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석 레코스(LecoS) 대표

최근 기업과 지자체뿐 아니라 교육계에서도 ‘디지털 배지(Digital Badg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디지털 학습 이력과 경력을 증명하는 디지털 배지를 도입하고자 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디지털 배지가 활발하게 사용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도입 초기라는 점에서 활성화를 위한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본지는 디지털 배지 도입에 앞서 연재기획 ‘디지털 대전환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연재기획을 통해 전문가 시각에서 디지털 배지의 글로벌 표준 정립, 학생 관점의 디지털 이력 관리 중요성을 살펴보고, 향후 흐름을 조망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연재 순서
①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교무처장)
② 장상현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교육데이터센터장
③ 노원석 레코스 대표
④ 홍정민 휴넷 L&D연구소장
⑤ 조훈 전문대교협 국제협력실장
⑥ 이상범 교육부 전(前) 중등직업교육정책과장
⑦ 전문가 좌담회

노원석 레코스(LecoS) 대표
노원석 레코스(LecoS) 대표

“오픈배지가 필요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학생(직원)들이 어떤 학습경험을 했는지? 어떠한 역량을 갖고 있는지? 이 외에도 다양한 학습이력과 경험, 스킬을 오픈배지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오픈배지는 그것이 국제표준규격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자신의 배지지갑뿐만이 아니라 SNS와 e포트폴리오 등에 자유롭게 공개하고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가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개인이 보유한 역량의 가시화를 통해 급변하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인재활용의 새로운 에코시스템의 중심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한 대학의 담당자가 오픈배지를 도입하면서 말한 내용이다. ‘학력’이 아닌 ‘학습력’이 중심이 되는 사회, 학연이나 지연, 인맥이 성공의 열쇠가 아닌 어떠한 학습경로를 걸어왔는지와 어떤 역량과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배지로 가시화해 활용하는 것이 오픈배지 생태계가 추구하는 목표임을 잘 설명해 준다.

오픈배지 보급이 이미 확산된 미국과 유럽에 비해 아시아 시장에서 오픈배지의 전개는 2021년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봐야 한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국제표준 인증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는 레코스(LecoS)가 창립된 2021년 8월 시점의 한국은 디지털배지와 오픈배지에 대한 초기 단계 논의만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 이전인 2018년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디지털배지 도입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지속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비대면 교육의 확산과 온라인 교육 인증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2021년 말부터 디지털배지 도입에 대한 교육계와 정부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2022년 5월 출범한 새 정부가 ‘디지털 100만 인재양성’을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그 결과를 디지털배지로 인증하겠다는 후속 조치가 나오면서 순식간에 디지털배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사업화하려는 움직임도 커지기 시작했다. 산업부의 K-OPEN BADGE, 과기정통부의 NFT 기반 디지털배지 등이 R&D 사업으로 진행 중이고 몇몇 민간기업에서도 디지털배지 플랫폼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디지털배지 혹은 오픈배지에 대한 관심과 그 생태계의 확산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디지털배지와 오픈배지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오픈배지와 디지털배지는 다르다. 디지털배지는 성과를 증명하는 온라인 자격증명의 한 종류가 될 수 있다. 최근 수많은 온·오프라인 학습기관에서 수료 증명으로 온라인 증명서를 발행하고 있으며, 디지털 증명서·디지털배지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오픈배지와 디지털배지는 개념이 다르다. 오픈배지는 배지 이미지 안에 학습자의 성과, 역량 등의 메타데이터가 담겨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검증이 가능하고, 소셜 공유가 가능하다. 또한 오픈배지 기술을 사용한 플랫폼에서 발행된 배지라면 하나의 배지 지갑에 담아 관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여러 교육기관에서 받은 배지를 한 곳에 보관할 수 있는 것다. 오픈배지는 교육분야의 표준 기술을 정하는 세계적 기관인 ‘1EDTECH 컨소시엄’에서 정한 디지털배지의 표준 기술이며, 오픈배지 인증을 받은 플랫폼에서 발행한 디지털배지를 오픈배지라고 할 수 있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왜 오픈배지를 사용해야 하는가’이다. 디지털배지가 획득한 성과를 온라인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오픈배지는 이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신뢰할 수 있는 조직을 통해 자신의 기술, 관심사, 성과, 역량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며 해당 정보를 배지 이미지 파일에 첨부하며 배지에 접근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메타데이터를 넣어준다. 오픈배지 기술 표준을 사용한 배지를 받은 수령자라면 다양한 발급자의 여러 배지를 결합해 자신의 성과에 대한 전체적인 스토리를 공유할 수 있다. 수령자는 온라인상에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든지 자신의 배지를 표시할 수 있으며 취업, 교육, 평생 학습을 위해 공유가 가능하다.

