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3명 중 1명이 공시 준비
코로나19보다 무서운 취업난
“청년사회 역동성 되찾아야”

노량진 고시촌을 내려다본 모습.(사진=박종민 기자)
노량진 고시촌을 내려다본 모습.(사진=박종민 기자)

[한국대학신문 박종민 기자] 지난달 27일 오후 1시 노량진역 앞은 북적였다. 서울동작경찰서 주변 번화가에서도 수업을 찾아 이동하는 고시생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고시생들은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있었던 작년 연말에 비해 학생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답했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노량진에 들어온 이건영 씨는 “작년에 들어왔을 때 고시원 공실이 많았다. 올해 들어서는 고시원이 꽉 찼다. 지금 있는 고시원에는 20개 정도 방이 있는데 공실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변 공인중개사에서 원룸 매물을 찾아본 결과 노량진역 근처는 매물이 거의 없었다. 취재 중 만난 학원가 근처의 한 공인중개사는 “학원과 접근성이 좋은 원룸은 매물이 없다. (노량진 1동과 2동 사이에 있는) 언덕 아래의 원룸은 다 나갔고 남은 매물은 언덕 위에 있는 것들 뿐이다”고 설명했다.

북적이는 노량진의 모습은 공무원 시험 등 고시를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이 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5월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준비생 중 일반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비율은 32.4%로 나타났다. 취업준비생 3명 중 1명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고시촌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밖은 델타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시끄럽다. 지난달 6일부터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연일 네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늘어나는 고시생은 어떻게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지 직접 노량진 고시촌을 찾아가 봤다.

■ 밀집된 공간 속 사라진 거리두기 =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노량진 고시촌 골목을 돌아다녔다.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오후 1시와 저녁시간이 시작되는 오후 5시 30분 전후에 사람이 많았다. 고시생 대부분은 다음 수업이 있는 학원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늘에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는 모습도 흔하게 접할 수 있었다.

‘노량진 고시촌’은 말 그대로 고시를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다.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과 올림픽대로가 있는 북쪽을 제외하고 노량진역을 중심으로 반경 500m 안에 학원과 식당, 편의시설 등 고시공부에 필요한 모든 공간이 밀집돼 있다. 서울시가 2019년에 발표한 ‘서울시 사설학원 및 독서실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에 등록된 260개의 인문사회 평생직업교육학원(공무원학원, 고시학원 등) 중 70개가 동작구에 있다. 걸어서 2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 안에 서울에 있는 공무원학원과 고시학원의 4분의 1이 모여있다. 모든 시설이 밀집된 공간 속에서 ‘거리두기’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취재 중 만난 고시생들은 오후 10시에 사람이 가장 많다고 답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에 따라 학원가와 근처 상점가의 마감 시간이 똑같이 10시로 맞춰져 있어 거리에 사람이 몰린다는 것이다. 이 씨는 “10시가 되면 학원 수업과 자습을 마치고 나온 고시생과 노량진중앙시장에서 술집과 음식점을 찾은 손님들로 골목을 가득 메운다. 학원에서 자습을 끝내고 나오면 발 디딜 틈이 없다. 횡단보도에도 사람이 넘친다”고 설명했다.

공무원 학원 근처에 모여있는 고시생들의 모습.(사진=박종민 기자)
공무원 학원 근처에 모여있는 고시생들의 모습.(사진=박종민 기자)

■ 방역지침 실종된 ‘고시뷔페’ = 코로나19에 취약한 또 다른 부분은 식사 공간이다. 노량진에 있는 고시생들은 주로 ‘고시뷔페’라고 불리는 뷔페식 식당을 찾는다. 저녁을 먹으러 오후 6시쯤 동작경찰서 뒤편 골목에 위치한 고시뷔페에 들어가 봤다. 한 끼의 가격은 4000원에서 4500원으로 저렴했다. 식당에서 만난 한 고시생은 “저렴한 가격으로 양껏 먹을 수 있고 학원에서도 가까워 애용한다”고 흡족해했다.

많은 학생이 찾지만 방역수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ㄹ’고시뷔페에서는 단체손님이 명부를 작성하지 않고 곧바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비말감염을 막기 위한 아크릴판도 4인용 테이블 하나당 1개만 설치돼 있었다. 식당을 찾은 고시생은 대부분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는다. 다른 골목에 위치한 ‘ㄴ’고시뷔페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 씨는 “가끔 QR코드를 찍는 전자 출입명부를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찍지 않아도 직원이 전혀 제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고시생이 자주 찾는 '고시뷔페'의 모습. 서로 마주 보고 밥을 먹는 사람이 많다.(사진=박종민 기자)
고시생이 자주 찾는 '고시뷔페'의 모습. 서로 마주 보고 밥을 먹는 사람이 많다.(사진=박종민 기자)

■ 취약한 학원 시설 ‘체력단련실’ ‘면접학원’ = 학원 내부도 코로나19 안전지대가 아니다. 학원에서 한 강의실에 들어가는 학생 수를 반 이상 줄여 강의를 나누고 두 자리 띄어 앉기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확진자를 완전히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학원 외에 스터디카페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씨는 “주변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할 때가 더러 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스터디카페에도 이번 달에 확진자가 발생했다. 3일 정도 방역절차를 거치고 지금은 다시 정상운영 중이다”고 설명했다.

