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물가 상승으로 대학가 덮친 고물가에 학생들 ‘울상’
식비 부담으로 학업 대신 생활비 걱정하는 학생 늘어
정부·대학, 밥 굶는 청년들 위한 지원책 고심해야

[한국대학신문 우지수 기자] “아르바이트로만 쓰리잡이라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동대문구 소재 대학생 A씨)

학생식당 가격이 오르면서 학생들의 생활비 부담이 덩달아 늘고 있다. 최근 급속하게 오르고 있는 국내 물가 때문이다. 늘어나는 식비·생활비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대학생 중 아르바이트 등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업을 일부 포기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 이 같은 현상이 대학생들의 학업·취업에 악영향을 미쳐 사회적 악순환을 부를 것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식비를 포함한 학생들 생활비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정부 예산 마련 등 국가 재정의 한계로 재정 지원은 어렵더라도 대학 자체 노력 또는 생활비 자체를 지원할 수 있는 장학제도 마련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9일 대학가에 따르면 전국적 물가 상승의 파도가 대학교 학생식당까지 영향을 미쳤다. 본지 취재 결과 최근 서울 주요 대학가의 학생식당 가격은 9월 기준 지난 1년 대비 최대 20%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외대는 이달부터 교수회관 식당 가격을 5500원에서 약 18%(1000원) 인상된 6500원으로 변경했다. 인천의 A 전문대도 학생식당 가격을 500원 인상했다. 서울대 역시 학생식당 가격을 20% 올렸다. 다만 학생 반발을 고려해 저렴한 메뉴를 신규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동대문구의 대학생 김 모 씨는 “식비 상승으로 생활비 지출이 1.5배 정도 늘었다”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는 힘들다.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입장에서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고 토로했다.

지난 5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 대학 학생식당에서 학생들이 배식을 받고 있다. (사진=우지수 기자)
지난 5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 대학 학생식당에서 학생들이 배식을 받고 있다. (사진=우지수 기자)

■ 대학가 “오른 물가에 비해 가격 덜 올렸다” = 대학가는 물가가 최근 급격하게 오른 탓에 학생식당 가격 상승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B대학 학생식당 관계자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학생식당 이용자가 감소해 3억 6000만 원이 넘는 적자가 발생했다”며 “식자재 가격이 그동안 40% 넘게 올라 어쩔 수 없이 20% 가격 상승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학생식당뿐 아니라 대학가 식당가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국외대와 경희대, 서울시립대가 몰려있는 동대문구 주변 식당은 이달 음식 가격을 평균 10% 가량 올렸다. 자영업자 B씨는 “저렴한 가격에 학생들이 자주 찾아줬다는 사실을 알기에 최소한으로만 가격을 올렸다”고 하소연했다.

이 같은 대학가 식비 인상은 최근 급격하게 오른 물가상승의 영향이다. 지난 2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7을 나타냈다. 통상적으로 소비자물가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물가수준이 얼마나 되는지를 표시한 지표다. 가령 물가지수가 120이라면 물가수준이 20% 높은 것을 의미한다. 또 식용유는 161.83, 밀가루가 138.22 등 식당 원자재 상당수가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일대의 대학 식당가의 모습 (사진=우지수 기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일대의 대학 식당가의 모습 (사진=우지수 기자)

■ 생활비 부담 느낀 대학생, 아르바이트 병행 ‘불가피’ = 대학가를 덮친 고물가에 생활비 걱정으로 학기 시작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경기도 용인의 사립대학에 다니는 김모 씨(25)는 “방학 전까지는 용돈으로 생활 유지가 가능했는데 지난달에 생활비 지출이 20% 이상 크게 늘었다. 물가가 이대로 오른다면 용돈으로는 생활할 수 없을 것 같아 학교 수업과 병행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학교 근처 매장은 아르바이트생을 다 구해서 개강 후인 지금 구하는 것도 늦은 느낌이 든다”고 학생들이 물가 상승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상황을 전했다.

알바천국이 지난 1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번 2학기에 아르바이트를 계획하고 있다고 답한 학생은 89.5%(1621명)에 달했다. 지난 1학기에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 아르바이트를 계획하고 있다고 답한 학생은 57.6%였다.

아르바이트를 계획하고 있는 이유로 ‘용돈이 부족해 스스로 추가적인 용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한 학생은 10명 중 7명꼴로 나타났다. 10명 중 3명은 ‘물가 인상으로 인한 생활비 부담’ 때문이라고도 답했다.

이 같은 현상은 대학생들이 최근 급격하게 오르는 물가를 체감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가 상승을 체감했는지를 묻는 조사에서 응답자의 90%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 물가 상승이 가장 크게 체감되는 항목 역시 ‘식비’(91.1%)가 꼽혔다.

학생들이 자주 끼니를 해결하는 프랜차이즈 식당의 가격 인상이 물가 체감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외대에 재학 중인 이영주 씨(23)는 “학식 가격도 올랐고 다른 프랜차이즈에 영향력을 끼치는 브랜드에서 연이어 가격을 올릴 때마다 물가 상승을 체감하게 된다”며 “한 끼 평균 8000원에서 만 원 정도의 식비를 지출하면서 생활하다 보니 용돈을 받고 아르바이트까지 해도 모이는 돈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불만을 전했다.

순천향대 학생식당에서 천원의 아침밥을 먹는 학생 (사진=한국대학신문DB)
순천향대 학생식당에서 천원의 아침밥을 먹는 학생 (사진=한국대학신문DB)

■ 밥 굶는 청년 지원, 사회적 논의 필요 = 정부가 학생식당의 식대를 일부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전국 26개 대학 총학생회로 구성된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는 “천원의 아침밥 사업과 같이 정부·대학이 학생 식대를 지원하는 제도가 확대돼야 한다”며 “학식은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대표적 복지다. 대학과 지자체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나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원의 아침밥은 정부의 지원으로 학생들이 교내 식당에서 쌀 식단의 아침밥을 천 원에 제공하는 사업이다.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에게 월 35만 원의 식비를 지원하는 기아대책의 ‘청년 도시락 사업’ 에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사업 초기 이 사업 지원자는 200여 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600명으로 급증했다. 식비 지원책에 대한 학생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대학·지자체에서 이를 참고해 제도를 마련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물가 상승을 초래하는 정부의 과도한 세금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대학생들의 후생복지 개선 방안으로 ‘캠퍼스 내 위탁・임대운영 후생복지시설에 대한 비과세’를 교육부에 제안했다.

현행 법령상 학교가 식당 등 후생복지시설을 직접 운영하면 고유목적사업으로 판단해 법인·부가가치·지방세 등이 비과세로 처리된다. 반면 외부업체에 위탁·임대 운영하는 경우 수익사업으로 판단해 과세한다. 위탁·임대 운영으로 학생식당을 운영하는 대학이 많은 만큼 이 사항을 개선한다면 학생들의 식비 절약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생들은 무엇보다 학업에 집중해 미래사회에서 핵심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이들이 생활고로 학업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면 장기적인 국가 손실이 발생한다”며 “이에 대해서 정부와 학교가 합심해 생활비 장학금을 만들고 어려운 학생들을 위주로 차등 지원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일각에서는 대학생들을 부모에게 용돈만 받아 쓰고 취업하려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취업만 하면 이들의 생활고가 해소될 것이라는 말은 청년 빈곤의 심각성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게 만든다”며 “배고픔이 해소돼야 취업에도 힘을 쏟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단순히 식비 지원이라는 명목보다는 학생들의 생활비 부담을 줄인다는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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