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윤리·법 등 파급효과 고려한 미래 기술 연구가 핵심

* 세계경제포럼 (WEF; World Economic Forum)에서 발표한 미래 일자리 변화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에 따라 2020년까지 20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기는 데 반해 710만 개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한다. 5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셈이다.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은 현재 우리가 4차 산업혁명 과정에 진입해 있고,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우리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봤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대학 내부에서 교육, 연구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학 교수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대비가 필요하고 대학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파도를 넘을 수 있을지 3회에 걸쳐 들어보고자 한다.

▲ 산업혁명 변동 과정. 지능화로 대표되는 4차산업 혁명은 빠른 속도로 현실화되고 있으며 이에 대비한 대학 연구 현장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김소연·구무서 기자] 4차 산업혁명에서 AI(인공지능), 자율주행자동차처럼 기계가 인간을 대신할 가능성이 커진다. 또 빅데이터를 활용해 인체의 각종 유전 정보를 실용화해 맞춤형 진료 등이 뜨고 있다. 다만 이 경우 사회·경제·법적 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을 경우 각종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당장 500만개 일자리가 사라지는 일자리 부족문제,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개인에 대한 모든 인체 유전정보가 저장 및 분석되면서 권력기관이 개인을 더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는 마치 빅브라더 같은 감시 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어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과 더불어 사회적·경제적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학문 영역을 넘어선 융합 연구, 공동연구가 필수적인 셈이다.

장동식 고려대 교수(산업공학)는 “이제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지 않은 공학자는 위험하다. 윤리, 인문학이 공학 연구에서도 접목돼야 한다. 인문학적 가치는 여러 분야가 다 합쳐져서 나오는 기술이지 달랑 기술만 나오는 기술은 이제 없다”고 강조했다.

공구 한양대 의대 교수팀은 12개국 48개 다국적 연구팀과 함께 역대 최대 규모인 560명의 전체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유방암의 발현 방식 등을 연구할 방대한 기초자료를 만들어냈다. 향후 전 세계적으로 유방암 치료제 개발과 항암제의 반응성 예측 등 개인별 맞춤형 진료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공구 한양대 교수는 “바이오 의료 시대에 분자생물 기초연구, 의학, 데이터 분석을 통해 분자 진단까지 접목한 연구를 하고 있다. 미국의 바이오 의료는 의과대학, 병원을 중심으로 모든 영역이 함께 간다. 데이터 분석, IT지식까지 융합 커리큘럼을 만들어 인재를 가르친다”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융합 연구가 필수적이며, 융합 인재를 키우는 일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연구실 장벽도 허물어야…끼리끼리 문화 배제하고 활발한 교류가 답 =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연구를 위해선 교수 연구실의 장벽을 깨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A대학 산학협력단장은 “대학 내부에서 어떤 학문 분야와 어떤 영역이 융합해서 연구하면 좋을지, 이런 미래 방향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편이다. 교수사회가 서로 벽을 쌓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면서 “자기 연구의 자부심이 너무 높아 비판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교수들은 독립된 연구만 하고 특허를 몇 편 내고, SCI급 연구를 얼마나 했는지 정량적인 수치 이야기만 한다. 이래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기업에서 20여 년 근무했던 B대학 교수도 “여러 분야 사람들이 모여서 연구하는 게 맞다. 근데 대학은 그런 과제를 요구하지도 않고, 그런 체제도 없다”면서 “같은 학과에서도 교수들 대부분이 공동 연구실을 운영하는 경우도 없다. 미국은 특정 분야 연구실에서 교수 5, 6명 대학원생 몇십 명이 같이 모여 연구하는데 우리는 개별로 연구한다”고 지적했다.

미래 사회는 어떻게 변화가 발생하고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시대다. 기술발전에 따라 사회적 합의를 봐야 할 문제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권영선 KAIST 교수(기술경영학부)는 “일자리가 사라진다면 결국 사회적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미래 사회 변화에 따라 인력 양성체계를 바꾸고, 일자리를 공유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미래 사회 사회적 합의나 정책적 방향이 중요해질 것으로 봤다.