가장 취약한 학원 시설은 불가피하게 오프라인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체력단련실과 면접·스피치학원이다. 가장 많은 인원을 선발하는 9급 공채시험과 경찰·소방직 시험에서 각각 면접시험과 체력시험을 진행하기 때문에 고시생이 몰린다. 이 씨는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로 체력단련실을 이용하고 있다. 가끔 운동기구를 소독하지만 다른 사람이 만졌던 것을 계속 쓸 수밖에 없다. 샤워실은 방역지침에 따라 폐쇄됐다”고 전했다.

■ ‘안전한’ 직업으로 모여드는 고시생 =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노량진 고시촌에 고시생이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들이 ‘정년과 노후까지 안전한’ 공무원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종합교육기업 에듀윌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 895명을 대상으로 ‘공무원시험 준비 현황’ 조사(복수응답 가능)를 진행했다. 조사에 따르면 67.5%의 고시생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에 대해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 ‘노후에 연금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라고 답한 사람은 26.1%로 뒤를 이었다. 배상훈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선발중심의 교육 풍토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청년은 불안한 취업보다 안전한 ‘시험’을 선호한다. 취업이나 창업을 위해 도전하는 것보다 시험공부가 청년에게 더 익숙하기에 공무원 시험에 사람이 몰린다”고 분석했다.

고시생은 공무원을 '안전한' 직업으로 인식하고 있다.(자료=에듀윌)
고시생은 공무원을 '안전한' 직업으로 인식하고 있다.(자료=에듀윌)

‘사기업 구직난’도 고시생이 몰리는 중요한 이유다. 에듀윌의 같은 조사에서 21%의 고시생이 ‘코로나 19 이후 사기업 채용이 줄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답했다. 5명 중 1명이 사기업 구직난을 이유로 진로를 바꾼 것이다. 코로나19에 얼어붙은 사기업 채용과 대조적으로 공무원 채용 규모는 거의 줄지 않았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최근 5년간 지방공무원 채용 규모(소방직 제외)를 보면 2017년에 1만 6770명이었던 지방공무원 채용이 2018년에 2만 434명으로 늘었고 2019년에는 2만 7456명으로 대폭 상승했다. 작년과 올해 채용인원은 각각 2만 7271명, 2만 7195명으로 2019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공무원의 수는 업무량과 관계없이 증가한다는 ‘파킨슨의 법칙’이 절로 떠오른다.

바뀌는 전형방식도 고시생이 늘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경찰공무원 일반 순경 채용시험의 경우 2022년부터 영어와 한국사가 빠지고 헌법, 형사법, 경찰학개론 등 3개 과목만 필기시험을 진행한다. 필기시험 과목이 줄어드는 대신 영어검정시험과 한국사검정시험에서 기준점수를 넘기면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는 방식으로 전형이 진행된다. 취재 중 만난 또다른 고시생은 “내년 경찰공무원 시험을 보려고 최근 노량진으로 들어왔다. 주변에도 영어가 빠져서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 역동성 잃어버린 청년사회 = 청년이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문제에 근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배 교수는 “고시생이 늘어나는 현상은 청년사회의 역동성이 상실돼 나타난 비극”이라며 “공무원 채용을 늘리기보다는 청년이 도전적으로 취업과 창업에 나설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청년사회의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지만 갈 길이 멀다. 지금 청년에게는 얼어붙은 취업시장에서 비롯된 미래의 불안이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현재의 위협보다 크게 와닿는다. 이 씨는 “주변에서 확진자가 나오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코로나19로 학원에서 오프라인 수업을 못 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면 어떻게 시험을 준비할지가 더 걱정이다”고 우려했다. 올해 시험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공무원 채용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방침과 직업의 안정성을 원하는 청년의 요구가 맞아 떨어지면서 노량진 고시촌은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사기업 구직난이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바이러스의 위협이 어디서 닥칠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고시생들은 불을 밝히고 있다.

저녁시간에 붐비는 노량진역 앞의 모습.(사진=박종민 기자)
저녁시간에 붐비는 노량진역 앞의 모습.(사진=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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