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킬러 문항’ 수능 배제 지시에 “올해 수능 ‘물수능’ 될 것” 논란 일어
민주당 “수험생·학부모 혼란 야기” 비판…국힘 “공교육 정상화·사교육비 절감 취지” 반박
입시전문가, ‘킬러 문항’ 교과서·EBS 교재 지문으로 인용될 가능성 높아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5개월 앞두고 정부가 ‘킬러문항’ 등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을 수능에서 배제하기로 하면서 수험생들 사이에 올해 수능의 난이도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대한민국 대통령실)

[한국대학신문 임지연 기자]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5개월 앞두고 정부가 ‘킬러문항’을 포함한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을 수능에서 배제하기로 하는 등  ‘공정 수능’을 위한 수능의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되면서 수험생들 사이에 올해 수능의 난이도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취지는 공교육 강화·사교육비 절감이었지만, 교육계에서는 이른바 ‘물수능’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입시전문가들 역시 “변별력을 확보하는 데 쓰이는 핵심 문항이 교과서나 EBS 교재 지문으로 인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올해 수능 난이도가 쉬워질 것이라는 교육계 해석에 힘을 실었다. 교육 현장에서는 “당장 치를 9월 모평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하루 빨리 제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킬러문항’ 배제는 15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교육개혁 관련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처음 언급됐다. 이 부총리가 보고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수능 변별력은 갖추되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했다”고 전한 것이다. 비문학 국어 문제와 수학, 탐구영역 등에서의 융합형 문제가 매년 ‘킬러 문항’으로 불리며 수능 난이도를 높이고 있어 사교육비 증가의 원인이 된다는 이유다.

하지만 킬러문항이 사라지고 비문학 지문 난이도가 낮아지면 변별력 상실로 재수생이 양산되고, 사교육 시장이 강화되는 역효과가 나올 수 있다. 또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는 학생이 증가할 경우 오히려 수험생 간 경쟁이 고교 내신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통령실과 교육부 등은 “대통령이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수능 등 교육 관련 이슈는 학생과 학부모 등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라 후폭풍이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강득구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준비도 되지 않고 모순된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다가오는 수능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 이번 수능과 관련한 책임도 윤 대통령에게 있다”고 말했다. (사진=강득구 의원실)

■ 민주당 “수험생·학부모 혼란 야기” vs 국힘 “공교육 정상화·사교육비 절감 취지” = 윤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지자 민주당에서는 “부주의한 언행이었다”며 연일 비판을 쏟아냈다. 수능이 다섯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제대로 된 검토나 논의 없이 지시를 내려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공황상태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17일 국회 브리핑에서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아예 다르지 않은 비문학 국어 문제라든지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는 아주 불공정하다”며 “윤 대통령의 지시에 제대로 된 검토와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 복잡한 교육 문제를 쾌도난마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홍성국 민주당 원내대변인 역시 18일 브리핑에서 “교육 문외한인 윤 대통령이 수능 출제방식에 훈수질을 한 것은 잘못”이라며 “수능이 다섯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아무런 준비나 계획도 없이 내지른 지시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공황상태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작년 ‘만 5세 초등입학’을 꺼내 학부모들을 아프게 하고, 올해는 ‘설익은 수능 폭탄’을 꺼내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뜨렸다”며 “준비도 되지 않고 모순된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다가오는 수능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 이번 수능과 관련한 책임도 윤 대통령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에서도 “이미 있는 정책에 애매한 살을 붙여 혼란만 가중한 꼴”이라며 비판했다. 이정미 대표는 19일 당 상무집행위원회의에서 “교육과정 중심, 킬러문항 축소 등은 이미 진행 중인 방향인데, 이미 있는 정책에 애매한 살을 붙여 혼란만 가중시켰다”며 “국가의 중요 대사에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정책을 쏟아내 국민들을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정치권의 비난에 국민의힘은 “‘사교육 없이도 준비할 수 있는 수능’이야말로 공정이자 상식”이라며 사교육이 없어도 수능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8일 논평에서 “사교육이 없어도 수능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원론적이고 상식적인 내용을 두고 민주당은 또다시 선전·선동에 나섰다”며 “수능이 본래 역할대로 학생들의 실력을 정정당당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대체 무엇이 문제냐”고 반박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이태규 의원도 “대통령의 발언은 물수능·불수능 난이도 문제가 아니라 공교육 교육력 제고를 통해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절감을 함께 해결해 보자는 취지”라며 “입시에도 교과서는 사교육보다 강해야 한다는 공정성을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9일에는 교육부와 사교육비 절감과 공교육 경쟁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당정협의회를 열고,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킬러문항’을 배제하는 것을 확정했다.

이 부총리는 “지난 정부가 방치한 사교육 문제,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모두 힘든 와중 학원만 배불리는 사태 등에 대해 대통령이 여러 차례 문제를 지적했다. 그럼에도 신속히 대책을 내놓지 못한 데 대해 교육부 수장으로서 국민 여러분에게 사과드린다”며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은 문제를 출제한다는 것은 학생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점진적, 단계적으로 이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해 학부모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입시전문가 “‘킬러문항’ EBS 교재 지문 인용 가능성 높아” = ‘킬러문항’ 배제 소식에 입시전문가들은 올해 수능 출제 경향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9월 6일 치를 9월 모의평가(모평)가에서 윤 대통령이 언급한 ‘비문학 국어’, ‘과목 융합형 문제’ 등이 9월 모평에서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국어, 수학에서 변별력이 크게 낮아질 가능성 높다”며 “국어, 수학 두 과목 중 과목간 난이도 불균형으로 한 과목에 변별력이 집중될 가능성도 있다. 국어의 1등급 컷이 만점(100점)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영어가 절대평가제인 상황에서 상대평가인 국어, 수학의 비중이 높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임 대표는 “국어 1~17번에 해당하는 공통과목 독서 관련 지문은 변별력을 확보하는 데 쓰이는 핵심 문항이었다”며 “해당 문항 지문이 교과서나 EBS 교재 지문으로 인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봤다. 교육계에서 올해 수능 난이도가 쉬워질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교육 현장에서는 비정상적인 킬러문항은 문제가 되지만 난이도가 있는 킬러문항은 필요하다며, 새로운 형태의 사교육이 더 흥할 수도 있을 것이라 우려했다.

최승후 대화고 교사는 “수능에서 치르는 과목 수를 줄이면서 수능 변별력은 낮아지기 시작했고 등장한 개념이 킬러문항이다. 비정상적인 킬러문항은 문제가 되지만 난이도가 있는 킬러문항은 필요하다”며 “융복합형 문제는 시대적 흐름이다. 또한 수능 시험이 물수능인지 불수능일지 예측은 어렵다. 수능이 쉬워진다고 킬러문항이 사라진다고 사교육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새로운 형태의 사교육이 더 흥할 수도 있다. 킬러 문항이나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이 수능에 출제되지 않으면 문항은 쉬워지고 변별력은 낮아진다”며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면서도 변별력은 유지하겠다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인천의 한 진학담당 교사는 “6월 모평이 지나치게 어렵게 출제됐다는 이유로 평가원에 대한 감사가 추진되고 평가원장이 사퇴하는 등 윤 대통령의 수능 출제 기조 언급 이후 다양한 변수로 올해 수능 출제 경향을 예측하기 무척 어려워졌다”며 “당장 치를 9월 모평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하루 빨리 제시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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