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교육법 제정’ 전문대학가의 숙원, 21대 국회서 회기 종료로 폐기
‘전문대학 정체성’ 확립 역할·5년 주기 기본계획 수립으로 ‘재정 확보’
일반대·폴리텍과 역할 구분, ‘직업교육’ ‘직업훈련’ 정확한 용어 정리
현행 관련 법령으론 한계 있어…직업교육법 제정 여부는 직업교육 질 관리와 연계
김영도 전문대교협 회장 “중·고등직업교육 연계성 필요…입법부 문 계속 두드릴 것”
[한국대학신문 주지영 기자] ‘학령인구 감소’ ‘등록금 동결’ ‘청년 유출’ 등으로 대학들이 휘청이고 있다. 국내 고등교육의 과감한 혁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내년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라이즈)’ 전환이라는 중요한 변화도 앞두고 있다. 특히 라이즈 도입 과정에서 일반대 위주의 정책이 설계되면 직업교육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전문대학가에서는 대학별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완하며 ‘공유·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본지는 새로운 고등직업교육의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와 공동으로 새로운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한편, 전문대학가에 놓인 당면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교육계에서 ‘직업교육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20여 년이 흘렀다. 직업교육기관인 전문대학가에서는 직업교육법(안) 제정은 숙원이다. 직업교육에서 중장기적인 정책 수립과 재정확보, 일반대학·한국폴리텍대학과 역할 구분을 위한 법적 기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문대학가에서는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직업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직업교육법(안) 제정(이하 직업교육법)이 필요하다 목소리가 꾸준히 이어진다. 특히 직업교육법 제정은 지역전문대의 평생·직업교육 기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도 그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학령인구 급감과 청년 유출로 지역 정주 인력 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이하 전문대교협) 공동기획으로 직업교육법 제정의 필요성과 그동안의 법안 추진 경과, 기존 직업교육 관련 법률 등을 짚어봤다. 나아가 직업교육법 제정이 교육계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전망하며 직업교육법 제정의 추진 방향에 대해 알아봤다.
■ ‘직업교육’ 여러 법안에 흩어져 있어 = 직업교육법은 전문대교협이 지난 2017년부터 ‘고등직업교육법(가칭)’으로 정부에 제정을 요구해 온 법안이다. 해당 법안에는 직업교육의 목적, 내용, 재정 등에 대한 법적 근거가 담겨 있다.
전문대교협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교육기본법이 제정된 이래 하위 기본법으로 ‘유아교육’, ‘초·중등교육’, ‘고등교육’, ‘평생교육’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직업교육’은 하위 기본법으로 제정돼 있지 않다. 직업교육은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 ‘평생교육법’,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등에 흩어져 있다. 직업교육을 지칭하는 용어도 통일돼 있지 않다. 여러 법안에서 ‘산업교육’, ‘직업능력개발훈련’, ‘직업교육훈련’ 등 직업교육을 가리키는 단어도 모두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직업교육법 제정 여부는 직업교육 질 관리와도 연결된다. 대학들은 직업교육법이 없어 직업교육에 대한 5년 주기 기본계획을 수립할 수 없다. 또한 정책적·재정적 예측이 어려워 직업교육을 안정적으로 펼칠 수 없는 실정이다. 현행 관련 법령으로는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이 있으나 그 대상이 대부분 현장실습, 직업훈련, 훈련과정 등으로 한정돼 직업교육법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서는 ‘직업훈련’과 ‘직업교육’ 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해당 법을 토대로 직업교육에 대한 국가 재정지원 범위, 내용을 지정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 중장기 교육계획, 재정지원 근거로 = 교육계에서는 직업교육법 제정으로 얻는 긍정적 효과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바로 직업교육 기본계획 수립에 따른 재정 확보 근거 마련, 직업교육 기관 역할과 기능 정립, 직업교육 단계별 연계 강화 효과다. 나아가 전문대학 직업교육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점에서 직업교육법 제정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직업교육은 관련 법이 제정되지 않아 5년 주기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힘들다. 체계적인 계획 수립이 어려워 관련 정책을 세우고 재정을 확보할 근거도 미비한 상황이다. 직업교육을 제외한 고등·초중등·유아·평생교육은 관련 법에 따라 △고등교육재정지원기본계획 △초·중등교육법 교육과정후속지원계획 △유아교육발전기본계획 △평생교육진흥기본계획 등 5년 주기의 주요 교육 추진과제와 추진 방법을 수립하고 이를 정부에 보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등교육재정지원기본계획에는 △재정지원의 목표와 방향 △대학의 재정 여건 전망 △사업의 성과관리 계획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재정 배분 계획 등이 담겨 있다.
