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처한 구조적·제도적 한계로 정책 형성 과정에서 정책적 변두리에 있어
‘관리형 총장’의 경우 소신행정 어려워, 중장기적 비전 제시·혁신 실험 시도 ‘난망’
국고지원 사업은 공모 중심 운영… 종료 시 핵심인력 이탈, 산학협력 체계 등 악순환
대학, ‘정책 수혜자’ 아닌 ‘공동 설계자’로 기능해야… 고등교육정책의 지속가능성 열려

고등교육정책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차기 정부는 대학을 정책의 실질적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대교협 총회에 참석단 회장단과 교육부 실국장단. (사진=한국대학신문 DB)
고등교육정책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차기 정부는 대학을 정책의 실질적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대교협 총회에 참석단 회장단과 교육부 실국장단. (사진=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김준환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조기대선 정국이 열리면서 윤 정부의 고등교육정책도 총체적 평가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본지가 ‘조기대선, 고등교육정책 리포트①’에서 살펴봤듯이 윤 정부는 ‘자율과 지역’을 정책 기조로 한 고등교육정책을 추진했으나 정책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이번 회에서는 정책의 수혜자이자 실천 주체인 ‘대학’의 관점에서 문제를 짚어봤다. 대학은 왜 고등교육 정책의 주체가 되지 못했나. 차기 정부는 고등교육정책 성공을 위해 대학과의 파트너십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아울러 고등교육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같이 담았다. 

■ 분절화된 의사결정 구조, 장기적 전략 부재 등 구조적 제도적 한계 여전히 ‘발목’ = 대학은 고등교육정책의 1차적 수혜자이자 실행자이지만, 정책 형성 과정에서 주도적 위치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 처한 구조적·제도적 한계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대학 내부의 분절화된 의사결정 구조를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거버넌스 체계는 이사회, 교수회, 학과 중심 문화, 직원 조직 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빠른 결정과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국공립대는 이사회 구성의 제한성과 교육부 승인 구조가 맞물려 기민한 정책 반응이 어렵고, 사립대는 이사회 중심의 권한 집중과 재단의 제한적 투자 의지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고등교육에 대한 장기적 전략이 부족하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학은 주로 단기 재정사업이나 정부 공모사업 수주를 중심으로 운영 전략을 세우고 있으며, 교육·연구·산학 등 핵심 기능 간 조화로운 발전전략은 부재한 실정이다. 전략기획처나 기획예산팀이 존재하더라도 정작 총장의 중장기 비전과 연계되어 실행되는 경우는 드물며, 이사회나 교수집단의 설득을 위한 전술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대응 체계도 현저히 부족하다. 고등교육혁신이 이뤄지려면 학습성과 분석, 지역 수요조사, 취업 연계성 진단 등 정량 기반의 의사결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대학의 현주소는 그렇지 못하다. 여기에 필요한 역량이 취약하거나 체계화되지 않은 대학이 상당수에 이른다. 최근 고등교육 분야에서 강조되는 학습분석 기반의 맞춤형 교육, 디지털 배지 동향 분석, 지역 산업 수요 기반 커리큘럼 설계 등은 소수 대학에 국한돼 있다. 특히 전문대학은 고등교육 데이터 정책에서조차 주변화되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리더십의 부재로 인한 총장의 역할 변화 필요 = 대학이 정책 주체가 되지 못한 데에는 리더십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대학 현장을 들여다보면 이 같은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총장 선출 제도는 개방형, 직선제, 간선제 등으로 다양화됐으나 외부 정치적 영향이나 내부 구성원 간 갈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전략 수립보다는 ‘관리형 총장’에 머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립대 총장을 지낸 한 원로교수는 “대학법인과 자신을 뽑아준 교수들의 눈치를 동시에 보느라 소신행정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중장기적 비전 제시나 혁신 실험을 시도하기 어려웠다”며 “내부 갈등이 심화되어 장기적 계획 수립은커녕 일상 행정조차 어려워진 적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고등교육 정책이 실제 정책에 반영되는 경우도 상당히 제한적이다. 실제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등 총장단 협의체의 발언력은 형식적 차원에서 그치며, 정책 초기 단계에서 의견이 반영되는 구조도 미흡하다.