​하나의 교육기관에서만 교육을 받고 한 회사에서만 일을 한다면, 그 곳에서 발행한 디지털배지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는 다양한 교육기관이 있으며, 평생직장의 개념도 사라지고 있다. 학습자들은 자신이 필요한 교육을 원하는 곳에서 선택해 받을 수 있고, 자신의 커리어 개발에 도움이 되는 회사에 취직을 하며, 그곳에서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쌓고, 또 다른 직장으로의 이직을 통해 성장동력을 이어간다. 학습자들은 국제표준기술로 만들어진 오픈배지의 발행으로 각 교육 기관에서 받은 학습의 증명, 각 회사에서 쌓아 올린 경력의 증명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다. 이것이 오픈배지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즉, 오픈배지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난 2년간 국내에서 오픈배지를 발행한 사례들을 살펴 보자. 가장 최초는 한양대학교 교육혁신단의 마이스터디그리 반도체 전문가 과정에 발행된 오픈배지다. 이어 두 번째 오픈배지가 발행된 곳은 48개 대학이 공동으로 참여 중인 학점인정컨소시엄이었다. 학점인정컨소시엄은 현재 가장 많은 오픈배지가 발행된 이슈어(발행자)다. 2022년도에 들어오면서 성균관대학교의 오픈배지 도입 사례는 가히 주목할 만한 사례였다. 성균관대 학생성공센터에서는 현재 30여 종의 오픈배지를 발행하고 있다. 각종 공모전과 성적우수 장학금도 오픈배지로 발급해 학생들이 자신의 e포트폴리오에 오픈배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연간 1만 개 정도의 오픈배지가 성균관대에서 발행될 전망이다.

DX 대전환 시대의 필수 역량인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한국통신(KT)와 모 경제신문사가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는 AICE(AI Certificate for Everyone) 시험 합격자에게 오픈배지가 발급되고 있다. 시험은 총 5개 등급으로 나뉘며 Professional / Associate / Basic / Junior / Future로 명명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최근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K-Culture에 힘입어 해외에 있는 한국어 교수자 중 한국어 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K-Teacher 오픈배지를 발급하고 있다. 이외에도 각 대학에서 오픈배지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대학의 오픈배지 도입과 활용을 가속화 한 곳은 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다. 학회는 전문대학 64교가 참여 중인 메타버시티 플랫폼에 오픈배지 5종을 발행했다. 민간자격인 동시에 메타버시티 플랫폼을 이용하는 대학과 학생들의 역량을 배지로 증명하고, 이를 다시 취업역량 강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둘 수 있는 사례다. 현재 국내에서는 151개 대학이 오픈배지를 발급 중이다.

한편 기업에서도 오픈배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4만여 기업에 기업연수 프로그램을 제공 중인 휴넷(HUNET)은 자사의 모든 컨텐츠에 오픈배지를 도입해 직장인의 역량 강화와 리스킬링, 업스킬링을 오픈배지로 가시화하고 이를 위한 SKILL-SET의 제공을 준비 중이다.

그 외에도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교사연수 과정에 오픈배지를 도입했고 교원연수 전문교육기업인 테크빌과 웅진싱크빅 유데미, 알파코, 퍼브 등이 오픈배지를 발급하고 있다.

오픈배지의 보급·활용은 이제 한국을 넘어 아시아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국립대학 직업훈련센터인 UI ACADEMY가 오픈배지 도입을 결정하고 지난 9월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태국, 대만 등 아시아 여러 대학들과 기업들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동경대학교, 와세다대학교, 도호쿠대학 등 80개 대학이 오픈배지를 발급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마디로 오픈배지의 활용이 가능한 생태계가 실제 글로벌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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