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중심의 교육 불균형 해소, 대학 서열화 완화, 지역인재 양성의 기회
장기적·안정적 예산 기반 확보 관건… ‘예산 나눠먹기’식 접근은 효과 ‘미미’
전략산업, 지역사회 핵심 의제, 국가적 성장동력 분야에 예산 선택 집중해야
거점국립대의 변화 의지 성공 가늠할 잣대, 경제·산업·문화 정책과도 긴밀히 연계돼야
[한국대학신문 김준환 기자] 이재명 정부에서 국가균형발전이 주요한 정책 아젠다로 추진되고 있다. 李정부의 고등교육 정책 역시 수도권·비수도권 대학 양극화 해소와 지역균형발전에 방점을 두고 있어 정부정책과 괘를 같이 한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지역 소멸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대학가의 고민도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의 구조적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대학을 둘러싼 고등교육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 방향성을 집중 점검하는 〈이재명 정부 고등교육 정책, 어디로 가나〉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 연재 순서
①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가능성과 한계점
② 사립대 위기와 정부의 구조조정 대책
③ AI교육과 R&D 투자
④ 교육 거버넌스 개편
대한민국 고등교육계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여 있다. 인구소멸과 지역소멸의 파도는 대학을 먼저 삼키며, ‘수도권 일극체제’는 지방대학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온다. 이 거대한 균열 위에서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바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대한민국 고등교육 체제의 구조적 전환을 요구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거점국립대를 세계 수준으로 육성해 전국에 분산된 연구거점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 정책은 수도권 집중 완화, 지방소멸 위기 극복, 미래기술 패권 경쟁 대응이라는 3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오늘날 국가 경쟁력은 지하자원이나 노동력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고급인재를 얼마나 양성하고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인공지능(AI), 바이오, 반도체, 우주항공 같은 전략산업은 소수의 세계적 연구거점과 인재 풀에서 성패가 갈린다.
세계 기술패권과 인재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고등교육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수도권 일극체제와 지역소멸이라는 고등교육의 현실 앞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국가인재육성과 국토균형발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복안이 될 수 있을까.
■ 자생적 학문생태계 구축, 공교육 정상화 기반 조성 =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지방소멸 위기와 수도권 집중 완화를 넘어, 자생적 학문생태계 구축과 공교육 정상화 기반 조성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
대학은 대중화 이후에도 여전히 최고 수준의 인재를 길러내는 기관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우수 인재들이 학문 연구보다는 전문직을 선호하거나, 연구 의지가 있어도 국내 대학원 대신 해외 유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한국 대학은 학문후속세대 육성의 고리가 약화됐고, 국내 학문 생태계의 자생력이 무너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구거점대학은 기초학문에서 국가 전략산업 분야에 이르기까지 자국 내에서 고급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이는 한국이 추격형 국가에서 선도형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국가적 학문 생태계가 자립해야 미래기술 주도권 확보도 가능해진다.
국내 고등교육 체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수도권에 집중된 대학 서열 구조다. 현재 소수의 최상위권 대학만이 ‘선발 대학’으로 기능하고, 다수의 대학은 정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모집 대학’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로 인해 소위 ‘SKY’라 불리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소수 대학에 진학하려는 경쟁이 과열되고 공교육은 입시 위주의 교육에 갇히게 됐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을 통해 거점국립대가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해 학생들에게 실질적 대안 대학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선발 대학’의 수가 크게 늘어나 병목 현상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대학 서열체제의 완화로 이어지고 대입 과열 경쟁이 줄어들면서 창의적 ·비판적 사고, 협업 능력과 같은 미래역량을 기르는 교육이 가능해진다.
결국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단순한 대학 경쟁력 강화 정책을 넘어, 공교육 정상화의 제도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서울대 10개 만들기’ 가능성과 한계는? =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갖는 현실적 한계와 구조적 문제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게 재원의 확보다.