반면 전문대학에서 수행하고 있는 직업교육에 대한 지원은 지원 정책이 단기적으로 이뤄지고, 일반대학 중심의 정책 추진 등으로 미흡한 실정이다. 전문대교협에 따르면 2022회계연도 기준으로 중앙정부의 고등교육기관 지원 사업은 또한 기본계획 수립도 이뤄지지 않아 단계별 직업교육의 연계가 부족하다. 이와 함께 교육내용이 중복·혼재되면서 체계적인 전문직업인 양성에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 직업교육법 제정은 전문대학이 더욱 탄탄하게 직업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바탕이 되고, 나아가 전문대학의 재정 위기를 극복할 방안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교육 방향 설정뿐만 아니라 교육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받을 수 있는 근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일반대학·한국폴리텍대학과 역할 분리 기능 = 특히 직업교육법은 ‘직업교육’과 ‘전문대학’ 기능과 역할을 더욱 분명하게 정의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일반대학, 전문대학, 한국폴리텍대학 간의 역할 구분도 모호한 상황이다. 전문대학들은 이처럼 직업교육 역할과 기능이 중복돼 비효율적으로 직업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며, 국가 재정적으로도 손실이 크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전문대학가에서는 일반대학과 전문대학, 전문대학과 한국폴리텍대학 간의 직업교육 기능이 중복된다는 점이 큰 문제라고 언급한다. 직업교육을 맡고 있는 기관에 대한 기준도 뚜렷하지 않다. 직업교육을 가리키는 용어가 다양하게 사용되면서 직업교육 정의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반면 초중등·고등·평생교육법에는 참여 대상이 지정돼 있다. 이에 따라 교육계에서는 직업교육법 제정으로 직업교육 정책의 주체를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해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일반대학이 취업 우위 학과로 개편하고, 평생교육 프로그램도 확대 운영하면서 직업교육기관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대학은 설립 목적이 ‘학문연구’임에도 전문대학에서 운영하는 학과를 중복 개설해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폴리텍대학이 전문대학과 중복되는 분야를 지방캠퍼스로 신설해 두 기관에서 비슷한 내용의 직업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직업교육법에서 직업교육 정의와 속성을 정의하고, 하나로 통일된다면 ‘직업교육’과 ‘직업훈련’ 용어를 분리해 사용 가능하다. 또한 직업교육 단계별 역할과 기능을 정립해 교육계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고등직업교육기관인 전문대학과 직업훈련기관인 한국폴리텍대학의 역할을 구분하고 양 기관이 상생·협력할 방안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 초중등-고등-평생직업교육 연계성 강화 = 이와 함께 직업교육법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평생직업교육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100세 시대’ ‘퇴직 후 재취업’ 등 직업 전환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대에 직업교육법을 근간으로 생애주기별 평생직업교육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고등직업교육과 전문대학이 맡고 있는 고등직업교육 간의 연계가 어려운 현재 시점에서 직업교육법 제정은 단계별 직업교육의 연결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대교협에 따르면 직업교육법(안)의 적용 대상은 초등학생부터 성인학습자까지 모든 국민이다. 직업교육법의 영향을 받는 교육으로는 기초직업교육, 예비근로자와 성인학습자 학위과정의 전문직업교육이 있다. 기존 직업교육 관련 볍률에서는 소관 부처(부서)에 따라 ‘직업훈련’, ‘산업교육’ 등 직업교육을 세부적으로 나눠놨다. 대상도 ‘중등학생’, ‘(예비)근로자’ 등으로 구분해 규정해 놨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행 직업교육은 초·중등-고등-평생 단계에 걸쳐 연계성을 갖고 종합·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취임한 김영도 전문대교협 회장(동의과학대 총장)도 임기 동안 직업교육법(안) 제정을 위해 힘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영도 회장은 “외국에서는 국가에서 직업교육법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국내 직업교육은 고등교육법, 평생교육법 양쪽에 걸쳐져 있다”며 “직업교육은 개인 삶을 지탱하는 직업과 연결되는 만큼 국가 복지 중 하나로 인식해야 한다. 임기 동안 직업교육법(안)이 기본법으로 마련될 수 있도록 입법부 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김영도 회장은 전(全) 생애주기적으로 단계별 직업교육 간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직업교육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대학 직업교육이 중·고등직업교육과 연결돼 펼쳐져야 한다고 주장이다. 김 회장은 “현재 중·고등직업교육은 각각의 교육법에 포함돼 있다. 전문대학에서는 별도로 직업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평생직업교육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직업교육법을 기반으로 중·고등직업교육과 연계성을 갖춰 일관된 교육 트랙을 구축해야 한다. 중·고등직업교육 관련 부분을 직업교육법에 넣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회장은 “지역소멸 문제가 심각해지는 만큼 직업교육법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에서 직업을 갖고 일해야 지역 정주도 고려하지 않겠나. 직업교육법을 바탕으로 지역에서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여러 프로젝트가 생길 것”이라며 “내년부터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라이즈)’로 전환되는데 지역 활성화 차원에서 직업교육이 재취업, 창업, 성인학습자 재교육면에서 부각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방정부의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지원도 더 확대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지난해 3월 직업교육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직업교육법(안)은 제21대 국회 계류 끝에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전문대교협은 제22대 국회에서 지난해 발의한 법안을 보완해 재입법 추진에 힘쓰겠다는 입장이다.
지역 청년인구 유출, 저출생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지역과 대학에 소멸 위기가 덮친 지 오래다. 이 가운데 내년 라이즈 도입을 앞두고 있다. ‘지역과 대학의 상생 발전’을 목표로 하는 만큼, ‘정주인력 양성’, ‘성인학습자 직업교육’ 등을 맡고 있는 지역 전문대학의 역할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전문대학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국내 직업교육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직업교육법 제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