이어 “기술개발을 하면 사회적 영향까지 같이 보는 연구, 인공지능의 사회적 파급효과까지 볼 수 있도록 사회학자, 인문학자가 연구하는 (융합 연구)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 정부 ‘한 우물 파기’ 연구 등 창의적 연구 가능한 풍토 조성 필요 = 2017년 업무보고에서 교육부는 한 우물 파기 연구 등 중장기적 연구를 꾸준히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실패 가능성을 전제로 한 도전적 연구 과제 약 254개에 95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교수들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하겠는 정책 방향에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장동식 교수는 “우리나라가 당장 써먹을 기술에 집중하다 보니 기초연구, 바탕이 많이 없어진다. 긴 기간을 두고 연구하는, 롱텀 베이스로 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여러 사람이 협업하는 연구 풍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하고 황당한 아이디어도 효과적으로 도출하는 연구 풍토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영역이 완전히 다른 분야의 연구 과제도 한국연구재단 등에서 융합형 과제 제안에 따라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나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윤성민 경희대 교수(정보전자신소재공학)는 “단순히 4차 산업혁명 프레임에 맞춘 융합, 통섭 등 키워드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연구 자율성을 보장하는, 기존 기술의 프레임을 완전히 파괴하는 형태의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어야 한다”면서 “파괴형 기술 착안을 위한 연구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젊은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효과적으로 뽑힐 수 있어야 한다. 또 현재 교수 중심의 상명하복식 연구실 문화 그 자체를 타파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강의 없이 연구만? 연구전담교수, 국내에도 안착할까

“연구 시간 부족한 현실…미래 대비하려면 연구의 질 높이는 연구전담 교수 필요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과 함께 4차산업 혁명 대비해 ‘필요 없다’는 주장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연구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연구전담 교수제 도입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연구전담교수는 강의를 하지 않고 오로지 연구에만 전념하는 교수를 말한다. 교수라면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국내에서는 낯선 개념이지만 미국과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의 대학들은 연구전담교수를 둬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황은성 서울시립대 교수(생명과학)는 "외국의 이름을 알만한 큰 대학들은 다 연구전담교수가 있다. 그곳에서 교수 역할은 강의하는 사람이 아니라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표면상 연구전담교수가 있지만 해외 선진국에 비하면 차이가 크다. 대부분 계약직으로 신분이 불안정하며 처우 역시 열악하기 때문이다. 연구전담 교수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A대 산학협력단장은 "연구전담교수 중 실제로 평생직장으로 삼을만한 대우를 받는 교수는 없다"며 "국내의 연구전담교수는 박사 학위를 받은 또 다른 이름의 연구원 정도"라고 강조했다.

연구전담교수의 필요성이 대두하는 이유는 연구에 필요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교수에게 부여하는 책임 수업 시수는 일반적으로 1학기에 3과목, 9학점의 강의를 담당한다. 강의 시간 외에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 학생 지도 등의 시간까지 더하면 연구에 집중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B대의 산학부총장은 수업과 학생 지도, 평가 등이 겹치면 다 해내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연구하랴 수업하랴 상당히 부담되는 경우가 있다"고 호소했다.

일부에서는 연구전담교수가 대학 연구의 질뿐만 아니라 교육의 질까지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재진 서울대 교수(컴퓨터공학)는 "일반적으로 강의가 곧 교육이라는 교육방식 때문에 강의를 안 하면 교수가 논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공계의 경우 도제식으로 학생들을 키워야 하는데 강의로는 할 수 없는 연구와 실험을 통해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수해야 한다. 오히려 연구전담교수가 강의만 하는 교수보다 바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동결로 인한 대학들의 현실적인 여건상 국내에서 연구전담교수를 두는 것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의견도 나온다. A대 산학협력단장은 "평균적으로 교수 인건비가 1억원이고 여기에 연구비도 필요하다. 그런데 학교에서 강의하지 않는 연구교수에게 정교수 수준의 인건비를 주기에는 대학 재정 사정도 어려워 불가능한 일"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함에 동시에 교수들의 연구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교수 트랙 제도'가 필요하다는 절충안이 나오고 있다. 대학에서 교수를 많이 뽑아 책임 수업시수를 줄이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교수마다 연구 분야마다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보다 확실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경재 경남대 연구처장은 "연구는 연구, 교육이면 교육, 산학이면 산학 등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트랙을 만들어 교수 평가 배점을 달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4차 산업의 특징상 연구전담교수보다는 협업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C대 교수는 "4차 산업은 기존에 있던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연구전담교수보다는 공동연구나 기업체와의 현장밀착형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더 낫다"면서 “4차 산업은 기술을 바탕으로 지금까지와 다른 방법을 통해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게 중요하다. 결국 연구도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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