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의 과도한 규제는 정부 정책과도 배치
정치적 산물 ‘반값 등록금’ 규제에 재정 악화
대학기본역량 등 평가로 재정 옥죄는 규제多
평가방식·사업비 지급·대학 4대 요건 개편 등 현안 산적
<편집자 주>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는 기술패권 시대에 대학들이 미래교육을 위한 인재양성 준비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재정이 없어 최소한의 인프라를 가지고 글로벌 대학들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 아프기만 하다. 지역 대학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다. 또 미래교육 위한 혁신을 하려고 해도 법 규제와 같은 해묵은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에 본지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와 공동기획을 통해 ‘미래교육 위한 고등교육 대전환’이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과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上 지역 대학을 위한 지속가능성 확보
中 미래교육 인프라 구축 위한 재정 지원 절실
下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법 규제 완화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자동차의 시대가 다가오는데 마차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
본지 주최 프레지던트 서밋에서 장제국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장(사총협)은 규제 완화를 촉구하며 ‘대학이 마차의 시대’에 멈춰있다고 표현했다. 대학은 혁신에 목말라 있다. 수 년 전부터 혁신을 외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현재의 고등교육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 이후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준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대학의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법 규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2019년 교육부-대교협 고등교육정책공동 TF에서 대학의 규제개선 과제 협의를 거친 결과 대학설립·운영과 시설 분야에 대한 건의과제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의 행정·재정제도 개선과 산학협력, 대학인사, 대학정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대교협은 지난 7월 ‘2021년 대학 규제 및 혁신 사례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 설문조사에서도 △대학 설립·운영 4대 요건 기준 완화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용도 제한 폐지 △대학기본역량진단 지표 개선 등 공통의 목소리가 높았다.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규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미래의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인재 양성 정책과도 배치된다. 과도한 규제는 교육과정의 획일성을 가져올 뿐 아니라 대학 교육의 전문성, 교육의 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운영부터 입시·재정까지 모두 규제의 대상이 된 대학= 대학 운영은 학생 선발부터 재정 문제까지 각종 규제에 걸려있다. 대학들의 재정적 악화를 가져온 원인 중 하나는 ‘반값 등록금’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탄생한 반값 등록금은 13년째 동결 중이다. 사립대가 80% 이상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국내 대학들은 재정의 대부분을 등록금 수익에 의존하지만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해마다 강제적인 등록금 동결에 동참하고 있다.
대학의 입시도 정부의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당초 수시 비중을 확대했던 정부는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자 급작스런 정시 확대 기조로 선회했다. 이른바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토대로 서울의 주요 대학은 2023년까지 정시를 40%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 이에 동참하지 않는 대학에는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배제하는 페널티까지 제시하면서 현장의 비판을 받았다.
시대에 동떨어진 해묵은 규제도 있다. 국내 대학은 1990년대 마련된 ‘대학설립·운영 규정’을 따라 △교사(학교 건물) △교지(학교 부지) △교원 △수익용기본재산 등 4대 필수 요건을 갖춰야 한다. 대학의 용도에 맞춘 소규모 대학 설립이나 대학의 유휴자산을 상황에 따라 처리하지 못하는 등의 이유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해외 시장으로의 진출을 염두하고 있는 대학들이 많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해외캠퍼스 설립이 가능하도록 법은 개정됐지만 정작 국내 등록금 수익을 해외로 반출할 수 없도록 한 외국환거래법에 막히면서 대학들은 해외캠퍼스 설립을 포기했다. 이러한 규제 해결을 교육부에 촉구했지만 여전히 진전이 없다. 정원 자율화와 학제개편, 세금 및 기부금 규제 개선 등 곳곳에 시급히 해결해야 할 규제들이 산적해 있다.
지난 11월 교육부가 ‘인재양성 정책 혁신방안’을 수립하고 혁신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교육 유연화 계획을 공개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온라인 수업 전면 확대를 비롯해 정원 확대, 대학설립·운영 규정 개편, 산학협력 강화 등을 내세웠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내년부터인데다 원론적인 수준의 개편에 그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대학의 자율화를 선언하면 교육부의 역할이 사라질 텐데 (전면 자율화) 그 정도 수준의 규제 완화책이 나올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학기본역량진단 등 정부재정지원 사업에 기댄 대학= 대학의 재정을 옥죄는 ‘대학 기본역량진단’도 대표적인 규제 정책으로 꼽힌다. 국내 대학의 재정은 등록금과 정부재정지원사업에 의존하고 있다. 13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데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의 입학자원마저 줄어들면서 등록금 수입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결국 대학은 정부재정지원사업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서도 대학에 대한 지원은 명칭만 바뀌어 왔을 뿐 여전히 평가를 통한 규제 정책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대교협 하계세미나에서는 재정지원 대학을 95%까지 확대해 달라는 주문이 나오기도 했다. 앞서 발표된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분류된 대학을 제외한 모든 대학에 정부의 재정지원을 촉구한 것이다.
김인철 대교협 회장은 “지금은 경쟁이 아닌 공유와 협업이 필요한 시기”라며 “재정지원 비율을 95%까지 요구하는 상황에서 과도하게 대학이 배제되면 재학생들에게도 치명적인 불이익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부의 선택은 72%의 대학에만 지원하는 것이었다. 지난 8월 3주기 대학 기본역량진단 결과에서는 52개 대학이 미선정 대학으로 분류되면서 대학 사회의 진통이 이어졌다. 대학들은 즉각 반발했고 학생과 노조도 나서서 국가의 재정지원이 평가를 통해 차별적으로 이뤄지는 현 제도와 정책의 모순을 꼬집었다.
이후 정부와 국회가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서 혁신지원사업비 770억 원을 증액해 52개 미선정 대학 중 절반을 구제하기로 하면서 오히려 논란은 가속화 됐다. 52개 대학에 대한 재평가 여부, 패자부활전을 통한 재정지원 추가에 따른 교육부의 모순 촉발 등 스스로 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린 격이 됐다.
전국 대학 교수와 직원노조, 학생들은 혁신지원사업비 증액 예산안이 통과된 뒤 “대학평가보다 고등교육재정지원 확대를 촉구한다”면서 “대학 위기에 대한 실질적 대책마련이 시급한 시점에서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도 현재에 맞게 전면 재설계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3주기 진단 결과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대학 사회에 얼마나 큰 혼란을 주는지를 증명했다.
■교육의 대전환기에 규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전문가들은 급변하는 교육의 대전환기에 맞는 규제의 혁신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발생하는 상황에 맞춰 대학설립·운영 규정을 개편해 △교육용 기본재산의 수익용 기본재산 전환 △온라인 과정 운영에 따른 4대 요건 적용 기준 완화 △학사구조 자율화에 따른 행정적 문제 보완 등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3주기 진단 개편도 시급하다. 권역별로 나눠 지방의 불리함을 없앴다고는 하지만 소규모대학이나 사립대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지표의 개선은 필요해 보인다. 진단 지표의 단순화와 대학의 특성을 고려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대교협의 ‘2021년 대학 규제 및 혁신 사례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가 체계를 하나로 일원화 해 그에 따르는 행정적·재정적 비용의 최소화 하는 방법, 대학혁신지원사업비의 용도 제한 폐지 등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많다. 장기간 등록금 동결과 입학금 폐지, 교내장학금 확대 등에 따른 수입결손에 대한 보전 차원으로 혁신지원사업비를 완전일반지원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황인성 사총협 사무처장은 “어떤 것이 규제라고 항목을 정하는 것조차 문제가 있다”면서 “안 되는 것 빼고 다 되는 미국식 인증제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