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사’시절은 이제 없어, 새로운 미래 개척할 때

▲ 지난 10일 열렸던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전 농구 경기. 정기전은 사회에서 관심을 가지는 얼마 남지 않은 대학 경기 중 하나다. 고려대가 연세대를 61대58로 이겼다.(사진=이재익 기자)

[한국대학신문 이재익 기자] 대학스포츠가 위기를 맞은 지 오래됐다.  20년 전 ‘응답하라 1994’ 시절 화려했던 대학스포츠는 지금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들의 관심은 대학스포츠에서 프로로 넘어갔다. 관심이 줄어들자 운동부를 운영하던 대학도 운동부에 대한 지원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를 가장 많이 보는 것은 학생선수들이다. 체육특기생으로 혜택을 받으며 들어왔지만 그들의 미래가 프로까지 보장되는 경우는 드물다. 학생선수들의 취업률은 절반에 미치지 못하며 종목에 따라 0에 가까운 취업률을 보일 때도 있다.

학생선수들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와 대학들은 다양한 방책들을 마련하고 있다. 학교체육진흥법도 그중 하나다. 학습권 보장이 점차 이뤄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 학습권 보장을 위해 리그제로 경기를 운영하는 것은 선수들을 더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는다는 지적도 있다. 대학스포츠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가 창설되어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대학스포츠가 위기를 넘어 중흥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절반도 안 되는 취업률, 학습권 보장은 정말 제대로 되고 있나
2014년 프로야구 드래프트 현장. 10라운드까지 총 103명이 지명됐지만 대학 출신 선수들의 지명은 40명이었다.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다.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것도 그리 좋은 분위기가 아니다.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가 해체를 선언하면서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농구도 마찬가지다. 올해 프로농구 드래프트에서는 21명의 대학선수가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았다. 2013년 대학농구리그에 참가한 선수는 12개 대학 188명이었다. 프로농구 2015-2016시즌부터 외국인 선수가 2쿼터와 4쿼터에 2명씩 출전하게 되면서 국내 선수들은 더욱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대학선수들에게 돌아가리라 예상된다.

프로 진출만이 선수들의 진로는 아니다. 하지만 선수들의 전체 취업률을 살펴봐도 상황은 심각하다.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통계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2년 8월 졸업까지 축구, 농구 등 10개 주요 종목의 대학선수 평균 취업률은 45.2%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예전에 비해 운동부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특기생으로 진학하고 있다. 지난해 6월을 기준으로 88개 대학에서 3500여명을 특기생으로 모집했다. 현재 대학에 소속된 선수 수는 1만 4000여명이다. 뽑아서 운동을 하도록 하지만 그 이후는 모른다.

더 심각한 통계가 제시된 적도 있다. 2012년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은 “대한체육회로부터 제출받은 ‘대학선수 졸업 후 진로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2년 7월까지 대학을 졸업한 선수는 4113명으로 그중 24.7%인 1017명만 취업에 성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래를 걱정하며 자퇴를 결심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취업률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통계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학선수들의 취업이 심각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취업률 저하의 원인을 선수들의 학습권이 보장되지 못했던 환경이라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위해 2012년 학교체육진흥법이 공포됐다. 학생선수들의 학습권보장이 주요 내용으로 초·중등학교 선수들부터 수업에 들어가고 있다. 대학생 선수들도 학습권 보장을 받기 시작했다. 대학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오전에 수업을 하고 오후에 훈련을 하는 식이다. 방학에 따로 학습캠프를 차리기도 한다.

하지만 팀 감독과 코치들은 성적이 우선이다. A대 교수는 “가급적 오전에 운동을 못하도록 지침을 내려도 감독 입장에서는 그게 안 된다.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목이 달아난다. 감독이 나오라면 선수는 나갈 수밖에 없다. 학습권 보장을 하고는 있지만 쉽사리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 말했다.

