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연봉보다 정년 택했다… 공기업에 ‘몰빵’
미국은 ‘경험·경력 유연성’, 일본은 ‘워라밸’ 중시
안정성 집착 한국… “실패는 곧 낙오” 인식 때문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커리어를 고려할 때 ‘안정성’에만 매몰되는 현상이 단순한 선호를 넘어 우리나라 대학생·청년 세대 전체의 생존 전략으로 굳어지고 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만을 정답처럼 받아들이게 된 사회적 배경을 짚고, 입사 이후 현실, 그리고 청년들이 다시 이직을 고민하게 되는 구조를 추적한다. 또한 이 같은 ‘안정성 신화’가 고등교육에 어떤 왜곡을 낳고 있는지 진단하고 ‘도전하는 사회’가 되는 길을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정년 보장이 아니고서는 어떤 꿈도 꿀 수 없는 사회, 대학생·청년의 삶은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가. 본지는 그 질문을 함께 던지고 함께 답을 찾아가고자 한다. <편집자주>
“대기업보다 공기업이요. 저는 정년이 더 중요해요.”
수도권 소재 대학의 졸업예정자 김민지(25·가명) 씨는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목표로 공기업 직업기초능력평가(NCS) 필기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김민지 씨는 “IMF 때 아버지가 해고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는 게 최고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했다.
대학생들의 선택이 최근 다시 바뀌고 있다. 연봉이나 성장 가능성보다 고용 안정성이 우선인 시대가 다시 돌아왔다.
6일 교육계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고용 안정성을 이유로 공기업 취업을 선호하는 현상이 최근 더욱 뚜렷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HR테크기업 인크루트가 대학생 11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대학생이 가장 일하고 싶은 공기업’ 조사에서 다수의 응답자가 공기업을 선택한 이유로 고용 안전성을 꼽았다. 한국전력공사·한국철도공사 등 대학생들은 이들 기업을 선택하며 안정된 고용을 주된 이유로 들었다.
반면 세계 다른 나라의 청년들은 조금 다른 선택을 한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고용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것과 다르게 미국에선 경력 이동성과 업무의 의미를 중시하는 분위기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고용 안정성보단 이른바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일과 삶의 균형)’을 더 우선해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 ‘정규직=생존’… 안정성이 전부가 된 사회 =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 공기업은 사실상 유일하게 예측 가능한 직장이다. 본지가 통계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 중 약 38.2%가 비정규직이다. 문제는 이 가운데 상당수가 20대 대학생·청년층에 몰려 있다는 점에 있다. 일자리를 얻더라도 인턴·계약직·파견직 등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기 쉽다.
정규직·비정규직을 놓고 얼마나 해고가 자유로운지를 나타내는 지표를 보더라도 확연한 차이를 나타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019년 공개한 고용보호 지수(EPL Index)에 따르면 한국의 정규직 해고 보호 수준은 2.31점이었다. OECD 평균인 2.26점보다 높고, 특히 미국(1.00점)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고용보호 지수는 점수가 높을수록 해당 국가의 노동관계법이 경직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공기업·대기업의 정규직만이 법적으로 보호받는 구조가 강하다는 뜻이고, 결국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정규직에 목숨 거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른바 ‘정규직 몰빵’ 현상은 우리나라가 지난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겪게 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수많은 정규직 해고와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우리나라에 ‘평생직장은 없다’는 인식이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부모 세대의 기억은 고스란히 자녀 세대의 가치관으로 이어진다. 결국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안정’은 단순한 편안함을 뜻하는 게 아니라 이른바 ‘루저(낙오자)’가 되지 않는 조건이 된 것이다.
■ 美·日 대학생들은 어떻게 다를까 = 나라 밖 상황은 어떨까. 본지가 전 세계 대학생·청년들이 주로 사용하는 ‘엑스(X)’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분석한 결과 해외 대학생·청년들의 ‘커리어(Career)’에 대한 인식은 확연히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대학생들은 고용 안정성보다 ‘커리어 안전성(Career Security)’을 더 중요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 직장에서 ‘안 잘리고’ 오래 버틸 수 있는 것을 우선시하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실력과 경험’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인식한다.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으며 이직 역시 미국에선 흔한 일이다. 오히려 2~3년 주기로 이직을 반복하며 연봉·직무를 끌어올리는 것을 전략으로까지 여기는 분위기도 확인됐다.
일본은 학교를 졸업하고 한 기업에 취직해 정년까지 계속 고용하는 시스템인 ‘종신고용(終身雇用)’ 문화가 강했지만, 이제는 이것도 옛말이 됐다. 최근 일본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워라밸 가치가 확산하는 움직임이다. 물론 도요타·미쓰비시 등 대기업을 선호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장시간 노동에 대한 반감과 개인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번지고 있다. 또한 실패에 대해 부정적 낙인을 찍었던 사회적 분위기도 점차 완화되는 분위기다.
■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한국… 대학생의 선택 좁힌다 = 우리나라에서 ‘실패’는 곧 낙오다. 공채에 탈락하거나 퇴사하는 것, 심지어 한 회사에서 오래 있지 않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것도 실패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실패에 대한 관용이 없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결국 대학생들은 도전을 피하게 된다. 이들이 안정만은 좇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박현경 동서울대 교수학습지원센터장(교육학 박사)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우리 사회는 어릴 때부터 ‘이겨야 한다’ ‘틀리면 안 된다’ ‘1등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주입한다”며 “결국 한국의 대학생들은 우리 사회가 실패를 감당해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문화는 결국 ‘남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첫 직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에 내몰린다”며 “도전이 아니라 생존이 최우선인 구조에서는 정년 보장이 곧 ‘삶 보장’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SNS와 보여주기 문화 역시 대학생들의 안정성 집착을 강화하는 요인이 된다.
박현경 센터장은 “젊은 세대는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싶어한다. ‘나 공기업 다녀’ ‘나는 대기업 정규직이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고 느낀다”며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선 ‘정년 보장’이 필요하다는 식의 인식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실패를 통해 배운다는 태도보다 실패하면 끝이라는 인식이 대학생·청년층 사이에 뿌리 깊다”며 “타인과 비교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성취를 인정하는 문화가 확산하지 않는 이상 이 같은 안정성 선호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용 안정성은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것이 유일한 가치가 돼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대학생·청년들이 모두 같은 직장을 꿈꾸고 같은 시험을 준비하고 같은 기준으로 성공을 정의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정규직이냐 아니냐’ ‘공기업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 번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 이직이나 전직이 불이익이 되지 않는 사회, 공정한 사다리와 복지 제도가 대학생·청년의 삶을 지탱할 수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