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오픈코스웨어 밀려와…지리적 경계 붕괴, 2026년 초고령화사회 ‘평생교육 시대’ 본격 개막

『만약 2030년에 현재 400여개에 달하는 대학이 200여개로 줄어든다면? 소위 일컫는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일류대학이 사라진다면?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대학교직원이 몇 달치 월급을 못 받는 일이 발생한다면? 아무리 현재 처한 대학의 상황이 최악의 위기라 해도 이렇게까지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불과 15년 이내에 밀려 올 외부 환경변화의 거대한 물결은 거스를 수 없다. 기업이나 국가와 마찬가지로 대학도 미래의 '메가트렌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왜냐면 이러한 메가트렌드가 대학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대학의 기능과 역할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들이 예견하는 미래의 모습. 메가트렌드는 대부분의 미래학자들이 동의하는 '거대하고 분명한 흐름'으로서, 개인이나 국가가 저항한다고 그 물결이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현재 국내 대학들은 학령인구의 감소와 그로 인한 대학구조개혁에 매몰돼, 세계 대학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거시 미래에 대한 대비에 소홀하다는 점이다. 이에 본지는 '대학이 사라진다 - 미래 위기 진단과 대응방안'이라는 기획시리즈를 통해 현재의 위기에 매몰된 대학 관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세계의 여러 대학들과 보조를 맞춰 먼 미래에 대비하는 시각과 전략을 7회에 걸쳐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싣는 순서
<1> 미래 메가트렌드 톱10
<2> 고등교육의 현재와 미래
<3> 미래전략①-교육소비자 중심의 교육체제로 개편해야
<4> 미래전략②-핵심역량에 집중하라
<5> 미래전략③-네트워크로 대응하라
<6> 미래전략④-'내부의 적' 해소가 먼저다
<7> [특별 지상간담회] 대학의 미래전략에 대한 전문가 좌담

[한국대학신문 송보배‧이재 기자]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급속한 변화의 물결은 ‘대학의 시대’에 종말을 예고한다. 대학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존할 방도가 있다면 그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희망의 가장 중요한 단서는 ‘교육소비자’에 있다. 대학의 교육소비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급격한 변화가 예상된다. 먼저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으로 대표되는 교육소비자의 성향 변화다. 이는 디지털 원주민에 적합한 원격교육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두 번째는 교육소비자의 범위 변화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6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화사회에 접어든다. 박유성 고려대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71년생의 평균적인 사망 시점은 97.6세다. 100세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수명은 길고 변화는 급격하게 진행된다. 필연적으로 ‘평생교육’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노인층을 비롯한 성인인구는 교육소비자의 주력으로 고등교육기관에 흡수될 수 있다. 한편 ‘원격교육’, ‘평생교육’과 더불어 교육의 내용도 변화가 예고된다. 정보의 범람 시대에 단순지식이 큰 의미를 갖긴 어렵다. 대학들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는 단순지식이 아닌 지식활용능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원격교육‧거꾸로 학습…대학 미래 좌우할 ‘양날의 검’ = 교육소비자는 MIT의 강의를 선호할까, 서울대의 강의를 더 선호할까. 국내 대학들이 세계 명문대와 경쟁해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

국경을 초월한 교육 콘텐츠가 밀려오고 있다. MIT는 오픈코스웨어에 총 1400여 개 강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매월 140만 명이 웹을 통해 이 무료 강좌를 수강한다. 지금까지 국경과 지역 경계를 울타리 삼아 국제화 경쟁의 안전지대에 있던 대학이 세계 대학들과의 경쟁에 여지없이 노출되고 있다. 지리적 경계가 허물어지며 총성 없는 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교육콘텐츠를 원격으로 집에 앉아서 쉽고 저렴하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교육소비자가 굳이 비싸고 번거로운 오프라인 대학 콘텐츠를 선택할까. 오프라인 대학의 콘텐츠가 싸고 양 많은 ‘수입과자’에 밀리는 ‘국산과자’의 꼴이 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이 때문에 원격강의는 대학가에 ‘양날의 검’으로 비춰진다. 잘 활용하면 기회지만, 자칫 대학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하지만 원격교육이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데에는 중론이 모아진다. 국내 대학들의 대응과 별개로 세계적으로 밀려오는 원격교육 콘텐츠는 이미 막을 수 없는 파고다. 최근 이에 대응하며 원격교육시스템 구축에 힘쓰는 대학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화여대는 지난해 3월 1일 156개 강좌를 아이튠즈에 오픈했다. 강좌별로 20개 내외의 동영상으로 구성된 코스웨어 8개를 마련해 먼저 서비스를 시작했다. 공개한 분야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예술분야 등이 주류다.

조일현 이화여대 교수학습개발원장은 “기술개발에 따라 대학의 지리적인 한계가 무너지고 있다”며 “외국의 대학교육콘텐츠가 한국으로 들어오는데 이에 대응하지 못하는 대학들은 문을 닫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단순한 ‘원격교육’ 제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대학가의 지적이다. 해외 명문 대학 콘텐츠에 비교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많은 대학들이 원격교육과 오프라인 교육의 장점을 결합한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이다.

한국방송통신대학의 경우 원격교육과 오프라인교육을 겸한다. PC와 모바일을 통한 교육 콘텐츠 제공과 더불어 출석강의를 겸하는 방식이다. 이 대학 관계자는 “‘거꾸로학습(flipped learning)’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 병행 방식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조명 받고 있다”며 “우리 대학은 일부 출석 수업을 진행하며 스터디그룹도 전국적으로 1700개 이상으로 활성화 돼 높은 교육 효과를 보고 있다. 특히 시험은 반드시 오프라인 강의실에서 치러 엄격한 학사 관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화여대 역시 블렌디드 러닝을 준비 중이다. 조 원장은 “더 이상 오프라인 교육만으로는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다. 그렇다고 온라인으로 모든 학습을 다 할 수 없다”며 “블렌디드 러닝은 이 같은 두 교육방식의 가치를 한 캠퍼스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50대 50의 비율로 교육방식을 바꾸는 것이다”고 말했다.

