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앱솔루트파트너스 대표이사
분열된 세계, 다시 ‘현금흐름’의 시대가 온다
전 세계가 다시 보호주의의 터널로 진입하고 있다. 수십 년간의 Globalization이 끝나고, 자국 우선주의와 지정학적 경쟁이 글로벌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단순한 관세 분쟁으로 시작된 G2 간 무역 전쟁은 이제 기술 패권, 외교 동맹, 통화 블록화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상대국 기업의 접근을 봉쇄하는 수준을 넘어, 금융과 물류 시스템까지 탈동조화를 시도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은 단절되고, 물가는 비탄력적으로 상승하며, 시장의 변동성은 구조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세기 초반, 세계 대공황 직전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의 경제 환경 또한 오늘날과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대공황을 촉발한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보호무역주의 정책들-대표적으로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은 세계 교역을 급감시켰고, 물가와 실물 경제의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주요국 증시는 10년 넘게 회복되지 못했고, 자산가격의 변동성은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금 비슷한 경로에 서 있다. 글로벌 성장 모멘텀은 둔화되고 있고, 디레버리징에 대한 두려움은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여력마저 제약하고 있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정보는 빠르지만 해답은 느리다는 점이다. 더 이상 고성장 테크 기업의 실적 발표에 따라 시장 전체가 들썩이는 시대는 아니다. 투자자들은 이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느냐’보다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글로벌 환경에서 대학기금은 어떠한 방향으로 운용해야 할까? 불확실성과 변동성 확대에도 자산을 지키면서 견고하게 성장시킬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기금 운용이 재정적으로 대학의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이를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두 가지 원칙이 ‘현금흐름 확보’와 ‘분산투자’다. 이 두 요소는 시장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에 맞서는 가장 현실적 해법이며, 장기적으로 투자 수익률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전략이다.
확실한 현금흐름은 투자자의 심리적 안정과 전략적 유연성을 제공한다. 주가가 하락해도 꾸준히 들어오는 배당, 이자, 임대수익은 포지션을 유지하고 재투자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이는 복리 효과를 극대화하고, 시장이 흔들릴 때도 자산을 지킬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채권, 배당주, 리츠, 구조화 ABL 상품 등은 이러한 현금흐름 투자 전략의 중심에 있다.
한편, 분산투자를 통해 리스크 관리의 견고한 틀을 구축할 수 있다. 특정 자산이나 섹터의 리스크를 제한하고,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군을 조합함으로써 전체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낮출 수 있다. 주식, 채권, 원자재 등 자산군 다변화는 예상치 못한 외부 충격에 대한 자연스러운 헷지 수단이다.
현재와 같은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무엇이 진짜 ‘위험’이고, 어디에 진짜 ‘기회’가 있는지 구분할 수 있는 안목 말이다. 지금은 화려한 숫자보다 견고한 현금흐름과 위험 분산 전략이 빛을 발할 차례다. 위기가 구조적이라면, 대안 역시 구조적이어야 한다.
현금흐름과 분산투자에 초점을 둔 포트폴리오 제안 – 채권, 배당주, PDF, EMP 중심으로
현금흐름과 분산투자에 초점을 맞춘 금융상품으로 채권, 배당주, 사모 대출펀드, EMP펀드를 제안한다.
먼저, 채권은 대표적인 Fixed Income 자산이다. 정해진 기간 동안 이자를 지급하고, 만기에는 원금을 상환하는 구조 덕분에 정기적이면서도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중요한 투자자에게 채권은 매우 전략적인 투자상품이다. 특히, 대학기금 운용 시 정해진 현금흐름과 재정 지출 스케줄을 매칭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채권의 활용도는 높다.
다만 채권 투자 시 주의할 점이 있다. 대표적인 채권 투자위험으로는 신용위험과 가격변동 위험이 있는데 신용위험은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일수록 커지며, 채권 가격은 만기가 길수록 변동성이 확대된다. 따라서 철저한 신용분석과 시장 분석에 기반한 운용 전략 수립이 수반되어야 한다.