서울대 수준의 지원을 거점국립대에 확대·적용하려면 연간 3조 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데도 재원 확보 방안이 명확하지 않다. 고등교육재정 전문가는 “현재 한국 재정은 세수 감소와 경기 침체로 압박을 받고 있다. 정부는 교육세 세율을 일부 조정해 재원을 마련하려 하지만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은 여전히 의문”이라며 “정책의 성패는 결국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단계적 확대 전략을 선택했다. 국정과제 5개년 계획에 따르면 초기에는 연간 약 9000억 원 규모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국세 교육세 세원 가운데 금융·보험업자 수익 금액의 세율을 0.5%에서 1%로 높이고, 이를 통해 확보되는 추가 세수를 전액 고등교육에 투입하기로 한 결정이다. 이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단기적 이벤트가 아니라 비교적 안정적인 제도 기반을 갖추고 추진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물론 10년 이상 장기 투자가 필요한 만큼, 단순히 재정을 투입한다고 해서 거점국립대가 곧바로 서울대 수준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 사례를 보더라도 평범한 지방대학이었던 칼텍이나 스탠퍼드가 글로벌 명문으로 도약하는 데에는 최소 10~20년이 걸렸다. 국내 거점국립대가 서울대 수준으로 성장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 이재명 정부 교육 국정과제를 책임진 홍창남 부산대 교육학과 교수(전 부산대 부총장·국정과제위원회 사회 2분과장)는 “제한된 자원을 모든 분야에 일괄적으로 분배하는 ‘예산 나눠먹기’식 접근은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며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더라도 전략산업, 지역사회 핵심 의제, 국가적 성장동력 분야에 선택적으로 집중하지 않는다면 성과는 모래 위에 물을 붓는 격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거점국립대는 각 지역과 국가가 필요로 하는 특정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특성화 전략을 추진해야 하고, 이후 성과가 검증되면 지원 분야를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정책 반대론자들은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지방대 100개 죽이기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거점국립대만 집중 지원이 이뤄지면 비(非)거점대학은 위기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정책은 별도 예산을 확보해 추진되는 것이므로 다른 대학에 대한 기존 지원을 축소하는 방식은 아니다. 물론 지원 규모의 격차는 불가피하게 발생할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 과정에서 비(非)거점대학의 역할과 지원 방안을 고려한 상생 모델을 병행 설계하지 않으면 고등교육 생태계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서울대 10개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청년들이 지방에 정착하지 않으면 효과는 제한적이다. 지역대학의 한 교수는 “대학 캠퍼스가 아무리 좋아도 지역에 양질의 일자리, 의료·문화 인프라, 주거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우수 인재는 여전히 수도권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이 정책은 교육부 단독과제가 아니라 경제·산업·문화 정책과 긴밀히 연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서울대 10개 만들기, 국가적 차원의 총체적 접근 필요 = 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전략과 실행이다. 홍창남 교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체질을 바꾸려는 담대한 실험이자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중장기적 프로젝트”라며 “정책이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단순히 예산을 확보하고 배분하는 수준을 넘어, 정부와 대학 모두가 치밀한 전략과 협력적 실행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가적 차원의 총체적 접근이 필요한 것은 물론, 정책 당사자 간에 긴밀한 이해와 협력 체계구축이 필수적이다. 정책을 기획한 국정기획위원회, 최종 결정을 내리는 대통령실, 집행을 담당하는 교육부, 관련 법령과 예산을 확정하는 국회와 기획재정부 등은 정책의 취지와 목표를 명확히 공유해야만 성공한 정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또한 정책 당사자인 대학, 정부출연연구기관, 지역 기업, 산업계 연구소 등도 협력 주체로 포함돼야 한다. 홍 교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초기 제안된 아이디어와 국정과제로 구체화된 정책 간에 내용상의 간극이 크기 때문에 관계자들 사이에 오해와 불신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며 “이러한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청회, 토론회, 설명회 등을 통해 정책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점국립대의 변화 의지도 정책 성공을 가늠하게 하는 잣대다. 거점국립대 총장을 지낸 한 명예교수는 “거점국립대는 정부 지원에 상응하는 혁신적 성과를 보여야 하며, 특히 특성화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학내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리더십과 합리적 의사결정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며 “집중 지원을 받는 학과나 교수에게 보다 엄격한 성과를 요구하되, 성과 기반의 합리적 보상 체계, 책임성 있는 연구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밝혔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재정지원 구조 확립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재정 지원의 단계적 확대 로드맵 △성과에 기반한 재투자 체계 △교육세 등 특정 세원의 안정적 확보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 나아가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 산업계, 민간 기부까지 연계하는 다원적 재원 조달 전략도 필요하다. 특히 지역 산업과 연계한 산학협력 펀드, 글로벌 기업과의 공동투자 모델 등 다양한 재원 조달 방식을 개발해야만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거점대학과 비(非)거점대학과의 상생 협력 모델 구축이다. 예를 들어 △학사·대학원 공동 운영 △연구 인프라 공유 △지역 특화 교육과정 연계 △학생 교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상생 구조를 마련할 수 있다. 대학 간 상호 협력과 역할 분담을 통해 고등교육 전반의 균형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이는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단순한 10개 대학의 성과가 아니라, 한국 고등교육 전체의 도약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핵심 조건이기도 하다.
결국,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10개의 대학을 단기간에 세계적 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장기적 비전, 안정적 재정, 협력적 거버넌스, 대학 내부의 혁신 의지가 결합된다면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은 수도권 중심의 왜곡된 구조를 넘어 새로운 균형과 도약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