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해지는 사회문제만큼 인문학도 융합‧중장기적 집단연구 필요
국내 인문학자들 ‘인문한국지원사업’ 종료 우려…“후속사업 이어져야”
인문학 발전 위한 플랫폼 구축‧공동연구 강화 등 방향성 제시

경희대·부경대·한국외대는 지난 1월 21일부터 22일까지 국립부경대학교에서 연합 국내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사진=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 제공)
경희대·부경대·한국외대는 지난 1월 21일부터 22일까지 국립부경대학교에서 연합 국내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사진=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 제공)

인문한국지원사업(HK/HK+)은 대학 내 인문학 연구소 집중 육성을 통한 인문학 연구 인프라 구축 및 세계적 수준의 인문학 연구 성과를 창출하는 데 방점을 둔다. 나아가 인문학 연구의 다양화·대중화를 통해 연구 성과의 학문적·사회적 확산을 도모한다. 본지는 인문한국지원사업에 대한 후속논의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헤쳐 나가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며, 인문학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가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 인문학 차원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융합적이고 중장기적인 집단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인문학 관련한 연구 지원은 주제 의식이나 방향성 없이 주로 개인 연구자에게 흩어져 있기 때문에 집단과제 차원에서 좀 더 체계적인 방향성과 목표 의식을 갖춘 인문학 연구에 대한 설계와 투자가 절실히 요구된다.”

국내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인문학이 이어지기 위한 조건으로 이같이 언급하며 인문학 지원사업을 국가 연구개발(R&D) 차원에서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인문한국지원사업을 통해 국가적‧사회적으로 시의성 있는 의제를 선제적으로 연구 개발함으로써 인문학 분야의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음을 피력했다.

본지와 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가 국내 인문한국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41개 연구소에 보낸 질의서의 답변을 취합한 결과 국내 인문학자들은 ‘인문한국지원사업’의 종료를 우려하고 있었다. 이들은 17년간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면서 정착단계에 접어든 인문학 연구소들의 성과와 연구 역량을 후속사업을 통해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실제로, 2017년에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HK사업을 통해 415명의 인문학분야 전임연구인력(전임HK교수 227명, 비전임HK연구교수 188명)이 채용됐으며, 총 6300여 건의 논문과 2100여 권의 저역서를 발간했다. 이는 인문학 분야 학과 소속 교수의 연구실적 대비 3배 이상의 실적이며, 최근 통계까지 확대하면 차이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 인문학 연구소 관계자는 “인문한국 사업이 종료되고 후속사업이 없다면 연구인력, 시설, 네트워크, 노하우 등 연구 인프라를 상실하게 된다”며 “인문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연구의 축적 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만큼 아젠다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지원과 안정적 연구환경 보장을 위해 20년 이상의 장기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인문한국지원사업이 제시한 ‘세계적 연구소 육성’이라는 목적은 특정기간을 두고 지원하는 것이 아닌 최소 30년 이상의 장기적인 지속성을 통해서만 가능한 영역”이라며 “인문학 연구를 선도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새로운 연구소 지원사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인류가 직면한 대표적인 문제 중 생태 위기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발생하는 숱한 문제들은 과학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다”며 “이런 문제들은 인문학적 해결책들이 병행돼야 한다. 따라서 멀리 보고 차분히 투자하는 안목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인문학의 중요성과 정부의 투자 필요성을 설명했다.

국가 차원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인문학이 위축될수록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진입하는 인재들도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콘텐츠 창작에 필요한 지식과 스토리의 보고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문학 연구와 교육에 대한 지원을 줄이게 되면 대학의 학부 교육에서 인문학의 공간이 더욱 좁아져 학부생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축적할 기회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국내 대학 학부의 인문학 전공 졸업생들의 숫자 감소와 함께 문화콘텐츠산업에 필요한 인재들의 숫자도 대폭 축소돼 한국의 문화콘텐츠 산업의 경쟁력 제고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제7회 동북아해역 인문네트워크 국제학술대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립부경대에서 2024년 5월 30일과 31일 양일간 일정으로 열린 국제학술대회는 ‘동북아해역 인문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한국을 위시한 동북아 지역의 대학과 연구기관 등 20개 기관이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국립부경대를 비롯한 12개 대학과 기관이 참여했고, 중화권에서는 하문대를 비롯한 4개의 대학이 참여했다. 일본에서는 도쿄대를 포함한 4개 대학·연구기관이 참여하는 등 총 20개 기관의 해역 인문학 관련 학자들이 발표와 토론을 펼쳤다. (사진=국립부경대 제공)
제7회 동북아해역 인문네트워크 국제학술대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립부경대에서 2024년 5월 30일과 31일 양일간 일정으로 열린 국제학술대회는 ‘동북아해역 인문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한국을 위시한 동북아 지역의 대학과 연구기관 등 20개 기관이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국립부경대를 비롯한 12개 대학과 기관이 참여했고, 중화권에서는 하문대를 비롯한 4개의 대학이 참여했다. 일본에서는 도쿄대를 포함한 4개 대학·연구기관이 참여하는 등 총 20개 기관의 해역 인문학 관련 학자들이 발표와 토론을 펼쳤다. (사진=국립부경대 제공)

이렇듯 인문한국지원사업의 지속을 주장하는 의견이 대세인 가운데 일각에서는 단순히 사업의 지속성만 논의할 것이 아니라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들은 “인문한국지원사업이 인문학 분야 최대 난제인 취업난 해소와 인문학 분야의 교육 및 연구역량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토대를 만든 것은 맞지만 보다 적극적인 성과 공유, 플랫폼 구축, 공동연구 강화 등이 부족했다며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지적한 한 연구자는 “그동안 HK, HK+사업을 통해 훌륭한 성과가 많이 나왔지만 그 성과를 확인하는 일은 쉽지 않다”며 “인문한국사업을 통해 쌓아온 성과를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도록 널리 홍보하고, 관심 분야를 쉽게 검색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인문한국지원사업은 ‘인문한국지원사업 홈페이지(https://hk.nrf.re.kr/main.do)’를 통해 각 사업단의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검색하고자 하는 분야가 있더라도 관련 연구를 수행한 대학과 연구소의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다.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외국어 지원도 되지 않아 외국에서 자료로 활용하기도 어렵다.

공동연구 강화에 대한 의견도 있었다. 또 다른 연구자는 “기존의 HK사업의 틀을 벗어나 각 연구소 간의 공동 아젠다를 수립하고, 컨소시엄 형태의 연구를 시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몇몇 핵심의제를 선정해 주제에 맞는 지역이나 권역, 주제별 연구 연합체를 구축해 공동연구를 진행한다면 개별 연구소 규모에서 할 수 없던 연구도 진행할 수 있어 보다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처럼 국내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의 위기’라 일컬어지는 현 상황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대응을 강구하며 인문학이 보다 발전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도 모색하고 있었다. 국내 인문학 연구를 대표하고 있는 41개 연구소 모임인 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의 이찬규 회장은 “우리 사회가 인문학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만들어지는 사회는 반이성적이고, 자본 중심, 기술 중심, 권력 중심의 사회가 되고, 이에 대한 피해는 결국 일반 대중이 받게 된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추구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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