■ 체제에 순응했던 학생선수들은 누가 책임지나 = 무엇이 문제든 결국 피해를 받는 것은 학생선수들이다.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겉돈다. B대 체육교육과 일반 학생인 S씨는 “일반 학생들과 체육특기생은 서로 어울리기 힘들다. 수업 말고는 마주칠 일이 별로 없으니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힘겨워한다. 고등학교 때 가끔 수업에 들어오면 뒤에서 자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일단 어울리더라도 다른 문제들이 남아있다. 기초 지식의 차이도 그 중 하나다. C대 스포츠 관련 동아리에 소속된 K씨는 “선수들과 함께한 모임에서 즐겁게 이야기하던 중 ‘조삼모사’이야기가 나왔고 다들 웃었다. 나중에 선수 동생이 따로 나와서 조삼모사가 뭐냐고 묻더라. 무슨 뜻인지 모르는데 다들 웃으니 모르는 척 할 수 없어 그냥 따라 웃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운동 말고 다른 사회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경직된 상명하복 문화에 익숙해진 것도 문제다. 동성끼리만 생활하며 이성관계를 제대로 알아가지 못하는 것도 지적된다. 캠퍼스커플이 되었지만 서로의 대화가 통하지 않아 쉽게 헤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여자 선수들은 더 문제다.

한국스포츠심리연구원장인 서강대 정용철 교수는 “중요한 것은 사회성이다. 일반 학생들과 관계 맺는 능력이 떨어진다. 지도자들은 운동에 집중하라고 일부러 차단한다. 선수의 미래를 풍부하게 할 능력도 차단된다. 여자 핸드볼 선수 중에는 손을 잡으면 결혼해야하는 줄 알았던 선수도 있었다. 여자 엘리트 선수들 중에도 결혼을 잘못한 케이스들이 많다. 운동부 외의 사람과 차단되다보니 사회성을 기르는 시기를 놓친 것”이라 말했다.

학교 성적에 있어서도 일반 학생과 선수간의 격차는 이미 벌어진 상태다. 같은 수업을 듣게 되면 성적은 하위권으로 쳐질 수밖에 없다. 고려대 김매이 교수는 “아무래도 그동안 쌓은 수준이 다르다보니 선수들이 밑에서 깔아주는 역할을 하게 될 때가 많았다. 현재 고려대는 특기생들을 위한 전공수업을 따로 두면서 그런 일을 방지하고 있다. 하지만 교직 이수 등 다른 학생과 부득이하게 수업을 같이 듣게 되는 경우는 아직 문제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학생선수들이 자신의 진로를 다양하게 모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양대 조성식 교수는 “그동안은 운동으로 승부를 보려했지만 프로로 가게 되는 선수는 소수다. 운동으로 성공 못하면 다른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장은 지금 구조로 갈 수밖에 없지만 대학에서도 직업 교육과 사회적응 훈련이 실시해야 한다. 남자 선수들은 졸업하고 군대를 간다. 이미 졸업을 해서 대학이 책임지기 어렵다. 군대에서 뭔가 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대학이 미리 대비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성균관대 배구부의 연습경기. 지난 9월 11일 열린 남자 프로배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성균관대 배구부는 드래프트에 참가한 5명 전원이 구단의 지명을 받았다. 배구 명문답게 한양대와 더불어 가장 많은 숫자다. 배구 드래프트 전체 지명선수는 총 28명. 성균관대 야구부는 3명, 농구부는 1명이 지명을 받았다.(사진=이재익 기자)


■ 대학평가에는 반영되지 않는 운동부 지표 =
대학이 관심을 적게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지적된다. 지난 6월 19일 대학구조개혁에 따른 예체능계열의 대학평가에 대한 개선대책을 찾으려는 정책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대학운동부 활성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열린 토론회에서는 대학평가에 운동부에 대한 지표를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연이어 들렸다.

참석자들은 정부 대학평가에 대학운동부 전임지도자 확보율이나 학생선수 전용 과정 운영, 학생선수 수, 대회 입상 실적 등 운동부 지표가 추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체육특기자 동일계 선발 폐지 등의 요구도 나왔다.

