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중요한 대학 내 ‘접촉과 소통’, 우수 대학은 살아남을 것”
학문 간 높은 장벽 낮추고 수요자인 학생 중심의 교육 패러다임 변화 절실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대학의 입학정원보다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 수가 적어진 인구 구조 변화의 시대가 왔다. 하지만 이를 타개할 재정적 여유는 10년 넘는 등록금 동결로 묘연하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과 코로나19 확산은 우리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대학의 혁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2021 대학혁신포럼’에 ‘한국대학의 위기,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를 주제로 기조세션 발표에 나섰다.
■미래 문제 풀기 위해 여전히 필요한 대학 인적 네트워크와 공간 = 오 총장은 “등록금 동결 문제로 인한 대학 재정의 부족과 학령인구 감소는 오래전부터 한국이 가진 특징이자 문제다. 하지만 ‘대학의 위기’ 자체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오 총장은 학문단위로 학제 편제가 돼 있어 학문 간 칸막이가 쳐진 대학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학제 편제의 혁신은 ‘대학이 여전히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의 답이기도 해서 더욱 중요하다고 봤다.
온라인 수업이 일반화됐고 대학을 가지 않아도 집에서 다양하고 방대한 지식을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에덱스(Edx)와 코세라(Coursera) 같은 유명 온라인공개수업(MOOC)가 지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전통적인 대학들은 속속 온라인과 오프라인 강의를 섞은 하이브리드 강의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상황이다.
오 총장은 “기술발달로 인해 지식 전수 기관으로써의 대학 기능은 약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책과 인터넷 상에는 없는 ‘암묵적 지식’은 개인 간 접촉에 의해서만 전달되기에 대학은 여전히 지식 연구와 공유의 장소로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 총장은 학생들이 지도교수가 어떤 사안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사고하고 반응하는지를 배우면서 지식이 형성되는 것도 ‘암묵적 지식’ 전수의 예시로 들었다.
오 총장은 특히 사람이 모이는 ‘장소’로써의 대학은 다학제 연구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고 봤다. 그는 ‘거대과학(big science)’에 대해서 연구하거나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제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고 해결점을 도출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혼자 하는 연구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학제 간의 담을 허물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오 총장은 코로나19로 온라인 소통이 일상화됐지만 대학 내 오프라인 소통만이 가지는 효용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연구하고 소통하는 장소로 대학이 제격이라는 말이다. 학제 간 교류의 중요도는 인류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트렌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봤다.
■서로 자극 주고받으며 연구할 수 있는 대학이 ‘좋은 대학’ = 그렇다면 어떤 대학이 살아남을까. 오 총장은 “결국 인재들이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는 ‘좋은 대학’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로버트 라이시도 “진실을 말한다면 직장을 구하는 데 있어서 대학 교육이 갖는 진정한 가치는 대학에서 배운 것보다 대학에서 만난 사람과 더 큰 관계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라이시는 “특출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은 이른바 명문대로 몰려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동시에 풍부한 인맥을 기반으로 한층 더 좋은 일자리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오 총장은 “대학의 역할은 아이디어들이 다른 사람을 만나 자극을 받고 공유되면서 발전하도록 하는 데 있다. 대면수업이 위험을 안고 있음에도 2학기에 열어보고자 하는 이유도 대학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오 총장은 대학도 ‘양극화’를 피할 수 없으며 앞으로의 교육시장은 꾸준히 증가하는 평생학습과 기업들의 수요를 충족하도록 ‘맞춤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는 ‘가상대학’이 실현될 때 가능하다.
또한 대학들이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대학들이 국내 생존을 걱정할 게 아니다. 하버드 MBA를 한국에서 할 수 있다면 서울대 MBA가 학생들에게 매력적일지 고민하게 된다. 말 그대로 대학들도 세계적인 경쟁체제에 돌입한 시대다. 세계적으로 경쟁이 이뤄지는 대학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혁신의 열쇠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 오 총장은 대학이 지닌 가장 중요한 미션은 언제나 학생의 교육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기본’으로 돌아가서 ‘미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고 언급했다.
오 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미래인재의 핵심역량으로 ‘7C’를 들었다. 7C로는 △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 △창의성과 혁신 △협동, 팀워크, 리더십 △문화를 넘나드는 이해 △소통, 정보, 미디어 독해력 △컴퓨터‧ICT 독해력 △진로 개발과 자립 등을 말한다.
오 총장은 “대학은 7C를 함양한 인재양성을 목표하고 로봇이 대신할 수 있는 단순기술을 가르치기보다 창조력과 고도의 문제해결능력을 길러주는 교육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러한 교육에서 최첨단 기술을 가르치는 데에 함몰되지 않고 인문‧사회 교양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방법으로 대학 혁신을 시도하고 있는 서울대 = 실례로 서울대는 대학 혁신을 위해 공급자(대학) 위주의 수업 대신 수요자(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장치로 ‘하이브리드 강의’를 진행한다. 대학 혁신은 전공 사이의 칸막이를 허무는 일이 중요하고 수강 정원이 정해져 있다면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하이브리드 강의를 통해 오프라인 수업 정원이 넘쳐도 학생이 원하는 수업을 온라인으로 수강할 수 있도록 했다. 오 총장은 “대학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급자 위주로 운영돼 왔던 대학의 구조를 개선하는 일이 전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대는 학생 설계전공을 도입해 학생들의 자기 주도성을 강화하고 다학제의 가능성을 십분 살렸다. 서울대는 교수가 전공을 설계했던 과거와 다르게 학생 스스로가 전공을 설계할 수 있도록 했다. 가령 예술과 경영을 융합한 학문을 전공하고 싶다면 스스로 ‘예술경영’이라는 전공을 만들어 전공에 부합하는 수업을 받으면 된다. 대학은 학생의 제안한 전공 내용을 심사해 전공으로써의 요건이 충족되면 전공으로 인정하고 졸업장을 수여 할 때 ‘예술경영’이라고 기제해준다. 또한 학생이 수업을 제안할 수 있도록 ‘교양 교과목 공모전’을 열어 학생들이 바라는 교양을 실제 수업으로 만들고 있다.
오 총장은 끝으로 대학혁신을 위해 “한국 교육은 획기적인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며 “대학은 전공 간의 벽을 낮추고 학생들을 뒤에서 감독하고 도와주는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