우량 신용등급을 보유한 국내 금융지주, 은행, 보험사 등이 발행한 하이브리드 증권을 종목별로 적절히 분산해 만기보유 투자(콜옵션 만기 5년)한다면 채권의 신용위험과 가격변동위험을 상당 부분 통제할 수 있으면서도 시중 정기예금 금리 대비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증권이란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과 같이 부채와 자본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증권이다.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자본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주로 금융기관이 자본확충을 위해 발행한다. 명목만기가 10년 이상이나 통상적으로 콜옵션(발행사의 중도상환권) 행사를 통해 5년 뒤에 상환되기 때문에 실질만기는 5년으로 볼 수 있다(현재까지 국내 금융기관이 하이브리드증권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사례는 단 한번도 없었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증권의 표면이자가 큰 폭으로 상승하며, 발행사 대외 신인도가 악화되어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즉, 하이브리드 증권 투자자는 5년 만기 채권에 투자한 것과 동일한 성과를 누릴 수 있다. 참고로 2025년에 발행된 주요 금융기관 신종자본증권의 발행금리는 4.5~5.5%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작년부터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해 왔고, 향후 추가 인하 가능성이 반영되면서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2%대 중반까지 하락한 가운데 향후 5년 간 확실성이 높으면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취할 수 있는 투자 대안으로 적합하다는 판단이다.
두 번째는 배당주다. 배당금은 주기적으로 지급되며, 이는 마치 채권의 이자처럼 작동해 투자자가 현금 유입 시점을 계획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안정적인 수익 흐름과 자산 보존을 중시하는 투자자에게 배당주는 필수적인 포트폴리오 구성 요소가 된다.
배당주 투자 시 현금흐름이 풍부하고 실적이 안정적인 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금융, 인프라, 통신, 필수소비재 섹터에 포함된 기업들이다. 이들은 경기 변동에 비교적 덜 민감하며, 배당 성향이 높고 주주환원 정책이 명확하므로 해당 종목들을 중심으로 적절히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무역분쟁 장기화 가능성을 고려해 수출 의존도가 낮으면서도 안정적인 실적을 창출하는 기업 위주로 선별 편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배당수익률뿐만 아니라 배당 성장률, 배당성향, 기업의 잉여현금흐름 수준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배당률이 높은 기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배당을 장기간 지급할 수 있는 재무 구조와 사업 모델을 갖춘 기업을 선별해야 한다.
매매 전략으로는 배당락일 이후 단기 가격 조정 시 매수한다거나, 국채 수익률 대비 배당수익률이 높은 종목을 매수하고 낮은 종목은 매도하는 방식 등이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한다.
세 번째는 달러 투자가 가능한 선진국 사모 대출펀드(Private Debt Fund)이다. 사모 대출펀드는 대체투자의 한 유형으로서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기업(부동산, 인프라 포함) 등에 직접 대출을 하거나, 채권을 매입해 운용하는 사모펀드의 한 유형이다. KKR이나 Black Rock 등 글로벌 Top-tier 운용사들이 운용하며, 까다로운 심사 요건을 충족한 대출채권으로 구성된 펀드이다. 국가, 업종, 분야 별로 고도로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경기나 시황 변동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다. 은행 예금 금리가 하락하고 주요 글로벌 은행의 대출 기준이 강화되면서 사모 시장 내 대출펀드 상품의 매력도가 높아진 상황으로 주요 운용사들을 중심으로 사모 대출펀드 조성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추세다.
마지막으로 EMP 펀드가 있다. EMP펀드는 운용자산의 50% 이상을 ETF, ETN 등 ETP(Exchange Traded Product)에 투자하는 펀드 상품이다. ETF는 특정 국가의 증시나 업종을 대상으로 분산 투자하는 것이 특징인데, 그런 속성을 가진 ETF를 여러 개 골라 묶은 만큼 위험 분산 효과가 극대화되어 ‘초분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EMP펀드는 보통 주식, 채권, 부동산리츠, 금 등 상관관계가 낮은 다양한 자산군에 분산 투자하되 매크로 요인 변화를 반영하여 수시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나가는 방식으로 운용한다. 참고로 채권(초단기채권 포함) 35%, 금 16%, 주식 및 하이일드 44%, 부동산 리츠 5%의 비중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면 과거 25년간 연 평균 수익률은 14%, 수익률의 변동성은 5%로서 위험 조정 수익률 측면에서 우수한 성과를 시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제시한 상품 이외에도 대학이 각자의 실정에 맞는 상품을 선별해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종목을 선별하고 운용전략을 수립하며, 운용성과를 확인하고 차기 운용 전략에 반영해 나가는 과정에서 대학의 기금운용 역량이 차츰 제고될 수 있다.
대학기금 운용 선진화를 위해 규제 완화, 정부의 지원, 기부문화 개선 등 외부 요인 변화도 중요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대학 자체적인 운용 역량과 시스템 구축이다. 현금흐름과 분산투자 전략을 통해 지속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대학 재정 운용이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대학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