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교육·융합연구 아직 걸음마 단계…넘어야 할 산 많아

* 세계경제포럼 (WEF; World Economic Forum)에서 발표한 미래 일자리 변화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에 따라 2020년까지 20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기는 데 반해 710만 개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한다. 5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셈이다.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은 현재 우리가 4차 산업혁명 과정에 진입해 있고,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우리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봤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대학 내부에서 교육, 연구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학 교수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대비가 필요하고 대학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파도를 넘을 수 있을지 3회에 걸쳐 들어보고자 한다.

[한국대학신문 김소연·구무서기자] 4차 산업혁명 대비 대학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창의 융합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인문계 학생들이 소프트웨어ㆍIT 관련 교육을 받거나 이공계열 학생들이 인문학 수업들 듣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수준의 수업은 학점 채우기형,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대학 융합교육 및 융합연구 환경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 4차 산업혁명 대비한 대학교육 어디까지 왔나 =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창의 인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학생들이 주어진 지식을 외우는 것보다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체험식ㆍ토론식 교육이 중요한 상황이다.

캡스톤디자인이 대표적이다. 대학에서 공학계열 학생들에게 산업현장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졸업 논문 대신 작품을 설계하고 실제로 제작도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타 전공 학생과 토론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 많은 대학에서 적용하는 캡스톤디자인은 현재 대학 내에서 창의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기초적 수준의 수업 방식이다.

오중산 숙명여대 교수(경영)는 “4차 산업혁명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메이커’가 될 수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그렇게 돼야 한다”면서 “대학에서는 정규 교과에 이런 과정 등을 포함하고 비교과 영역에서 학생들이 실제로 체험해보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지금은 개별 전공에 꼭 이수해야 하는 과목, 학점 등이 정해져 있어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교육을 위해 인문계와 이공계 학생들이 동시에 수업을 듣는 통합전공 과목 안에서 새로운 커리큘럼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방향과 문제의식은 있으나 실제로 융합연구, 융합교육을 시도하기엔 대학마다 한계가 있다.

대학들은 최근에 와서 융합연구, 융합교육을 위한 준비에 나서고 있다. 남호수 동서대 기획연구처장은 “ICT 융합분야에 3개 학부가 있는데, 여기서 학생 교류와 교수들의 협동연구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교내 연구소를 중심으로 교수 간 협업 연구를 집중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려면 공학계열, 인문계열 등 교육 프로그램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규태 고려대 교수(전기전자공학)는 “융합교육 문제는 개별 사례들을 묶어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어 보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은 구체적 생각이 없이 큰 그림만 있고 실제 실행 방안 등이 부족한 형편”이라면서 “공학계열에서 캡스톤디자인이 창의 인재를 키울 수 있는 방안이라면, 인문계열 교육 사례 등 계열별 사례를 모아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산학협력 '보여주기 식' 아닌 기업과 인재·연구 연계가 핵심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학이 기업의 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 역할도 필요하다. 기업과 대학의 연계로 ‘윈윈(win-win)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연구가 아닌 이공계 공학계열에서는 산학협력의 활성화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됐다. 기업이 대학을 지원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도 필수 과제다.

장동식 고려대 교수(산업공학)는 “연구 지원을 국가가 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기업이 지원해 필요한 인재를 키우고 필요한 원천기술을 대학이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면서 “산업체 수요를 알지 못한 채 인재를 키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교육에 지원하는 기업을 국가가 인정해주고, 교육에 헌신하면 기업에도 이익이 된다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경재 경남대 연구처장도 대학의 연구와 산업체의 연계를 강조했다. 하경재 처장은 “대학의 연구와 산업체 요구가 따로 놀면 안 된다. 기업이 살아야 대학도 산다”면서 “특히 중소기업 같은 경우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전혀 대비를 못하고 있다. 대학이 기업의 수요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 해소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정부와 민간의 연구개발비는 절대 규모 기준 세계 5위로 약 63조7000억원에 달하지만 각종 규제로 인해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구 한양대 의대 교수는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는 혁신적인 R&D가 필요하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는 R&D를 위한 독립된 부서가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규제를 하는 부서가 R&D도 담당한다. 바이오만 해도 10개 부처가 관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연구 개발 투자비는 GDP 대비 약 5%에 해당할 정도로 규모 면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그런데 성과가 부족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미래를 이끌 인재가 부족하다” 위기감 고조…고급 연구인력 양성해야 = 대학 연구실에는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이 부족해 인력난을 겪고 있다. 연구실에서 연구를 전문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박사 후 연구원 과정 등 고급 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황은성 서울시립대 교수(생명공학)는 “미국은 포스트닥(박사 후 과정) 위주로 돌아간다. 한 명의 교수 밑에 조교수, 부교수를 포함해 포닥이 많다. 교수는 그들이 만든 연구 결과를 모아 방대한 논문을 쓴다”면서 “그런데 우리는 교수가 연구실 운영하면서 석·박사생을 가르친다. 이럴 경우 전 세계적인 연구 경쟁력을 갖기란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도 마찬가지다. 한 교수 아래 여러 명의 부교수와 조교수, 대학원생들이 소속돼 있다. 교수가 연구실을 운영하고 그가 펼쳐준 우산 아래 부교수와 조교수들은 연구비 수주와 강의에 큰  부담 없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다. 외국에서의 짧은 수련 후 귀국해 안정된 연구를 할 수 있는 이유다. 교수도 이들 고급 연구 인력을 활용해 자신의 연구에서 깊이를 추구해간다”고 지적했다.

