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파고·재정 위기·정책 전환… 대학의 ‘새 판’은 가능할까

한국사회과학협의회에 속한 5대 학회는 공동으로 1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5대 사회과학학회 융합 심포지엄 ‘한국 대학과 고등교육의 위기와 대안’을 개최했다. 첫 번째 세션에서 발표를 진행한 김범수 한국정치학회장(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채희율 경기대 명예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가 토론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백두산 기자)
한국사회과학협의회에 속한 5대 학회는 공동으로 1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5대 사회과학학회 융합 심포지엄 ‘한국 대학과 고등교육의 위기와 대안’을 개최했다. 첫 번째 세션에서 발표를 진행한 김범수 한국정치학회장(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채희율 경기대 명예교수가 토론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백두산 기자)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끓는 물 속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달라져야 합니다.”

17일 열린 5대 사회과학학회 융합 심포지엄에서 김범수 한국정치학회장(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은 대학의 변화를 강하게 주문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위기감을 넘어, 절박함이 묻어났다.

김 교수는 최근 고등교육을 둘러싼 환경 변화를 “압도적인 디지털 파도”라 요약했다. 챗GPT와 유튜브, MOOC, 하이브리드 대학까지. 지식 전달의 장벽은 무너졌고, 학생들은 이제 답을 찾기보다 “왜 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그는 “대학 교육이 사회 수요와 괴리됐다”며, 한국의 전공-직업 불일치도가 OECD 1위임을 지적했다. 서울대 불어교육과처럼 교사 선발이 중단된 전공조차 구조조정되지 않는 현실은 ‘느린 변화’를 상징한다. 김 교수는 “대학이 반보 늦게 가야 할 분야도 있겠지만, 지금은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라며 교육과정 혁신, 디지털 리터러시 강화, 전공 자율 선택제의 재설계를 제안했다.

하지만 변화를 가로막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다. 재정이라는 현실의 벽이 대학 앞을 가로막고 있다.

채희율 경기대 명예교수는 “운영 수입이 지출을 따라가지 못하는 대학이 급증하고 있다”며, 특히 비수도권 소규모 대학의 위기를 강조했다. 등록금 동결과 학생 수 감소로 주요 재원이 줄었고, 늘어난 국고보조금도 국가장학금 중심이라 자율적 활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채 교수는 “전산 기자재 노후화, 연구비 감소로 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재정 투자가 OECD 평균에도 못 미친다고 지적하며, 초중등 중심의 교육재정 구조를 고등교육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대학 구조조정을 위한 법제 정비, 전공 단위 양도·양수 허용, 기부금 세제혜택 확대 등 재정 기반 강화책을 제시했다. “등록금 규제 완화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어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대학은 여전히 개발시대 모델에 갇혀 있다”는 비판이다.

그는 고등교육을 ‘국가를 만든 원동력’이라며, 대학을 ‘선진형 교육 기관’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 교수는 “강의 중심에서 학습자 중심으로, 지식 전달에서 경험과 협업 중심으로” 바뀌어야 하며, 이를 위해 캠퍼스 공간, 제도, 문화 전반의 리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한 그는 지자체와 기업의 책임을 거듭 강조했다. “고등교육의 재정 구조가 정부-부모 2자 중심이라면, 이제는 기업과 지역도 투자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 대학의 경우, ‘청년 유출을 막는 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욱 공공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배 교수는 마지막으로 교육부의 역할을 재정의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교육부는 여전히 규제 부처로 인식되고 있다”며 “포괄적 행정이 아닌 조정과 지원 중심의 전략 부처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교육의 ‘새 판’을 짤 시간”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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