■ 단기 성과 창출에 치중, 사업계획서 중심의 평가 체제… ‘수주형 대학’으로 전락 = 정부의 재정지원사업 구조도 대학을 정책 주체로 만들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매년 성과평가, 정량지표, 사업계획서 중심의 평가 체계는 대학이 장기 전략을 수립하기보다, 단기 수치를 맞추는 데 집중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로 인해 1년 단위 사업평가와 정량 위주 배점 구조로 인해 성과 과잉보고나 지표 왜곡 사례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이와 관련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과미래연구소장(교육학과 교수)은 “정부 재정에 목을 매는 구조 하에서는 대학이 절대로 고등교육정책의 주체가 될 수 없다”라며 “정부 주도의 재정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정책을 실행하고 집행하는 데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 고등교육 생태계 전반에서의 경쟁력을 고려하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정책 목표보다 국고지원사업 참여 여부와 예산 확보에 방점을 둔 점도 개선해야 할 과제다.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egional Innovation System&Education·RISE, 이하 라이즈)’ 사업이나 대학혁신지원사업 등 대부분의 국고지원 사업은 공모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 과정에서 대학은 스스로 교육과정 개편이나 인재양성 모델을 설계하기보다 정해진 틀에 맞춰 과업을 이행하는 이른바 ‘수주형 대학’으로 전락하고 있다. 사업이 종료되면 핵심 인력의 이탈, 교과목의 폐지, 산학협력 체계의 해체가 반복된다. 결국 일관된 학사 구조나 조직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 ‘삼중고’ 시달리는 지방대… 수동적 정책 참여에 그쳐 = 지역으로 시선을 향하면 지역대학은 고등교육정책의 주체로 역할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입학정원 미달, 재정 압박, 지역인재 유출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라이즈나 글로컬대학 정책이 ‘지원’이 아닌 ‘경쟁’으로 다가오는 실정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4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에 따르면 지방대학의 평균 정원 충원율은 90%를 밑돌고 있으며, 일부 대학은 7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대학 재정을 사실상 등록금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은 곧 대학 재정난으로 이어지고 결국 학교가 문을 닫는 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다. 존폐를 논의해야할 만큼 심각한 위기에 닥친 지방대학의 경우 고등교육정책의 주체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라이즈를 예로 들어보자. 지자체가 중심이 되는 구조로 인해 대학은 수동적 참여자에 머무르며, 재정과 행정 역량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일수록 실질적 거버넌스 형성이 어려운 실정이다. 반면 수도권 대학은 정부의 자율화 기조 속에서 이미 자체 재원과 전략기획 기능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혁신을 추진하고 있어, 대학 사회의 양극화 고착화 우려를 심화시키고 있다. 지역 간 격차와 준비도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일률적 추진은 효과를 반감시킬 우려가 크다.

차기 정부는 고등교육정책 성공을 위해 대학과의 실질적 파트너십을 형성해야 한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사진=아이클릭아트)

■ 고등교육정책 효과성 높이려면 대학을 실질적 파트너로 인정해야 = 고등교육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학이 ‘정책 수혜자’가 아닌 ‘공동 설계자’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조건이 마련돼야 한다.

첫째, 대학 내부의 전략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단순 재정지원이 아니라, 대학혁신지원센터(가칭)를 통한 기획력, 데이터분석, 성과관리 기능을 내재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대학 자체의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과 실행 역량을 높이기 위해, ‘교육혁신 컨설팅 지원사업’과 같은 정성적 컨설팅 모델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둘째, 총장을 비롯한 대학 리더십에 대한 구조적 신뢰 회복이 요구된다. 총장 선출제도의 개선, 교육공공성에 기반한 평가 체계 마련을 통해 리더십의 정당성과 전문성을 회복해야 한다. 공공책무를 이행하는 총장에게는 임기 중 권한을 보장하되, 중간 평가와 성과 검증을 제도화함으로써 책무성과 자율성이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셋째, 고등교육 거버넌스를 다층화해야 한다. 교육부 중심의 일방향 행정이 아닌, 지역단위 고등교육정책협의회, 국가 차원의 고등교육위원회(실질 권한 포함) 등을 통해 대학과 지자체, 산업계, 중앙정부 간 협력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특히 라이즈형 모델은 지역 내 대학 연합체 구성, 지자체·지역 기업과의 상설 협의기구 설치 등 구체적 제도 설계로 이어져야 한다.

넷째, 정책의 연속성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고등교육 핵심과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의 초당적 고등교육특별위원회 설치도 고려해볼 수 있다. 대학 혁신은 단기 과제가 아니라 최소 5~10년의 시간축을 필요로 하는 과제라는 점에서, 제도적 안정성이 핵심이다.

■ 차기 정부, 대학을 정책의 공동기획자로 존중해야 = 대학이 고등교육정책의 실질적 주체로 기능하지 못하는 구조는 비단 윤석열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3년을 거치며 정책 방향과 대학 현실 사이의 간극은 훨씬 커졌다.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문제를 보다 선명히 드러내고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고등교육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대학이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구조적 조건과 정치적 리더십 부재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는 대학을 정책 실험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정책의 공동기획자로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고등교육정책의 공공성과 자율성, 혁신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회복하는 길이다. 특히 지방대학이 지역혁신의 동반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실질적 권한과 자원, 제도를 분권적으로 설계하는 국가적 전환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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