건이 다른데, 모두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 받는다”며 “대학원생 등 보조 인력이 있는 대학은 연구에 큰 무리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대학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논문 표절, 조작 등의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출처 : 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
■ 연구윤리 문제, 대안은? = 결국 연구윤리 문제에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연구자들 연구윤리 의식에 있다. 다행스럽게도 2000년대 들어 연구윤리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는 분위기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황우석 사태’ 이후 2007년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제정하고, 국내 대학, 연구기관에서 연구윤리진실위원회를 구성하고 연구윤리 관련 규정을 마련하도록 했다. 또한 매년 대학원생, 연구원을 대상으로 연구윤리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으며, 연구윤리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연구윤리정보센터도 구축했다.

2005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이후 국내 연구자들이 연구윤리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최근 포스텍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와 연구윤리정보센터(CRE)가 연구자 10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연구자의 42%는 최근 2년 동안 연구윤리 문제로 고민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연구자의 58%는 ‘국내 학계의 연구윤리에 대한 의식이 지난 몇 년 간 개선됐다’고 답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개선되는 듯 했으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응답도 30%나 있어, 연구윤리에 대한 의식 개선 필요성도 시사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연구윤리 교육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연구윤리와 관련해 가장 필요한 제도적 장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연구윤리 교육 필수화’라는 응답이 3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처럼 연구윤리에 대한 인식이 점점 높아지면서 최근 대학들도 연구윤리 교육을 늘려가는 분위기다.

가장 눈에 띄는 대학은 KAIST다. 이 대학은 2009년 연구윤리 강의인 ‘윤리 및 안전(온라인)’을 대학원 특별이수과정으로 도입했다. 교육지원팀 관계자는 “연구윤리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대학원생들이 지식만 쌓을 것이 아니라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도 2008년부터 대학원과 학부에 ‘연구윤리’ 과목을 개설했다. 대학원은 전공과목, 학부는 교양과목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대학원의 일부 단과대에서만 필수과목으로 운영되고 있다. 향후 대학원 전체에 ‘연구윤리’과목을 필수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현재는 일부 대학원 단과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학부생·대학원생의 선택에 의해서만 연구윤리 과목을 수강하도록 돼 있다.

연세대는 지난해 대학원 공통과목으로 ‘연구윤리(온라인)’ 과목을 개설했지만 필수가 아닌 선택과목으로 두고 있다. 대학원 행정팀 관계자는 “연구윤리 과목을 대학원 전체 필수과목으로 하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강제할 수 없어 각 단과대별 자율에 맡기고 있다”며 “연구윤리 과목 외에 각 단과대별 특성에 맞춘 연구윤리 과목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밖에 서강대는 연구윤리 과목으로 ‘윤리 및 안전(온라인)’을 개설해 대학원생이 필수로 이수토록 하고 있으며, 고려대는 대학원에서 별도로 연구윤리 과목을 운영하고 있진 않았다. 다만 학부 공과대학에서 ‘글쓰기와 연구윤리’ 과목을 필수로 지정해 교육하고 있다.  

대학 내 연구윤리 교육도 중요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연구윤리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김형순 인하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표절 등 글쓰기 방식은 이미 초중고 시절부터 가르쳐야한다”며 “현재 과학고, 영재고 어디도 (연구윤리와 관련한) 글쓰기 교육은 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태훈 교수도 “표절은 결국 남의 것을 존중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다. 어릴 적부터 남의 창작물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도록 교육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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