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등 고등교육 재정의 안정적 확보 절실
급변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정부 부처의 신속한 대응 필요
교육부·고용노동부·산업부 등과 연계된 국가 차원의 통합 인재양성 체계 구축
중등단계-고등단계 연계된 직업교육체제 마련, 라이즈 성공 안착 위한 입법적 지원 필요
AI·디지털 전환(AIDT) 시대 맞아 미래교실 구축 중요… ‘국가 프로젝트’ 차원에서 접근
차기 정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 적극 준비… 대한민국의 미래 책임질 인재 키워내야
[한국대학신문 김준환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촉발된 조기대선 국면에서 고등교육정책은 또 한 번의 분기점에 서 있다. 등록금 동결 여파,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대학의 위기, 디지털 전환의 지체, 거버넌스의 불안정 등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산적한 과제를 둘러싸고 차기 정부는 단기 처방이 아닌 구조 전환적 해법 마련을 요구받고 있다. 이에 본지는 총 3회에 걸친 기획 시리지의 마지막 편으로 차기 정부가 설계해야 할 고등교육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지 다각도로 점검하고, 향후 고등교육 재구조화를 위한 핵심 과제를 조목조목 짚어본다.
■ 고등교육 재정, 국가 발전 위한 전략적 재원 투자 이뤄져야… 중앙정부의 역할 변화도 주문 = 국내 고등교육은 오랜 시간 동안 ‘사립 중심의 공공서비스’라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고등교육 공공재정 투자 비율은 GDP 대비 0.6% 수준(2021년 기준)으로, 주요국 평균(1.5%)에 크게 못 미친다. 이는 대학 경쟁력 약화, 지역대학 붕괴, 교원 인건비 감축 등 연쇄적 위기를 야기한다. 특히 등록금 수입에 의존해 온 사립대는 재정 기반이 점점 취약해지고 있으며, 국립대조차 기본운영비 부족으로 연구와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차기 정부에서는 고등교육 재정을 단순한 보조가 아닌 ‘국가 전략 투자’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의 단기 확장만으로는 부족하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국립대 기본운영비 확대, 사립대 공공성 연계 재정 인센티브 등 고등교육 재정 투자를 위한 제도화가 시급하다. 특히 대학의 예측 가능한 예산 편성을 위해 ‘기본재정지원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재정지원의 투명성과 책무성 확보를 위한 성과관리 체계도 병행돼야 한다.
임우택 전국대학교기획처장협의회장(우송대 기획처장)은 차기 정부에서 고등교육 재정의 충분하고 안정적인 확보와 함께 시대 변화에 맞는 중앙정부의 역할 변화에 대해 주문했다. 임우택 회장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얘기하는데 사실 지금 시대는 이 말이 통용되지 않는 것 같다. 급변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교육부는 물론 교육과 연계돼 있는 정부 부처들이 빠르게 대응해줘야 한다”며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 사립대 학생 미충원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외국인 유학생은 생존의 돌파구다. 외국인 유학생 정책만 보더라도 교육부를 비롯해 법무부·외교부·고용노동부 등 연계된 정부 각 부처들은 유학생들이 국내에 취업 정착할 수 있도록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임우택 회장은 대학 평가 관련해서도 언급했다. 대학의 평가 부담 완화가 다른 쪽의 규제가 강화돼 일종의 풍선효과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임 회장은 “대학 문을 닫게 하는 평가 방식이 완화된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또 다른 형태의 평가로 인해 대학을 힘들게 하고 있다”면서 “대학은 전공자율선택제 확대를 두고 평가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다. 하지만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하는데 인센티브를 통해 대학의 자율성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지방 사립대는 전공자율전공선택제로 입학한 학생들은 학과·대학에 대학 소속감이 낮아 중도탈락율(수도권 이탈)이 높다. 대학 현실에 맞춰 자율전공학부를 진행하면 되는데, 평가 중 일부분이 양적 기준(자율전공 규모)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학교 여건과 상관 없이 자율전공을 늘리는 것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 학사제도 개편과 인재양성 체계 혁신 = 미래산업을 이끌어갈 국가 차원의 종합적·체계적 인재양성 정책 수립·관리도 중요한 사안이다. 이를 위해 학사제도 개편은 시급한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급변하는 산업사회 속에서 현재의 학사제도는 여전히 교양-전공 중심의 정형화된 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윤석열 정부에서도 마이크로 전공제, 비교과 학점화, 직무연계형 학위제 등을 중심으로 관련 정책을 시도해 왔으나, 대부분 시범사업에 머물거나 제도화되지 못한 채 현장 확산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지방대학과 전문대학은 재정·인력 부족으로 정책 실험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는 교육부 중심의 개별 사업 차원을 넘어, 고용노동부·산업부 등과 연계된 국가 차원의 통합 인재양성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듈형·마이크로 전공제를 법제화하해 학생이 산업 수요와 직무 기반으로 전공을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는 학사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 둘째, PBL, 캡스톤디자인, 산학 프로젝트 등 비교과·비정규 프로그램을 학점화하고, 이를 정규 학위제도와 연동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셋째, 직무 연계형 학위제를 통해 국가자격과 고등교육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고, 기술·전문직 중심 학위코스를 확대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학점은행제, 성인학습자 맞춤형 이수제, 산업맞춤 단기 과정 등 기존 제도를 통합 관리하는 국가 직무기반 학습 인증체계 구축도 추진돼야 한다. 이러한 학사체제 개편은 고등교육을 단지 학문 연구 중심 공간이 아닌, 국가 산업전략의 핵심 축으로 전환시키는 전제 조건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고등직업교육의 연계성·체계성 부족 부분 보완해야 = 지방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 경제·산업·인재 생태계의 중심축이다. 그러나 그동안 고등교육정책은 지역정책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해 구조적 비효율을 초래해 왔다. 