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 제도 및 규정 개편만 능사 아니다…"융합 내용·콘텐츠 중요해"

대학교육 전문화·고도화로 가야…협력, 소통 능력 함양교육도 필수

* 세계경제포럼 (WEF; World Economic Forum)에서 발표한 미래 일자리 변화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에 따라 2020년까지 20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기는 데 반해 710만 개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한다. 5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셈이다.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은 현재 우리가 4차 산업혁명 과정에 진입해 있고,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우리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봤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대학 내부에서 교육, 연구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학 교수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대비가 필요하고 대학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파도를 넘을 수 있을지 3회에 걸쳐 들어보고자 한다.

(1) 4차산업혁명 대비한 대학 융합 교육 어떻게
 
(2) 4차산업혁명 대학 연구 환경도 변해야
(3) 4차 산업혁명 앞둔 대학들, 풀어야 할 과제는

▲ 숙명여대 '스타트업 수업에서 학생들이 시제품을 제작하는 모습. 대학가에서는 학과간 벽을 허무는 융복합교육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김소연·구무서·윤솔지 기자] 최근 대학가의 화두는 ‘창의융합교육’이다. 대학마다 인문학과 학생들이 소프트웨어, IT 관련 교육을 받거나 이공계열 학생들이 인문, 철학 등 인문학 수업을 듣는 인문과 이공분야를 결합하는 기초적인 수준의 융합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교원양성대학 학생들도 SW 교육 및 코딩 교육을 받고 있다. 여기에서 나아가 일부 대학에서는 융합전공 학과를 신설해 융합교육 학제를 꾸리는 시도 등을 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대학 학과 간 칸막이를 줄이는 ‘대학 학사제도 개선방안’이 포함된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학생이 다학기제, 집중이수제, 융합전공제 등을 통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전공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한다. 현재는 각 대학이 1년 중 2~4학기제를 택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해 5학기 이상을 운영할 수 있으며, 대학 여건에 따라 학년별로 다른 학기제도 운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소속 전공이나 대학과 상관없이 여러 전공 수업을 듣고 이수할 수 있는 융합전공, 공유전공제도 도입도 가능해진다. ‘융합(공유)전공’은 편제 정원 없이 새롭게 개설하는 전공으로, 학생이 소속 학과 전공을 필수적으로 이수하지 않고 원하는 전공 수업을 들어도 졸업이 가능해진다. 학과 없이 5년마다 교육과정을 신설하거나 폐기하고, 모든 전공이 하나의 틀 안에서 융합교육을 받도록 하는 미국 올린 공대 모델을 따온 것이다.

