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필수의료 인력 증원, 의사 과학자 양성 필요”…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 강조
의료계 “근본적 해결 없이 숫자 늘리는 것 의미없어”…의대 쏠림 현상 심화 우려도

’24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200여명의 남원시민들이 ‘남원 국립의전원법'의 즉각적인 국회 통과를 촉구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임지연 기자)
’24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200여명의 남원시민들이 ‘남원 국립의전원법'의 즉각적인 국회 통과를 촉구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임지연 기자)

[한국대학신문 임지연 기자]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규모 발표를 미루고 의료계와 협의하기로 하면서 의정 간 정면충돌은 피했지만, 필수의료 인력 증원 필요성을 주장하는 정부와 근본적 해결 없이 숫자만 늘리는 것은 선호하는 병원만 늘 것이라는 의료계의 주장이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계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원 확대가 결정되면 총파업도 불사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의사 인력 부족 문제는 매번 지적돼왔다. 특히 연봉 3억~4억 원에도 지방의료원에서는 의사를 채용할 수 없고 응급실 뺑뺑이로 사망하는 등 지방 의사 수 부족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필수의료 인력의 증원이 필요한 이유로 대두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의사 과학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의사 과학자는 환자 치료에 집중하는 임상 의사와 달리 △미래 질병을 다루는 예측 의학 △인공 장기를 활용하는 재생 의학 △난치병 치료를 위한 맞춤형 신약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의사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대생 가운데 의사 과학자로 양성되는 경우는 1% 미만에 불과하다.

국내 의대 정원은 3058명으로 동결된 상태다. 전 정부에서 2022년부터 매년 400명씩 10년간 의대 정원을 4000명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지만 의사단체 등이 총파업으로 강경하게 대응하며 무산됐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2020년 9월 의정합의를 맺은 이후 의료현안협의체 등 의료계와 협의기구를 만들어 의대 정원 방안 등을 논의 중이며, 19일에는 ‘필수의료 혁신 전략’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19일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고 초고령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의료인력 확충과 인재 양성은 필요조건이다. 임상 의사뿐 아니라 관련 의과학 분야를 키우기 위한 의료인을 양성해야 한다”고 밝히며 의대 정원 확대 의지를 내비쳤다. 정치권도 필수의료 인력 증원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의대 정원 확대에 뜻을 합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는 의대 정원 확대 반대 입장을 냈다. 지역·필수의료를 기피하는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의대 정원을 늘려 응급실과 지방병원 의사를 증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정원을 확대해도 결국 워라밸이 보장되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인기과로만 몰릴 것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의대가 서울에 밀집돼 있는 부분도 지적됐다. 현재 전국 의대 40곳 중 8곳이 서울에 몰려 있다. 지역별 의대 정원 편차도 큰 상황이다. 2021년 권역별 의대 입학 정원은 서울 826명으로 전체 의대 정원(3058명)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부산·울산·경남은 459명, 대구·경북은 351명, 대전·충남은 332명, 강원은 267명 등이다. 전남과 세종에는 의대가 없다.

심각한 의대쏠림 현상이 의대 정원 확대로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서동용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서울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수시와 정시 최초합격자 가운데 421명이 미등록했으며, 단과대학별로 3년 동안 최초합격자 미등록에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학과는 의과대학이 유일했다. 서울대를 다니다가 그만둔 자퇴생도 4년 만에 70%나 증가했다. 2019년 193명이던 자퇴생이 2022년에는 328명을 기록한 것이다.

서동용 의원은 “서울대 치대를 합격해도 등록하지 않는 원인으로 다른 대학 의대에 합격한 것 말고는 특별한 사유를 생각하기 어렵다”며 “대학 진학 목표가 ‘의치한약수(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로 바뀌면서 서울대 치대, 약대 등 의약학계열에 합격한 최상위권 학생들마저 정확하게 의대로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 역시 “의대 모집 정원의 규모에 따라 지원 가능 대학 일반학과 범위가 상당히 크게 나타나고 의대 지원권에서 다소 거리가 있었던 학과도 의대 관심권 학과로 대거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에 의협 등 의사단체는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기피하는 학과에 대한 지원·보상이 많아지는 등 여건이 개선돼야 지원인력이 늘 것이라며, 숫자만 늘리는 정책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의 일방적인 정원 확대가 결정되면 총파업도 불사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2025학년도부터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공식화하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종료 후 실무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26일부터 의료계와 대화에 나섬과 동시에 의대 정원 수요조사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조규홍 장관은 19일 ‘필수의료 혁신전략’관련 브리핑에서 “의대 정원 확대 방안과 지역‧필수의료 지원정책 패키지를 마련해 의료계와도 적극 협의하고 수요자인 국민, 환자단체, 전문가 의견도 적극 수렴할 계획”이라며 “의료계도 정부와 협의에 적극 협력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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