국내 박사 학위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커 박사 후 연구원이 해외 대학으로 떠난다는 이유도 제기됐다. 최근에는 이런 현상이 줄어들었지만 인력 부족의 이유 중 하나로 국내 박사 학위보다 해외 대학 박사학위를 선호하는 문제도 나온다.

공구 한양대 교수는 “국내 박사 학위를 배제하는 차별도 문제다. 미국 대학 학벌 위주로 교수를 뽑으면 안 된다. 국내 연구 인력이 해외 대학으로 빠져 나가고 있다. 대학 사회가 크게 반성해야 할 문제”라면서 “이런 식으로 연구하고 인재를 키우다간 4차 산업혁명의 큰 기류를 타지 못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다”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 ‘정치’는 빠지고 ‘연구’에 집중해야
주목받는 AI 과거엔 '찬밥'…장기적 안목으로 바라봐야
정치적 이용 말고 연구에 자율성 부여해야

신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정책을 쏟아내는 가운데 연구 일선에 있는 대학들은 유행을 좇듯 몰려가는 현 상황에 우려를 표시했다. 4차 산업혁명과 융합연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장기적 안목에서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자율주행차 △경량소재 △인공지능(AI) △스마트시티 △가상·증강현실 △정밀 의료 △탄소자원화 △미세먼지 저감·대응 기술 △바이오신약 등이다. 9대 분야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는 향후 10년간 약 1조6000억원을 투입하고 6152억원의 민간투자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주도의 육성 분야 설정에 대해 대학가에서는 입장이 갈렸다. 지금 4차 산업혁명 대비를 위한 과제들도 과거에는 미래전략을 위한 연구 분야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반기술, 전통 기술의 연구를 통해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의견이다.

A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 된 인공신경망의 핵심 인력들은 1990년대 이후 인공신경망의 한계로 거품이 한꺼번에 꺼진 이후 20여 년 꾸준히 연구를 지속해 끌고 온 연구실에서 배출됐다”며 “어떠한 분야를 정해놓고 그 분야에서 설정된 과제를 따기 위해 이리저리 트렌드에 따라 휘청거리면 결과적으로는 패스트 팔로워(Fast-follower)가 되기 위한 연구에 가깝지, 세계적인 혁신을 가져오기 위한 연구 진행은 어렵다”고 꼬집었다.

B대 교수도 "어떤 틀을 짜서 유도하려고 하면 안 된다"며 "결과를 맞추기 위한 노력 때문에 알맹이가 영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픈형 유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진 서울대 교수(컴퓨터공학)는 "알파고가 뜨니까 AI쪽 연구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개발된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만 가르치고 있다"며 "미국은 기반기술에 재정을 투입한다. 우리나라도 원천기술 연구에 꾸준히 투자해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눈앞에 드러난 주력 분야 외에 다른 분야에 대한 투자도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규태 고려대 교수(전기전자공학)는 "연구 분야나 개인적 성향에 있어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연구자가 많다. 이런 연구자가 4차 산업과 연관된 분야가 많다"며 "주류뿐만 아니라 비주류를 위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마찬가지로 4차 산업혁명이 정치적 수단이 되면 곤란하다는 우려도 보였다. B대 교수는 "최근 4차 산업을 정치적으로 밀어붙이는 느낌이 강하다"며 "4차 산업이 정치적 슬로건이 되면 안 된다. 교육과 연구에 정치가 개입하면 무조건 망한다"고 말했다.

반면 국가가 나서서 집중 육성 전략 자체를 끌고 나가면서 장기적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C대 산학부총장은 “모든 정책이 자율적인 것은 좋을 수도 있으나 경우에 따라 국가가 발전 전략으로 둘 수 있다”면서 “미국은 국가적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교수 개인이 하기 어려운 분야가 있기 때문에 국가가 산업발전, 세계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국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투자도 하고 관련 교수들 연합 계획과 전략을 세우는 게 맞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