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구성원이 바라보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취지 동감, 현실성은 ‘글쎄’
임정묵 교수회 회장 “정책-현장 간 괴리 줄여야… 국내 고등교육은 UC와 달라”
고등교육 전체 예산 ‘재구성’·대학 간 네트워킹 등 제안… 체계적 계획 수립 필요

서울대학교 (사진=한국대학신문DB)
서울대학교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김소현·백두산 기자]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국내 일류 대학을 지방에 추가로 9곳 양성하겠다는 이름만큼이나 파격적인 제안으로 교육계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정부의 구상은 고등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하지만, 예산 부담과 지역 대학과의 격차 등 현실적 제약이 크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서울대 수준의 지방대를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을 두고 서울대 구성원들은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실 가능성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재학생과 교수진 등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정책의 명암과 개선 과제에 대해 짚어봤다.

서울대 학생들 “정책 취지에는 공감… 현실성엔 의문” =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과 관련해 서울대 재학생들은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접근에는 동의했지만, 현실 여건과 교육 인프라의 격차를 고려할 때 단기간에 효과를 거두긴 어렵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23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재학생 A씨(전기·정보공학부 3학년)는 “서울대 수준의 연구 지위를 가진 대학을 9개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았다”며 “예산 문제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학생이 서울로 진학하고 싶어 한다. 저도 지방에서 올라왔지만, 지역에 있는 서울대 수준의 대학과 서울대를 놓고 비교했을 때 서울대를 선호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에서 얼마 전 노벨상을 받은 것과 관련해서도 말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을 탈 만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선 어릴 때부터 재능과 능력을 인정받은 학생들에게 특정 수업을 지원하며 집중 투자하는 방향이 옳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치의학과 2학년 B씨도 “정책 취지는 좋지만, 지역 균형 발전이 실제로 이뤄질지는 의문”이라며 “거점국립대는 자체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취업 기회와 정보가 여전히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정책 취지대로 지역 균형 발전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의 상징성으로 거론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명칭에 대해서도 학생들은 “직관적이지만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B씨는 “서울대가 좋은 대학의 이미지를 갖고 있으니 정책 명칭을 들었을 때 이해하기 쉽도록 그렇게 정한 것 같다”면서도 “단순히 지방대를 서울대처럼 육성한다기보다는 각각의 거점국립대만이 지닌 장점의 취지를 담아 본격적으로 정책이 시행될 때는 명칭이 바뀌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제학과 C씨 역시 “정책 이름만 보면 서울대의 분교를 세우겠다는 건지, 수준을 맞추겠다는 건지 모호하다”며 “명칭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류학과 1학년 D씨는 “정책을 서울대 복제 사업으로 보기보다 지방대 활성화 전략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라고 전했다.

임정묵 서울대 교수회 회장 “고등교육 전체 예산 ‘리모델링’ 필요”… 수도권-비수도권 대학 간 네트워킹 방안 제시 = 학생들이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표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한계를 지적하며 정책과 교육 현장 간의 괴리를 줄여야 한다고 제언한다. 구체적으로 △예산 배분 △대학 간 격차 해소 △고등교육 생태계의 재설계 없이는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임정묵 서울대 교수회 회장은 “정책 추진에 앞서 현재 고등교육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며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기원이 된 김종영 교수의 저서에서 제시한 내용과 우리나라의 대학 환경과는 괴리가 있다. 이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데, 그것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임 회장은 예산 구조의 비현실성을 짚었다. 그는 “해당 사업을 위해선 연간 3조 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관측이 나오는데, 실제로 확보된 예산은 그것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며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를 연장하기로 한 예산안이 16조 원 정도 되는데 예산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16조 원은 꼬리표가 붙은 예산으로, 어디에 쓸지 이미 정해진 예산”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고유의 고등교육 예산 전체를 들여다보고 대대적인 리모델링 방안을 구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확보된 예산은 어디에 쓰여야 할까. 임 회장은 사업의 핵심을 ‘무생물’이 아닌 ‘사람’에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 회장은 “대학의 경쟁력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교수의 연구력과 학생의 수준, 대학 인프라로 나뉜다”며 “세계대학평가에서 2000~3000등 하는 대학들이 500~1000등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시설 인프라를 보완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들의 인프라가 아주 열악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예산은 대학의 요소와 학생에 대한 지원에 집중돼야지, 대학에 건물을 짓는다든가 건물의 시설 유지에 예산을 쏟아붓는 순간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아닌 ‘건물 10개 만들기’가 될 것”이라며 “국공립대 시설 지원 사업으로 이름을 바꾸면 모르겠지만,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 아래에서는 교수의 교육 연구력과 학생에 대한 지원이 파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성공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가운데 대학 간 격차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임 회장은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모델이 되는 것이 캘리포니아주립대(UC)다. 해당 시스템은 대학마다 특성화돼 있고 대학 간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며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대가 여태까지 예산을 많이 받은 것도 있지만, 50~60년간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서울대, 연대, 고대, 카이스트, 성균관대 등에서 나오는 논문 수가 전체 대학 논문 수의 50%가량 차지할 것이다. 교수님들 수준이 평준화됐다고 하더라도 학생이나 재원, 인프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므로 평탄화 작업이 되지 않으면 정책 자체가 좌초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을 바라보는 대학 간 입장이 서로 다른 가운데, 이에 대한 합일점을 찾는 것 또한 과제로 남는다. 그는 “대학의 현실을 바라볼 때 단순히 거점국립대에 예산을 몰아주는 것보다 거점국립대, 국가중심국공립대, 사립대 등 전체 대학에 대한 재정 구조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제대로 된 고민이 필요하다”며 “정책 자체가 나쁘기보다는 대한민국 고등교육 시스템에 맞도록 잘 튜닝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 양성된 고급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는 문제와 관련해 임 회장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진단했다. 국내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선 상위권 일부 대학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국내 대학의 인건비를 기존보다 두 배 이상 늘리면 인재 유출 현상을 늦출 수 있다. 그러나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예산도 필수적인 상황에서 정부 예산은 한정돼 있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임 회장은 이를 정책적으로 접근하는 방안으로 ‘대학 간 네트워킹’을 제시했다.

임 회장은 “서울대를 포함한 리딩 대학과 지역에 있는 대학이 네트워킹을 구성하면 이 문제를 다뤄볼 수 있다”면서도 “공동학위제에는 동의하지만, 정책이 아직 설익은 측면이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표했다. 학생 간 학력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똑같은 수준의 연구와 강의를 토대로 똑같은 학위를 주는 건 무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임 회장은 석·박사 과정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대학 간 네트워킹을 추진하는 사전 정비 작업을 제안했다. 그는 “석·박사 과정의 경우 교수님들 사이에서 수도권 대학과 지방에 있는 대학이 공동으로 연구하는 사례가 많다”며 “여기에 참여하는 박사들에게 공동학위제를 주고, 박사 과정이 정착되면 석사로, 석사 과정이 정착되면 학사로 나아가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성공 사례로 남기 위해선 정확한 진단과 체계적인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은 “해당 정책을 통해 서울대도 경쟁할 수 있는 질 높은 대학이 여러 개 만들어진다면 건강한 대학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현재 논의되는 규모로는 정책이 성공하기 어렵고, 대학 자체적 노력과 구조조정도 필요한 상황”이라며 “예산을 투입하는 동시에 어떻게 발전을 이뤄나갈 것인지 계획안을 확실하게 만들어 받아보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불가능하진 않지만, 얼마나 체계적으로 프로그램을 짜는지가 정책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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