■ 창의융합교육, ‘학생 맞춤형’ 교육으로 가야 = 교육부도 학사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고, 대학들도 자율적인 학사제도 운용을 요구하는 만큼 창의융합 교육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대학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전문가들은 결국 초점은 교육 수요자인 ‘학생’에게 맞춰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학 본부나 교육부 등 정부 차원에서 전공 이수제도나 학과 간 장벽을 없애는 쪽으로 제도를 바꾸더라도 정작 학생이 선택하지 않으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권영선 KAIST 교수(기술경영학부)는 “대학 교육 목적 중 하나가 교육 수요자 입장에서는 취직이다. 아무리 학문을 강조한다고 해도 학생들은 대학을 취업을 위해 거쳐 가는 경로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결국은 학생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자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시스템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권영선 교수는 “현재는 대량 교육시스템에서 개별 맞춤형 교육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스마트 교육의 핵심이 개별화다. 일부 대학에서 플립드 러닝을 시도해, 학생들은 표준화된 강의는 인터넷으로 듣고 실제 수업에서는 토론·토의를 통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하고 있다. 교수는 조력자로 바뀌고, 수업에서 나름대로 질문을 던져 학생들이 생각하게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회용 부산대 교수(교육학)도 과거와 달라진 대학 교육 환경에서 학생 수요 맞춤형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회용 교수는 “과거에는 많은 학생을 한 번에 가르치고, 소품종 대량화 시대로서 획일화된 인재를 배출했다. 그러나 미래 사회는 지금과 같은 획일화된 시스템이 맞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학습자가 주체가 돼야 하며, 대학 교육은 개개인이 다양한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융합교육이나 현장체험 교육을 늘린다고 해서 우수한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임철일 서울대 교수는 지난해 10월 열린 ‘4차 산업혁명 대비 대학교육 혁신방안’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은 압축적으로 교육에 어떤 시사점 주는가, 교육의 목적과 방법을 어떻게 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서 “대학 교육 방법은 플립드 러닝, 프로젝트 기반 학습으로 가야 한다. 기초 지식에 해당하는 내용은 온라인 강의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강의 시간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기반의 수업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고민 필요 = 정부는 최근 4차 산업혁명 국가 전략 프로젝트로 인공지능(AI), 가상·증강현실, 자율 주행차, 경량소재 개발, 스마트시티, 정밀의료, 바이오신약, 탄소 자원화, 미세먼지 절감 등 9개 분야를 꼽았다. 이에 대학 내부에서도 4차 산업혁명 관련 전공을 세분화하고 심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호정 연세대 교수(생명공학)는 기존에 있던 전공에 어떤 기술을 접목할지 연구하는 새로운 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권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은 기존의 1, 2, 3차 산업이 새로운 기술, 개념과 엮이고 융합되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에 있던 전공이나 전공 분야가 모두 없어지는 개념이 아니다. 주요 요소 기술을 융합하고 연결하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칠우 전남대 교수(전자컴퓨터공학)도 “대학 교육 시스템이 일방적 강의보다는 직접 체험을 하면서 전문 분야에서 고도의 지식과 기능을 갖는 인재를 기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대학 교육이 일반화되고, 대학 진학률이 높은 상황에서 대학 교육의 고도화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융합을 위해서는 결국 타인과 ‘함께’하는 능력을 기르는 인재를 키우는 교육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미래는 융합시대로, 융합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게 된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이라면서 “대학 교육은 타인과 협력하는 능력을 함양시킬 수 있도록 가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김종백 홍익대 교수(교육학)는 “1980~90년대 넘어오면서 학생들이 개별화됐다. 상호작용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약해졌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이끌 수 있는 ‘리더십 공동체 교육’도 필요하다”면서 “중·고등학생까지만 해도 혼자 시험 문제를 풀고 해결해왔다. 대학에 와서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학 입시제도도 바뀐다…문·이과통합형 선발 성공 가능성은?

교육부는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 과정’을 2018학년도 1학년부터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도 2015년 교육과정 고시와 함께 관련 대입제도 개선 정책연구를 수행해 올해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수능은 2021학년도부터 적용된다.

이를 두고 대학가에서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은 미래 교육에서 가야 할 방향이라는 점에서 동의했다. 한숭희 서울대 교수(교육학)는 “문과, 이과 구분은 처음부터 불필요했다. 유럽은 구분 없이 대학을 간다.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옥한 국민대 교수(교육학)도 “문·이과 통합형 인재 선발은 찬성한다. 2018학년도 통합교육을 시행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잘 마련되고, 고등학교에서부터 관련 교육을 받는다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다만 문·이과 통합형 인재를 키우고 선발하는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과연 과열된 대학 입시제도가 개선되고, 현장에서 학생들이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제도만 바뀐다고 실제 교육 현장이 쉽게 변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권호정 연세대 교수는 “말은 좋은데 현실적으로 물과 기름을 섞는 것과 같다. 분야마다 특성이 있어 쉬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융합을 제대로 하려면 다른 분야를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고 융합 자체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무조건 다른 분야를 섞는 것에는 우려를 표했다.

서울 A대학 교수는 문·이과 통합형 선발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그는 “무늬만 통합이지 실제로는 문·이과를 통합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학생들이 배워온 방식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고, 교육부에서는 제도만 바꾸려 들고 있다”면서 “아이디어는 좋지만 장기적으로 (시행을 위해) 실질적인 고민이 더 필요하다. 콘텐츠나 알맹이 없이 규정만 바꿔선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제도나 형식만 바뀐다고 내용이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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