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캠퍼스 설립, 교육과정 혁신은 여전히 ‘그림의 떡’
공무원 ‘면책’ 걱정에 ‘규제 추진’ 몸사려
말로만 ‘혁신’ 아닌 제대로 된 ‘지원’으로 발판 마련 ‘절실’
법적상식 문제없으면 규제 풀고 우선 시행하는 ‘네거티브’ 방식 시급

[한국대학신문 이현진 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문이 열리고 있다. 주요 선진국 대학들은 혁신을 통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와 미네르바스쿨이 대표적이다. 교육부도 한국판 애리조나주립대와 미네르바스쿨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판 애리조나주립대와 미네르바스쿨은 가능할까? 대학가는 고개를 젓는다. 각종 규제가 우리나라 대학들의 혁신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본지는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이하 사총협)와 공동으로 규제 실태를 짚어보고, 우리나라 대학들이 4차 산업혁명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규제 혁신 방안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한국판 애리조나주립대와 미네르바스쿨은 불가능하다-上”
② “한국판 애리조나주립대와 미네르바스쿨은 불가능하다-下”
③ “규제 혁신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자”

애리조나주립대(ASU; Arizona State University)는 현 시대 대학 혁신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애리조나주립대(ASU; Arizona State University)는 현 시대 대학 혁신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 대학 옥죄는 ‘규제’…4차 산업혁명시대 ‘역행’ =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변화와 혁신은 빠르게 이뤄지는 반면 관련법이나 제도 변화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교육환경 변화 속도와 방향에 맞는 관련 법령 조정이 유연하게 이뤄지지 못해 걸림돌이 된다는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학’을 가로막는 규제는 무엇일까. 대학의 혁신사례로 주목받는 애리조나주립대와 미네르바스쿨의 모습을 보면 쉽게 파악된다. 대학 물리적 인프라는 물론 교육과정, 학생선발 등 모든 면이 한국 대학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① “한국판 애리조나주립대와 미네르바스쿨은 불가능하다-上” 기사 참조)

대학을 둘러싼 규제는 크게 둘로 요약된다. ‘법제정’과 ‘재정지원’이다. ‘법제정’은 말 그대로 이미 규정돼 있는 법적 규제를 말한다. 최근 혁신 대학으로 꼽히는 해외 사례와 비교했을 때 △해외캠퍼스 설립 △등록금 책정 △학사제도, 교육방식·체제 혁신 등은 모두 현재 제정돼 있는 법이나 교육부 지침 등 규제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두 번째는 ‘재정지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혁신을 위해서는 ‘재정투자’가 선행돼야 함은 자명하다. 하지만 대학 재정 확보에 있어서 정부의 재정지원을 두고 이뤄지는 대학평가는 대학 발전에 직·간접적인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

■ ‘법’에 가로막힌 산·학협력…교육혁신·학생모집도 정부 맘대로 = 미국 실리콘밸리, 중국 중관춘과 달리 판교 테크노밸리에는 대학이 단 하나도 설립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규제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는 스탠퍼드대, 버클리대 등 명문대학이 있어 우수한 인력을 기업에 공급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기업과 대학이 하나가 돼 공동 연구·개발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에도 베이징대, 칭화대 등이 모여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판교에는 대학설립이 어렵다.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인구와 산업을 적정하게 배치하겠다는 취지의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것이다. 국내 유수 기업이 집약적으로 몰려있는 판교에 대학은 둥지를 틀 수 없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이 같은 법 규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판교 테크노밸리 조성 당시 관심을 보인 국내 유수의 대학들이 있었지만 규제에 가로막혀 마음을 접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판교 테크노밸리에는 대학이 하나도 없어 산·학·연 연계 기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황보택근 가천대 연구부총장은 “앞으로 대학의 발전은 산학협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는 일에 집중하는 데는 기업과의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세종시에는 정부가 주도해 대학을 유치하고 있으며 유수 대학들이 참여의지를 보이고 있다. 교육계 한 관계자는 “기업이 밀집돼 산학협력이 이뤄지기에 최적인 곳에는 대학유치가 안 되고 정부 기관만 즐비한 세종시에는 대학설립이 가능하다는 게 아이러니”라며 “앞으로 판교에 대학분교나 대학 연구소들이 설립되거나 클러스트 형태의 산학협력공간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규제’ 때문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고 터놨다.