미비한 법적, 제도적 지원은 앞으로 개선해야 할 과제다. 지난달 21일 본지가 개최한 ‘국회 교문위원회 위원장 및 여야 위원 초청 대학 총장 간담회’에서 박춘배 인하대 총장은 “아무리 좋은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만들더라도 지금 현행법 상 학위를 줄 수가 없다”며 법적인 한계를 언급했다.

사이버대학은 정부의 낮은 관심에 발목이 잡혀 있다. 지난해 9월 발표된 논문 ‘사이버대학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도출을 위한 탐색적 연구’에서는 사이버대학이 일반대학과 동일한 고등교육기관으로 지위가 바뀌었음에도 일반대학과 비교해 한 단계 낮은 수준의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논문에서 연구자는 그 원인 중 하나로 정부의 미진한 관심을 지목했다. 정부가 사이버대학을 단지 보충적 고등교육기관으로 인식해 사이버대학에 대한 관심과 예산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평생교육 시대 도래 대학 ‘또다른 기회’ = 학령인구는 감소하지만 노인인구는 증가한다. 2026년이 되면 65세 이상 인구는 5명 중 1명에 달한다. 더불어 정보화 사회에 발맞춰 급변하는 사회로 인해 평생교육의 필요성이 필연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고등교육소비자는 더 이상 20세 신입생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들도 이제 ‘20세 신입생’이 아닌 다른 연령층의 교육소비자에 눈을 돌리고 있다. 군산대의 경우 지난해부터 ‘선취업후진학전형’을 통해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산업체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경력자들이 지원 대상이다. 지난해 23명, 올해 19명이 이 전형을 통해 입학했다.

김동익 군산대  산학협력선도대학(LINC)육성사업단장은 “교육이 필요한 시점에 언제든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우리 대학이 문호를 연 것”이라며 “지금 당장 수요보다 미래를 보고 이 전형을 만들었다. 정부에서 마이스터고 등 정책을 장려하고 있어 몇 년 후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라 재취업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평생교육의 역할은 자연히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강창희 미래와 금융 연구포럼 대표는 저서 ‘당신의 노후는 당신의 부모와 다르다’를 통해 100세 시대의 도래로 정년 후 기간도 기존 10년에서 40년으로 늘어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강 대표는 기존 은퇴 관념과 체면을 버리고 “폐지라도 주울 각오해야 한다”며 재취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미라 서강대 교수(평생교육원)도 평생교육의 개념은 절대 ‘소일거리’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김 교수는 “초고령화사회는 1인 청년이 8~9명 노인 보살펴야 한다. 불가능하다. 노년층도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며 “노년층은 평생교육이 필요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란 거 예측 못했다. 60세가 넘으면 약간의 존경을 받으며 소일거리로 여생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붓글씨, 춤, 노래 등이다. 이들에게 평생교육의 개념을 다시 정립시켜야 한다. 150세까지 살아야 하는데 60세에 정년퇴임해서 70년 이상 그렇게 살 수 없다고 애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강대 평생교육원의 경우 지난해 구로구청과 함께 산전산모심리상담사 교육을 진행한 바 있다. 은퇴세대가 가진 원숙한 경험을 직업교육으로 흡수한 사례다. 이처럼 재취업 등 사회수요가 평생교육에 포함돼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폭탄주? 칵테일?” 융합 고심하는 대학들 =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도 문제다. 발달하는 정보화 사회는 단순 지식을 무용케 만든다. 포털에서 1분 만에 검색해 나오는 지식을 굳이 대학에서 배울 필요는 없다. 단순 지식이 아닌 지식을 종합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유엔미래포럼 등에서는 미래세대의 핵심 역량으로 창의성을 지목한 바 있다. 교육의 목표도 10년 안에 창의성과 문화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학들이 꺼내든 카드는 ‘융합’이다. 융합은 이미 21세기 과학기술의 주요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5월 열린 서울포럼에서도 기술혁신 3대 키워드로 ‘창조‧융합‧도전’을 제시했다. 서울대는 2009년 3월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을 개원했고, 국민대도 올해 자동차융합학과, 자동차IT융합학과, 바이오발효융합학과를 신설했다.

김 교수는 “평생교육에서도 통섭이나 융합이란 말이 많다”며 “21세기형 인재는 t자형 인재다. 여러 분야에 두루 알고 내 분야는 많이 알아야 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연구한 것을 통합하지 못하면 혼자 삽질하는 격”이라 말했다.

김 단장도 “지금까지는 교수들이 대학 다니면서 당시 지도받았던 교수로부터 배웠던 방법을 변형 없이 그대로 학생에게 전수했다면,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며 “기존 학과들도 융합의 방향으로 재편성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융합은 이제 막 시행 단계다. 대학들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걸음마’를 연습하고 있다. 앞으로 시행착오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소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대학들은 교육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반영할 궁리를 해야 한다. 앨빈 토플러가 ‘부의 미래’에서 지적한 “10마일로 기어가는 교육체계가 100마일로 달리는 기업에 취업하려는 학생들을 준비시킬 수 있겠는가?”는 의문은 지금 대학에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대학들이 변화를 궁리하지 못한다면, 밀려오는 세계 대학의 포화에 견뎌낼 재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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