특히 우리나라 직업교육체계는 중등단계(마이스터고, 특성화고 등)와 고등단계(전문대학, 폴리텍 등)가 분절돼 있어 연계성과 체계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할 때 차기 정부에서 직업교육의 정책 뱡향에 대해 강문상 한국직업교육학회장은 “학령기 학생들을 위해서는 특성화고-전문대학-산업체로 이어지는 직업교육 연계 트랙을 개발하고, 해당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를 통해 청년층이 지역에 정착하고 기술과 숙련을 갖춘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 회장은 직업교육의 체계성과 관련해서도 “직업교육은 학령기 학생과 성인학습자가 서로 다른 교육과정을 갖는 2개 트랙의 교육과정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면서 “학령기 학생은 기존의 1년 2학기제 교육체계는 당분간 유지하며, AI시대에 요구되는 인성교육과 AI윤리교육을 함께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결국 직업교육은 특정 시기나 특정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생에게 걸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재로 인식돼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고등직업교육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과 노동시장 안정을 위해 반드시 구축돼야 할 필수적 교육 인프라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 라이즈 공고히 하려면… 범부처사업으로 확장돼야 = 특히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egional Innovation System&Education·RISE, 이하 라이즈)’는 이러한 단절을 해소하고자 한 시도였다. 지난해 7월 출범된 라이즈위원회 초대위원장인 김헌영 위원장은 차기 정부에서는 지자체-대학 협력 수준을 넘어서 ‘지역고등교육 생태계 모델’ 구축에 나설 수 있도록 입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헌영 위원장은 “라이즈 체제 정착을 위해 17개 시도에 라이즈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를 뒀다. 교육부 훈령으로 해서 라이즈 체제 운영 규정이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법제화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범부처사업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김헌영 위원장은 “지난해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기부와 협약을 맺고 대학과 지역의 연계체계를 공고히 해나가고 있는데, 라이즈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범부처사업으로 넓혀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수도권대학과 지방대학이 연계해 라이즈 체계가 추진된다면 대학 격차 해소는 물론 지방대 위기 해결, 지방 소멸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밖에도 ‘지역고등교육정책협의회’의 법적 기구화, 전략산업 중심의 기술대학 설립 등도 고려해볼 수 있다.
■ 디지털 전환 시대의 고등교육 인프라 구축 = 기술 혁신이 일상을 급속도로 변화시키는 시대에 미래교실을 구축하는 일도 차기 정부에서 중요한 과제다. AI·디지털 전환(AIDT) 시대에 대학은 여전히 아날로그적 교육 공간에 머물고 있어서다. 문제는 우리나라 대학은 한정된 예산으로 적극적인 시설과 환경 투자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적극적인 고등교육 재정 확충을 통해 디지털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제영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은 “대학의 디지털 전환은 시설과 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중요하다. 하지만 본질적인 변화는 교육 내용과 교수자의 교수법이 바뀌는 데 있다고 본다”며 “교육 내용의 데이터 기반학습과 AI 기반 내용이 포함돼야 하고, 교수법에 있어서도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위한 데이터 기반 AI 기술 활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생의 생활 지원에 있어서도 AI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차기 정부는 고등교육을 ‘미래 학습 인프라’의 중심으로 전환시켜야 하며, 국가 차원의 디지털 학습 플랫폼 표준화 및 공유 체계 구축, 학습 데이터 기반 맞춤형 교육 알고리즘 개발, AI 기반 학사행정 자동화 및 교수지원 도구의 확산 등이 이뤄져야한다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결국 디지털 전환은 단순한 기술 지원을 넘어, 대학의 정체성과 기능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국가 프로젝트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메타버스, 가상실험, XR 기반 실습교육 등 차세대 학습환경 구축을 위한 장비 및 콘텐츠 투자도 병행돼야 한다.
■ 고등교육 대전환, 국가 전체의 생존 전략으로 접근해야 = 앞서 2회차 기획 시리즈([조기대선, 고등교육정책 리포트②] 대학은 왜 고등교육정책의 주체가 되지 못했나/2025년 5월 12일자)에서 지적했듯이, 현재 고등교육정책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대학이 정책 수립의 실질적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차기 정부는 대학을 단순한 정책 수혜자가 아닌, 공동 기획자·설계자로 인정하는 제도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
국가고등교육위원회의 실질적 법정기구화, 총장협의체 및 산업계와의 삼자 정책협의 제도화, 재정·입시·구조개편에 대한 사전 정책협의 의무제 도입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특히 국가 차원의 고등교육 중장기 비전 수립을 위해 초당적 민관 거버넌스를 제도화하고, 대학별 이사회 기능도 강화해 책임성과 자율성을 동시에 실현해야 한다.
대학이 스스로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정부와 함께 설계·조정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율’도 실현이 가능하다. 나아가 고등교육을 둘러싼 정부 부처 간 역할 분담도 명확히 구분해 교육부 중심 일방향 행정에서 탈피한 다층적 협치 모델이 구현돼야 한다.
윤석열 정부 3년은 고등교육이 국가 전략과 산업 변화, 지역혁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정체된 시기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차기 정부는 고등교육을 재정, 학사제도, 지역균형, 디지털 교육, 거버넌스 전반에서 재구조화해야 한다. 그것은 단지 대학을 살리는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탱할 인재 시스템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고등교육정책은 더 이상 교육부만의 정책이 아니다. 국가 전체의 생존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고등교육 대전환’을 실현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