대학의 ‘판교’ 진출은 재원확보와도 직결된다. 황인성 사립대총장협의회 사무국장은 “미국 스탠퍼드대나 중국 칭화대처럼 산학 협력을 통해 상생을 도모하면서 기술을 개발하고 기술이전이 이뤄지면 대학의 재원확보 방안이 되고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이 될 수 있다”며 “공단 설립 시 대학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과 지원책을 정부나 지자체가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정원 규제도 융·복합 인재 양성에 장애 요인이다.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4차 산학협력시대에 인공지능(AI), ICT 개발을 위한 컴퓨터관련 학과에 스탠퍼드대 등 외국대학에서는 학생 70%가 부전공, 복수전공으로 수학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학과별 학생 정원조차 교육부 감독 아래 움직이고 유연하지 못해 시대변화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현재 서울대만 보더라도 컴퓨터공학과는 55명 정원에 그친다.

■ 韓대학 해외캠퍼스 여전히 ‘넘사벽’…타 산업 경쟁력에도 지장 = 최근 베트남에 일본 한 대학 의대캠퍼스가 설립된다는 현지 보도에 한국 대학가의 아쉬운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17년 말에 ‘교육 수출’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일부 완화됐지만 국내 대학의 해외진출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앞서 교육부는 2011년 대학법인이 해외 분교를 세울 수 있는 근거 법령을 제정했지만 분교 설립 실적이 전무하자 재원 마련이 보다 수월한 해외캠퍼스 설립을 허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분교는 본교와 별도로 학위를 수여하는 등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설립 재원을 학교법인의 회계에서 마련한다. 현행 사립학교법 제29조 제6항에 따라 교비회계는 타 회계로의 전출이나 대여를 금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분교는 재단전입금과 기부금만으로 설립해야 한다. 반면 캠퍼스는 본교와 한 몸이라 등록금 등 본교 교비회계를 동원해 조성할 수 있다.

그러나 10여 년째 이어진 정부의 대학 등록금 ‘동결’ 정책으로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들이 교비회계로 해외캠퍼스를 설립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기존 대학의 정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캠퍼스로 정원을 옮기는 개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실제 대학들이 이를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내대학의 해외진출 규제는 학계를 넘어 산업계의 경쟁력 확보에도 걸림돌이다. 한 교수는 “베트남에 설립된 일본 대학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은 결국 일본 약을 처방하게 될 것”이라며 “국내에 진출한 프랑스 르꼬르동블루 요리학교에서 요리를 배운 학생들 대부분이 국내 오븐이 아닌 프랑스산 오븐을 사게 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비단 50여 명 규모의 해외캠퍼스 의대생을 배출하는 것 이상의 파급 효과가 이어진다”며 “대학의 해외진출을 막는 규제는 의료장비와 제약품 등을 다루는 한국 산업이 베트남에 진출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급됐던 애리조나주립대나 미네르바스쿨 말고도 파격적인 대학 형태는 해외에서 줄을 잇는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교수진은 ‘국경 없는 교육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현재 블록체인 대학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양대 명문대학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제공되는 과목을 비롯해 여러 대학 시스템이 블록체인 대학에 적용될 예정이다.

서울지역 한 교수는 “블록체인 대학은 특정한 물리적 캠퍼스가 없을 것이고 전세계에서 제휴된 기관에서 교육을 이수하면 그것을 인증해주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라며 “반면 한국에서는 이런 혁신을 시도하려 해도 모두 불법으로 간주돼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오세정 바른미래당 의원, 한국사학법인연합회와 본지가 지난해 9월 공동 주최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학교육발전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사학법인 관계자, 학교법인 이사장 등 교육 관계자 80여명이 모여 "교육의 자유를 최대한 부여해 규제를 최소화해야한다"고 주문했다. (사진=한명섭 기자)
한국사학법인연합회와 본지가 지난해 9월 공동 주최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학교육발전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사학법인 관계자, 학교법인 이사장 등 교육 관계자 80여명이 모여 "교육의 자유를 최대한 부여해 규제를 최소화해야한다"고 주문했다. (사진=한명섭 기자)

