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민 휴넷 L&D연구소장

최근 기업과 지자체뿐 아니라 교육계에서도 ‘디지털 배지(Digital Badg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디지털 학습 이력과 경력을 증명하는 디지털 배지를 도입하고자 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디지털 배지가 활발하게 사용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도입 초기라는 점에서 활성화를 위한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본지는 디지털 배지 도입에 앞서 연재기획 ‘디지털 대전환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연재기획을 통해 전문가 시각에서 디지털 배지의 글로벌 표준 정립, 학생 관점의 디지털 이력 관리 중요성을 살펴보고, 향후 흐름을 조망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연재 순서

①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교무처장)
② 장상현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교육데이터센터장
③ 노원석 레코스 대표
④ 홍정민 휴넷 L&D연구소장
⑤ 조훈 전문대교협 국제협력실장
⑥ 이상범 교육부 전(前) 중등직업교육정책과장
⑦ 전문가 좌담회

왜 오픈 배지인가?

홍정민 휴넷 L&D연구소장.
홍정민 휴넷 L&D연구소장.

올해 5월부터 모 방송사에서는 ‘대학혁신’이라는 주제로 5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방영했다. 그리고 4부에서는 국내 유수의 IT서비스 업체 인사 담당자가 나와서 이렇게 밝혔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직무역량입니다.” 그리고 학위에 대해서는 이렇게 얘기했다. “학위는 보긴 봅니다. 하지만 참고사항 정도로 봅니다.” 이 기업은 면접에 있어 학위는 단순히 참고사항일 뿐이라고 말한다. 직무경험과 직무역량을 우선시하며 이는 심층 면접을 통해 확인한다.

그동안 학위와 자격은 개인의 능력을 검증하는 좋은 수단이었다. 디지털이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서 학위와 자격은 그 사람의 역량을 판단할 몇 안 되는 수단이기도 했다.

하지만 디지털화로 인해 정보가 투명해지고 개방적으로 변하면서 개개인의 역량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회사에서의 업무 경험들이 디지털로 기록되고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이 SNS에 기록된다. 또 직무를 발휘했던 흔적은 사내 업무시스템에 그대로 기록된다. 이런 개개인의 능력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기록들이 공개되고 활용되면서 학위와 자격의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의 능력에 대한 세부적 정보가 없었을 때는 학위·자격이라는 과거의 성취를 기반으로 사람의 능력을 추측했지만 지금과 같이 디지털 기록을 추적할 수 있는 시점에서는 과거의 정보가 아니라 현재의 능력으로 판단할 수 있다.

지식과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는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했느냐보다 현재 어떤 스킬과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쏟아지는 시점에서 기업은 대학이라는 과거의 타이틀보다 실질적 능력을 검증할 기준을 필요로 하게 됐다.

(출처: JOSH BERSIN/Eight Learnings About Jobs, Skills, And Org Design. And The Apple Genius Bar)
(출처: JOSH BERSIN/Eight Learnings About Jobs, Skills, And Org Design. And The Apple Genius Bar)

직업의 위계구조는 직업(Job)-역할(Role)-역량과 능력(Capabilites or Competency)-스킬(Skills)로 구분될 수 있다. 인재 관리는 과거 직업과 역할 중심에서 역량(Competecncy) 중심으로 흘러왔다. 최근의 급격한 비즈니스 환경 변화는 역량이나 능력 단위 인재 관리의 한계를 느끼게 하고 있다.

미국의 HR 컨설팅 회사인 Brandon Hall Group의 2020년 조사에 의하면 “왜 인재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 65%의 응답자가 “현재의 교육은 경력개발과 직업, 역할에 연결되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교육과 경력, 교육과 직업이 직접 연결되기 위해서는 역량보다 조금 더 세분화된 단위가 필요하다. 역량 단위는 일반적으로 한 기업에서 200~500개 정도가 활용된다. 최근 인공지능 기반의 스킬단위를 적극 관리하고 있는 Eightfold.ai 회사의 경우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140만 개 이상의 스킬을 도출해 활용하고 있다. ‘마케팅 기획’ 역량의 경우 ‘유튜브·키워드·블로그·틱톡’ 마케팅 기획 등의 스킬 단위로 구분될 수 있다.

