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박 7일 혁신 여정 떠난 ‘ASU 공동 벤치마킹 교육연수단’
“ASU와 미네르바 대학에서 말하는 혁신 벤치마킹할 것”
“‘포용성’과 혁신의 매개체가 기술이라는 신념이 ASU 혁신의 주춧돌”
“‘한국에서 한 학과 정도는 미네르바 대학 같은 모델을 적용 해봄직”
[한국대학신문 장혜승 기자]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은 언제나 넓고 크기만 하다. 교육 혁신이라는 이상으로 가기 위한 길은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혁신을 위한 노력조차 무의미한 것일까.
여기 교육 혁신이라는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20년 동안 치열하게 싸워온 대학이 있다. 바로 미국의 ‘애리조나주립대(ASU)’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세계적 혁신 대학으로 우뚝선 ASU지만, 처음부터 잘 나가는 대학은 아니었다. ASU는 20여 년간 혁신을 위해 천천히, 그리고 치열하게 준비한 끝에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됐다.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미국의 최상위권 대학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가장 혁신적인 대학’에서 8년 연속 1위를 차지하는 그들의 현재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7일부터 13일까지 기자는 본지가 주관한 ‘ASU 공동 벤치마킹 교육연수단’에 현지 동행기자로 미국 애리조나에 특파됐다. 국내 대학 교직원들로 구성된 교육연수단이 ‘혁신으로 가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 기자도 동참하게 됐다.
■ ASU 혁신, 현실과 이상 사이 = 지난 7일 교육연수단은 두 팀으로 나뉘어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각각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과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거쳐, 피닉스 스카이 하버 공항에 도착했다.
12시간의 비행 시간 끝에 중간 경유지인 시애틀 공항에 도착하자 쌀쌀한 한기가 급습했다. 비행기에서 벗고 있었던 두꺼운 겉옷을 다시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창 밖을 내다보자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약한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옷깃을 단단히 여민 채로 다시 국내선 비행기에 탑승했다. 3시간의 비행을 거쳐 마침내 도착한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공항을 나서자 따뜻한 기온이 온몸을 감쌌다. 여름 최고기온은 섭씨 40도를 웃돌고, 겨울에도 섭씨 20도 밑으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는 애리조나주의 온화한 날씨가 움츠렸던 어깨를 저절로 펴게 만들었다.
앞으로 펼쳐질 교육연수단의 일정도 온탕과 냉탕을 오갔던 미국 현지의 날씨처럼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김현우 조선대 기획조정 부실장은 “한국 대학들도 지난 3주기 대학역량진단평가 전부터 교육혁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혁신으로 유명한 ASU가 미래교육으로 진일보하는 초석이 돼줄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박지연 경성대 대학혁신지원사업단 부단장 역시 “코로나19로 국내 대학들이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혁신해야 되는 현실이 됐다”며 “애리조나주립대나 미네르바대학에서 말하는 혁신이 어떤 게 있는지 보고 우리 대학 상황에 맞게 최대한 벤치마킹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ASU 공동 벤치마킹 교육연수 프로그램은 코로나19 이후 3년 만의 방문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하듯 환대 속에 시작됐다. 현재 ASU에서 총장의 핵심 고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미누 아이프(Minu Ipe) 박사는 “한국에서 여러 번 동료들이 왔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만날 수 없다가 다시 이번 연수를 할 수 있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ASU의 개혁과 이를 뒷받침한 디자인을 설명하고 우리 대학에서 어떻게 혁신을 발전해나가고 있는지 소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틀간 ASU의 각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강연자들은 20년 동안 ASU가 어떻게 지금의 혁신을 이룩했는지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강연자의 발표는 각각 다른 내용이었지만 이들의 태도에서는 하나의 공통점을 읽을 수 있었다. ‘포용성’이었다. 전통적 대학의 역할에서 벗어나 누구든지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곳에 있든지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 ASU의 비전이자 교육 철학이라는 설명이다.
포용성뿐만 아니라 혁신의 매개체가 기술이라는 신념 또한 ASU 혁신의 주춧돌이었다. 이를 보여주는 지표가 ASU 내부에 설치된 가상현실(VR) 체험 공간 ‘드림스케이프’다. ASU 생물학과 학생들은 한 학기에 열 번 드림스케이프 가상공간 수업을 수강해야 한다. ASU 연수 첫날 연수단은 드림스케이프의 가상현실 체험을 통해 실제로 외계인이 되어보기도 했다.
연수단의 반응은 엇갈렸다. 김현우 조선대 기획조정 부실장은 “체험하기 전에는 단순히 게임만 하는 줄 알았는데 실험하기 어려운 것들을 가상현실을 통해 체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대학에서 무조건 적용해야 될 프로그램들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동수 부경대 기획처 부처장은 “신기하긴 한데 헤드셋과 기기를 착용하고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게 실제 생물학 수업과 어떻게 연관되고 어떤 학습적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언급했다.