발제를 맡았던 허정훈 중앙대 스포츠단장은 “학령인구가 줄면서 대학구조조정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에 대학에 재정압박이 들어오면서 군살을 빼야하는데 타겟이 되는 것이 스포츠 재정이다. 지표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학평가 지표에 포함되지 않는 현실이 대학스포츠의 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허 단장은 당시 토론회에서 “현실이 어렵지만 온당하게 평가받고 싶다”며 대학의 직접 재정지원 혜택 가능성이 높은 교육부 주관 대학평가에 대학 운동부 평가지표 추가를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교육부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춘란 교육부 대학정책국장은 “대학구조개혁 평가가 대학의 전체적인 노력을 보는 방향으로 잡혀있기 때문에 특정 분야만 가져가는 것은 용이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특성화부분은 별도 평가할 것이고 체육특기자 정원 외 선발이나 동일계 선발 폐지는 현재 교육부 방향과 차이가 있어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학스포츠를 평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일부만 보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운동이 가진 의미를 단순한 대학홍보수단으로 보고 숫자로 평가받기를 바라는 시각 자체가 원래 운동이 가진 의미를 좁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성균관대 엄한주 스포츠과학대학장은 “대학스포츠의 가치는 교육에 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체육 과목은 교육적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대학평가라는 현상에 발맞춰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위기 타파를 위한 노력들, 희망은 있다 = 여러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대학스포츠를 정상화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대학 4학년이 아니더라도 프로에 진출할 수 있도록 축구나 농구 등에서 얼리드래프트를 실시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당장 프로에서 활동하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대학무대에서 실전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다. 지난해 U리그 왕중왕전 우승과 올해 FA컵 8강 진출, 권역별 U리그 전승이라는 성적을 낸 영남대 축구부의 김병수 감독도 대학이 고등학교와 프로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어릴 때부터 운동만 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공부를 병행하도록 하는 학교체육진흥법이 발족되었다. 전문가들은 초중고 시절에 공부와 운동을 함께했던 선수들이 대학에 들어오게 됐을 때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학생선수들도 점차 운동과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학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10년 창설돼 5년차를 맞은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도 그 노력 중 하나다. 현재 84개 대학이 참여하고 있다. 대학운동부에 대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가장 큰 목표라 할 수 있다. 농구나 축구, 배구 등에서 리그제를 실시하고 <스포츠 취업백서>를 발간하며 진로 탐색에 대해 도움을 주고 있다. 선수들의 학습권 신장과 함께 일반 학생들의 서포터즈 활동을 장려하기도 한다.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김 사무처장은 “인터넷 방송이나 웹진 등을 통해 대학스포츠를 홍보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 인지도를 다시 높이기 위한 노력이다. 일반인과의 스킨십이 대학스포츠가 발전하는데 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학생선수들의 취업개선 방안 등도 계속해서 논의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도 있다. 대학 안에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스포츠 시스템의 본질적 개선이 이뤄졌을 때 대학스포츠도 나아갈 길이 보인다는 것이다.

스포츠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국민대 이대택 교수는 “예전에 인위적으로 땅을 파서 물을 채웠다. 물도 넣고 물고기도 넣었더니 번식이 잘됐다. 호수처럼 보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바닥이 드러나자 물고기들은 허덕이며 자기들끼리 싸운다. 체육계가 그 꼴이다. 담합에 부정에 폭력, 성희롱까지. 체제전환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군사정권의 인위적 계획 하에 만들어진 판이다. 깨끗한 물이 다시 들어오는 것은 힘들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금메달에 목매는 시스템을 개정할 때 대한민국 스포츠가 바뀌고 대학스포츠가 바뀔 것이라 주장한다. 이 교수는 “연금제도를 바꿔서 경기에 참여한 모든 선수들에게 성적별로 포인트를 주고 그 포인트를 가지고 은퇴 후에 연금을 받도록 해야 한다. 협회나 연맹이 선수의 위에 있는 구조를 없애고 수평적 구조도 필요하다. 자생이 필요하도록 정부가 처음에 투자한 뒤 시스템이 바뀌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학생선수들의 학습권과 관련해 많은 대학들이 여러 방안들을 강구하고 있다. 단국대 선수들로 구성된 국제스포츠학과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단국대는 8개 종목의 감독과 코치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해 교육에 중점을 두고 지도하도록 했다.(사진=단국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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