■ 사회적 요구에는 ‘공공성’ 외치며 책무 강조…지원에는 “자립하라”며 난색 = 대학평가도 강력한 규제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 예산 지원을 담보로 이뤄지는 재정지원사업평가가 자율성 훼손을 넘어 대학을 ‘하향 평준화’ 하고 있다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평가를 통해 재정을 지원한다는 정부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성익 삼육대 총장은 “컨설팅을 통해 대학이 자율성을 갖고 장기적으로 사업을 추진한 뒤 결과를 두고 평가해야 한다”면서 “지금처럼 1~3년 단위로 이뤄지는 평가는 소모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대학 등록금은 억제하면서 법인전입금이나 자체 수입을 통한 재정확보를 강조하는 정부에 대한 불만도 여전하다. 서울지역 한 사립대 총장은 “수 년째 동결된 등록금으로는 정부와 기업체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외국 선진 대학과 경쟁해서 살아남기 힘들다. 정부 규제는 많고 지원은 인색하다보니 대학 혁신에 앞장서야 할 교수들이 무기력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서울지역 한 대학 교수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교육 패러다임이 확 바뀌면서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가 활용된 교육콘텐츠와 솔루션 개발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전폭적 재정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인데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 등의 어려움에 봉착한 국내 대학들은 여력이 없다”며 “결국 등록금이나 학생정원이 자유로운 애리조나주립대 등의 대학과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학 내 여유 공간이나 수익용부동산 등의 자산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황인성 사무 국장은 “미국 주요대학들이 기부금을 다양하게 투자하고 대학의 자산을 자유롭게 활용해 재정을 확충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 담당자 ‘책임’ 문제로 규제완화 추진 망설여…보직순환근무 체제로 ‘전문성’ 미약 = 규제 완화의 걸림돌은 정부 각 부처 내부에도 존재한다. 규제 완화를 시도하더라도 그 결과물을 두고 담당자의 ‘책임’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해당 부서 공무원의 사적 이해 없이 공익목적으로 충분한 검토와 절차를 거쳐 규제를 풀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담당자에게 일부 책임이 물어질 것을 우려해 몸을 사리게 된다”고 털어놨다.

최근 ‘적극행정 활성화’로 담당 공무원의 책임을 묻지 말자는 ‘면책요건 완화’를 위한 제도가 내부적으로 검토되고 있지만 아직 명문화돼 있지 않아 굳이 ‘규제완화’라는 변화를 주도하기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대부분 규제는 다수 부처 간에 걸쳐져 있어 의견을 좁히는 것도 쉽지 않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규제 샌드박스 민간위원을 맡고 있는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한 사안을 두고도 관련 부처 간의 의견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첨예해 이를 하나의 결론으로 도출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교육부 공무원의 담당부서 연속근무 기간도 길어야 1년 반에서 2년에 그치고 있어 전문성을 기르기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 사무국장은 “공무원이 저마다 담당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면 어떤 것을 규제해야 하고, 풀어줘도 될지를 더 잘 알 수 있다”며 “지금의 보직순환근무 체제를 직무군 제도로 바꾸어 공무원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교육혁신 지금이 ‘골든타임’…“원칙적 허용하고 예외 규제만 두자”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도나 규제에 고사되지 않는 게 관건이라며 “각종 규제에서 탈피하고, 법적상식 수준에서 문제없으면 우선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성익 총장은 “규제 샌드박스의 폭과 깊이를 교육계로 넓혀 법적상식에서 문제없으면 우선 시행해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보완해가는 시스템으로 전향적으로 고등교육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총장은 “투명성과 공공성, 책무성을 강화하더라도 사회가 변해가는 과정에서 기업 등 산업체의 관행이 바뀌듯이 교육현장도 마찬가지”라며 “대한민국 고등교육이 미국이나 유럽 등에 비해 뒤늦게 출발했지만, 급속도로 발전하며 짧은 기간에 따라가려다 보니 통제와 간섭은 불가피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역설했다.

한양대 한 교수도 “오프라인 강의의 물리적 한계에 따라 온라인 강의가 등장했지만 이제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ICT가 발달하면서 교실 내 수업으로 줄 수 없는 교육효과 창출을 위한 미래교육시스템으로 발전하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는 아직도 온라인 교육이 오프라인 ‘대체’ 교육 정도로 여겨지며 구시대적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장병탁 교수도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됐지만 과거 정보통신강국으로 이름을 날리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점차 IT나 ICT 경쟁력에서 뒤지고 있다”며 “바로 구시대적 규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개별 법령에 규정된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할 수 있는 포지티브(positive)방식으로는 급속한 정보기술의 발전과 변화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지적이다. 황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에 ’규제 샌드박스’의 모습이 점차 확대되고는 있지만 교육 분야만큼은 이마저도 손 밖”이라며 “보편적인 법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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