ASU의 도서관과 같은 인프라에 대한 호평도 있었다. ASU 연수 둘째날 일정이 끝난 후 이은정 제주대 기획처 전략기획과 선임연구원은 도서관을 견학했다. 이 연구원은 “도서관이라고 해서 무조건 조용하고 정숙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고 서가 앞에 조명이 달려 있어서 잘 보이는 게 신기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 미네르바 대학, 한국에 존재하기 어렵지만 한 발짝 나가봐야 = 이번 연수단 일정의 두 가지 축 중 하나인 미네르바 대학은 한국에 존재하기 어려운 혁신모델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한국 대학에서도 한 학과 정도는 미네르바대학 같은 모델을 적용 해봄직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현지 시간 11일 오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미네르바 대학 본부에서 이뤄진 ASU 공동 벤치마킹 교육연수단과 테리 캐논 전 미네르바 대학 총장과의 만남은 수수께끼와도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테리 캐논 전 총장은 미네르바 대학의 설립자이자 현 마이크 매기 총장의 보좌역으로 알려져 있다.
미네르바 대학의 교육 목표는 문제 해결 능력과 비판적 사고방식을 갖춘 인재를 만드는 데 있다. 미네르바 대학의 대표적 교육과정도 문제해결형 능력 배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네르바 대학 학생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첫해를 보낸 뒤 7개 도시에서 1학기씩 돌며 문제해결형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한다. 이는 미네르바 대학이 2022년 세계 100대 혁신 대학평가에서 스탠포드대 등 명문대들을 제치고 1위에 선정된 비결과도 맞닿아 있다.
테리 캐논 전 총장의 강연이 끝난 뒤 연수단의 질문이 쏟아졌다. 예정된 시간 1시간을 넘긴 후에도 테리 캐논 전 총장은 연수단의 질문에 답변하느라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이날은 미국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로 공휴일이었다.
세 가지 질문을 연달아 쏟아낸 김효석 건국대 혁신사업단 센터장은 “시간이 다소 짧았으나 대학의 방향성이나 운영방침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 너무 좋았다”며 건국대 기념품을 들고 테리 캐논 전 총장과 기념촬영을 했다.
김동수 부경대 기획처 부처장은 “미네르바대학에는 한국 대학의 일반적인 교수가 없는 것 같아 이 부분에 대해 물어보려 했는데 시간이 안돼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며 “교수가 없는데도 학생들이 이렇게 성공적으로 사회진출하는 게 놀라웠다”고 말했다.
김현우 조선대 기획조정 부실장은 “미네르바 대학 시스템을 한국의 지방대학에 적용하는 게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학과 정도는 그런 시스템을 적용한다면 취업도 그렇고 유의미한 성과가 생길 것 같다”고 진단했다.
■ “우리가 못하더라도 경험해봐야…경험 없이는 구현도 못해” = ASU와 미네르바 대학은 정말 한국 대학에 적용하기 힘든 이상이기만 할까. 재정자립도가 낮은 국내 대학의 현실, ‘재정지원’을 볼모로 각종 지원사업을 쏟아내는 교육부,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극심한 지역불균형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국에서도 ASU와 미네르바대학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ASU 벤치마킹 교육연수단 프로그램은 ‘공허한 메아리’일까. 그렇지 않다. ASU 교육연수단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길에 오르며 다시 연수단에게 5박 7일간의 연수를 마무리하는 소감을 물었다.
김효석 건국대 혁신사업단 센터장은 “ASU는 첫날 오전까지는 구성원들의 혁신 의지와 조직에 대한 방향성을 확인하는 데 충분했지만 보다 더 실질적인 프로그램이 강화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이번 연수를 통해 건대에 △프론티어 인력에 대한 제도 검토 △혁신 조직 운영안 검토 △온라인 교육 플랫폼 확산 검토 △기부 문화 변경 △차세대 정보화시스템 구축 반영 △지역사회 혁신 협업 프로그램 운영 검토 △해외 혁신대학 협업 프로그램 검토 등을 접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박지연 경성대 대학혁신지원사업단 부단장의 소감을 통해서는 미국 입국 첫날 느꼈던 현실과 이상 사이 간극을 메울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ASU의 드림스케이프 같은 가상현실을 우리도 하고는 싶지만 그 정도 재정 확충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못하더라도 경험해본 건 좋았어요. 나중에라도 경험해보지 못하고는 구현을 못하니까. 잘된 사례를 봐야 10년, 20년이 걸려도 할 수 있으니 당장은 받아들이지 못하겠지만 체험한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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