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못 돼 떠나는 연구자, 대학 29.6% 기업 24.4% 출연연 23.1%
연구 한창 할 30·40대에 주로 이탈...60대 넘어 떠나는 男과 대조

석사 29.8% → 박사 20.4% → PM 8.9%
연구책임자·보직교수 중 여성 여전히 적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난다지만 과학기술계에서는 여전히 저조하다. 임신, 출산을 겪으며 일과 삶의 양립을 이루지 못하는 환경 속에 지친 여성들은 꿈을 꺾고 만다. 이는 인력을 양성하는 동시에 연구개발의 한 축인 대학에도 해당된다. 비정규직 고용형태와 장시간‧고강도·남성 중심 연구 문화가 여성 연구자들을 밀어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는 창간 29주년을 맞아 3회에 걸쳐 대학 내 여성연구인력 경력단절 실태와 원인을 다루고 해결책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上> 사례와 통계로 본 대학의 여성연구자 경력포기 실태
<中> 비정규직·남성중심 문화 속 여성 배려 대책도 글쎄
<下> 이탈 막기 위한 연구문화 개선·성평등 정책 없이 미래 없다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A씨 (박사학위과정)는 학계에 남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구실의 문을 두드렸던 때를 떠올린다. 지도교수는 “여성 연구자는 결혼과 출산으로 학위를 다 못 마칠 수 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건 너의 의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A씨는 '자신만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예비 심사까지 마친 때, 아이를 낳게 됐다. 세 시간마다 한 번씩 유축 (미리 모유를 받아 보관하는 것)을 해야 했는데, 다니던 대학 어디에서도 공간을 찾을 수 없었다. 때론 참았고, 때론 집까지 다녀오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학회 출장은 어떻게 할까. 아이를 어디 맡겨 둘 지도 고민이다. 이미 임신 기간 논문을 쓰느라 취업 준비는 꿈도 꾸지 못했다.

박사 학위를 받아도 문제다. 어린이집이 마련된 대학도 추첨이 잘 안 되고, 앞으로 아이를 키우려면 정년 보장이 되는 곳을 가야할 텐데 자리가 없다. 운 좋게 된다 하더라도 정년 보장 전환을 위해서는 논문을 많이 써야 한다. 학회에서 만난 B 교수는 연구과제 연차보고서 때문에 매일 12시간 일하며 휴가를 낼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연구소에 재직중인 친구 C 박사도 "아이를 가져서 장거리 출장이 어렵다"고 했더니 상사가 회사 전체 메일로 불참 사유를 임신이라고 적어 보내 언쟁을 했다. A씨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한숨 짓는다.

오늘날 한국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진로를 고민하는 여성 연구자가 한 번 즈음 겪을 법한 내용이다. ‘경단녀’라는 신조어가 보여주듯 경력단절 여성의 문제는 한국 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숙제기도 하다. 과학기술은 유독 여성에게 높은 벽으로 여겨졌다. 최근 과학기술계 학생, 신진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편견을 극복하고 환경을 개선하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본지가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와 한국교육개발원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대학의 과학기술 분야 여성 연구 인력의 ‘경력 포기’는 첫 실험실을 갖고 연구에 매진할 30대와 40대에서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통계에서는 대학의 지표가 정부출연연구소, 민간기업 연구소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 대학 떠나는 여성 과학기술인, 신진연구자가 가장 많다= WISET이 2015년 이공계 학과가 설치된 전국 대학 264곳을 비롯한 연구기관 3507곳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학에서 일한 지 3년이 못 돼 퇴직한 연구자 중 여성의 비율은 29.6%로 3분의 1에 가까웠다. 공공연구기관(23.1%), 민간 기업(24.4%)의 같은 경우보다 높았다. 대학을 떠난 여성 연구자 중에서도 가장 많은 42.9%가 3년을 채우지 못했다.

이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연구개발(R&D)의 중추를 맡고 있는 30~40대에 퇴직하는 여성 인력이 절반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교수로 정착해 가장 활발히 연구할 때인 40대가 30%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박사후연구원 또는 교수 임용 초반인 30대도 27.5%로 나타났다. 60대에 은퇴하는 경우가 절반인(50.3%) 남성과 대조적이다. 30대 남성 퇴직자(12.7%)와 40대(18.1%) 비율을 합쳐도 같은 세대 여성 절반에 못 미친다.

이 같은 ‘경력포기’의 원인은 임신, 출산, 육아에 따른 ‘경력단절’이라는 지적이다. 같은 통계에서 전체 자연·공학계열 전공자 중 경력단절로 직업이 없는 여성의 비율은 전체 비취업자의 67.7%에 달했다. 이들 중 30대가 65.2%로 가장 많았음은 물론이다. 특히 공학계열의 경우 비취업자 10명 중 7명(71.7%)이 경력단절을 겪고 있다고 답해 모든 전공 계열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 대학원생도 중도 포기...학위 높아질수록 여성 비율 감소= 대학 연구실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실무자는 대학원생이지만, 학위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여성의 비율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도이탈 내지는 진학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지난해 통계를 본지가 분석한 결과, 자연·공학계열 석사학위 취득자 중 여성은 5990명으로 남성(2만76명) 3분의 1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9.8%). 반면 같은 계열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여성은 남성(5978명) 5분의 1(20.4%, 1222명)에 불과하다. 석사과정에서는 남성 세 명에 여성 한 명이 있다면, 박사과정을 마칠 때면 남성 다섯에 여성 한 명이 있는 꼴이다.

계열별로 세분화 해도 석사보다 박사가 적긴 했으나, 자연과학보다 공학계열 학위 취득자 수는 눈에 띌 정도다. 연규진 서강대 교수(심리학) 등이 작년 내놓은 ‘이공계 여성 대학원생의 진로선택과 대학원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에 따르면 이학계열(자연계열)의 경우 여성 석사졸업자가 전체 52.8%로 절반을 넘는다. 하지만 박사를 마칠 때는 36.6%로 전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반면 공학계열은 석사졸업자가 다섯 명 중 한 명보다 적고(18%), 박사졸업자는 열에 한 명 꼴(9.9%)이다. 연구진은 “한국 여성들이 여전히 고학력 과정을 지속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해석했다.

신하영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이학과 공학계열에서 여성 대학원 졸업생과 입학생 비중은 여전히 저조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며 “특히 노동시장과 고부가가치 연구 성과로 이어지는 공학계열에서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진학률이 더 저조하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 롤모델도 없다...연구책임자 8.2%, 공학분야 전임교수 5.3%= 학생들이 롤모델을 삼을 여성 연구자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WISET의 통계에서 지난 2015년 대학의 보직교수 7920명 중 여성은 955명(12%)으로 열 명 중 한 명을 겨우 넘겼다. 

전임교수도 자연계열은 여성이 28.3%로 세 명 중 한 명이었다면, 공학계열은 5.3%로 스무 명 중 한 명에 그쳤다. 

같은 해 대학이 맡은 정부연구과제 4만400건을 들여다보면 연구과제 책임자(PM)로 있는 여성은 3687명으로 전체의 8.2%, 25명 중 2명에 그쳤다. 4만1077명에 달하는 남성 수 대비 8.9%다.

전문가들도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은 지난해 ‘여성과기인R&D경력복귀지원 성과분석 및 지원효과 제고방안 연구’에서 “저출산, 고령화 추세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이 계속 저해된다면 한국의 국가 성장도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가 성장 동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R&D 분야임을 고려한다면 여성과학기술인의 경력단절 문제는 꼭 해결이 되어야 하는 시급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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