역량에서 스킬로 인재 관리 축이 변화한 이유는 최근 빠른 비즈니스 환경 변화 때문이다. 이런 필요에 맞게 빠른 지식과 기술의 변화 즉, 스킬 단위를 반영한 프로그램들이 바로 나노디그리와 마이크로칼리지와 같은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4년 동안의 학위가 아니라 3개월~6개월 단위로 최신 지식을 학습하고 마스터한다. 기업 내에서도 이런 짧은 단위의 프로그램들을 집중적으로 마스터할 수 있는 역량 아카데미(Capability Academy)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지식과 기술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고, 이를 학위와 자격 프로그램처럼 인증하는 것이 필요해졌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짧은 프로그램의 능력 인증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요구되고, 여기에 블록체인 기술 바탕의 디지털 배지는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우리는 오프라인 중심 시대에서 학위나 자격증을 집안에 전시해 두거나 보관함에 정리해 뒀다. 회사에서 학위증과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하면 일일이 복사하거나 사본을 발급해 기관에 제출했다.

학위증이나 자격증이 디지털로 통합·관리된다면 어떨까? 집에 따로 보관할 필요도 없고, 필요 시 일일이 발급할 필요도 없다면 매우 편리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디지털 배지이다. 디지털 배지는 디지털로 학습 이수 현황들과 역량들을 보여줄 수 있는 증거들을 통합 발급·관리할 수 있게 한다.

개개인은 오픈 배지를 통해 자신이 보유한 능력과 스킬을 통합·관리할 수 있고 기업은 개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기업 전반에서 보유하고 있는 능력과 스킬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기업과 개인들의 디지털 배지 활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통적인 학위 및 자격(Certifications, Licenses, Diplomas) 부문이 기술과 결합돼 디지털화(Digitalization)되면서 오픈 배지가 함께 성장하는 추세이며, 나노디그리(Nano-Degrees) 부문이 오픈 배지 개념을 통해 직업교육 분야에까지 점차 확산되고 있다. Techvio의 전망에 의하면 오픈 배지 시장은 2021~2025년까지 평균 시장 성장률이 17.6%로 예상된다. 또 이런 성장으로 2025년까지의 시장규모는 2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 예측된다.

기업 내 성장을 촉진하는 오픈 배지

오픈 배지는 학습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IBM에서는 2015년부터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오픈 배지를 발행했다. 2020년까지 195개국 약 300만 개의 오픈 배지가 발행됐다. 2022년에는 27개 분야에서 3000여 종류의 오픈 배지를 발행 중이며 오픈 배지를 통한 다양한 학습 증대 효과를 누리고 있다. 오픈 배지 적용 이후 학습자 수가 129% 상승했으며 학습 수료율 또한 226% 상향됐다. 또한 지속적 학습 동기 차원에서의 학습 참여율이 강화됐다. 배지 취득자의 87%는 앞으로 배지 기반의 학습에 참여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디지털 배지는 학습 동기부여 차원과 학습 재참여율을 높여 디지털 학습의 약점인 학습 동기부여 강화에 훌륭한 도구(Tool)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월마트는 Better U 프로그램을 통해 임지원의 학위·자격 취득을 지원하고 있다. 프로그램 내부에 다양한 학위·자격 프로그램들을 입점시키고, 이를 수료할 경우 오픈 배지를 발행해 주고 있다. 이렇게 발행된 오픈 배지는 학습 페이지에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으며, 취득한 배지에 따른 향후 학습경로를 맞춤형으로 제공해 학습을 통한 지속적 성장을 유도하고 있다.

평생학습의 시대다. 기업들은 구성원들의 학습을 통한 성장을 독려하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 구성원들의 성장만이 기업의 성장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기업 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MZ세대의 존재도 기업들의 학습을 권장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경우 회사를 선택하는 첫 번째 기준을 급여로 보는 반면, 각종 조사에서 MZ세대의 최우선 순위 회사 선택 요인으로 개인의 발전과 성장을 꼽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습을 장려하고 동기부여 하는 것은 개인과 기업에 매우 중요하다. 학습을 권장하고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오픈 배지다. 배지는 개개인의 학습경로를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취득이라는 보상을 시각화해 학습 동기를 자극한다.

오픈 배지는 학습자들의 보유스킬 통합계좌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통합계좌를 통해 자산을 관리하듯 오픈 배지는 개개인의 보유스킬 통합계좌 역할을 해 나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보유 스킬 통합·관리는 채용, 교육, 배치 등에 다양하게 활용될 것이며, 학습자들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하는 주요한 도구(Tool)로 그 저변을 확대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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