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크로(Michael Crow) 총장 취임 후 17년 간 대학 이끌며 혁신 일궈
학생 ‘선발’ 시스템 버리고 MOOC 강의 공유…빅데이터 활용해 학생 ‘촘촘히’ 관리
4년 임기, 온라인강의 20%제한 등 국내대학 여건 한계…‘사고 전환’ ‘규제 완화’로 풀 문제

애리조나주립대와 한국대학신문이 공동으로 주최한  ‘2019 UCN 혁신대학 해외 벤치마킹 교육’에서 연수단이 지난달 29일과 30일(현지시각) ASU의 혁신사례에 대한 강연을 듣고 있다.
애리조나주립대와 한국대학신문이 공동으로 주최한 ‘2019 UCN 혁신대학 해외 벤치마킹 교육’에서 연수단이 지난달 29일과 30일(현지시각) ASU를 찾아 혁신사례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한국대학신문 이현진 기자] “미국 연방정부에서 20여 년간 대학 지원금을 계속해서 줄여가고 있어요.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에 시작했습니다.”

미국 남서부에서도 사막 지역으로 알려진 애리조나주에 세계적인 혁신대학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대학이 있다는 데는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미국 명문 대학을 떠올리면, 실리콘밸리에 근접해 위치한 스탠퍼드대학·UC버클리·산호세 주립대학이나, 혹은 미국 북동부에 있는 하버드대·예일대·컬럼비아대 등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8개 명문 사립대학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각각 2·3위를 차지한 스탠퍼드대학과 매사추세츠공과대(MIT)를 제치고 이름을 올린 애리조나주립대(Arizona State University; 이하 ASU)의 성장과 혁신의 배경은 무엇일까.  마이클 크로(Michael Crow) ASU 총장의 고문인 미누 아이프(Minu Ipe)는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위기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ASU는 2002년 대학 전체 예산의 90%를 주 정부에서 지원받아 운영했다. 당시 학생 수는 5만5000여 명. 주 정부가 계속해서 대학의 지원금을 줄여나가면서 ASU는 당장의 변화가 필요했다. 이른바 아이비리그나 스탠퍼드대처럼 대학가에서 이미 ‘기득권’을 잡은 대학들은 산업계의 지원이나 기부금이 막대해 정부 지원 감축을 두고 ASU 같은 위기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ASU는 대학의 재정 위기를 뒤집어 혁신의 기회로 삼았다. 현재 우리나라는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정부 주도의 대학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위기감이 더욱 크게 감지되는 대학일수록 정원을 감축하는 구조다. ASU의 행보는 달랐다. 오히려 대폭 늘렸다.

지난달 29일과 30일 ‘2019 UCN 혁신대학 해외 벤치마킹 교육’ 연수단이 찾은 ASU 템피·피닉스 캠퍼스에서 만난 미누 아이프는 첫 강의에서 “ASU는 더 이상 대학이 아닌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130년 전통의 미국 명문대학이 “더 이상 ‘대학’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다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음표로 시작했던 연수는 이내 느낌표로 바뀌었다. 이틀의 연수가 끝난 뒤 비로소 연수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ASU의 성장과 혁신 배경에서 크게 2가지 포인트를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높게 쌓았던 대학의 문을 개방하면서 학생층을 넓힌 점이다. 과거 ‘백인’‘중산층 이상’의 재학생이 차지하던 ASU 캠퍼스는 17년 전 그 담을 완전히 허물었다. ASU는 현재 MOOC를 활용한 교육을 바탕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를 받은 학생들에게 입학권을 부여한다.

두 번째는 미누 아이프가 ‘대학이 아닌 기업’이라고 선언을 했던 ASU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바로 ‘총장’의 역할이다. ASU가 혁신을 이룬 기간으로 강조하는 ‘17년’의 비밀이기도 한 이 기간은 바로 마이클 크로 총장의 재임 기간이다. 4년 임기의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웠던 도전들이 ASU에서는 총장의 설득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ASU는 17년 전과 완전히 바뀌었다. ASU는 현재 정부 지원금이 대학 전체 예산의 9%에 그칠 정도로 자립도를 높였다. 재학생 수는 2019학년도 기준 23만여 명이다.

애리조나주립대 연수 모습.
애리조나주립대 연수 모습.

■ 마이클 크로 총장, 2002년 취임 후 17년간 혁신 추진…독재 아닌 ‘집권’ = 2002년 주 정부의 지원금이 대학 총예산의 90%를 차지하고 있던 시절 마이클 크로 총장이 ASU에 취임했다.

변혁의 시작은 “어떻게 애리조나주의 ‘교육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비롯됐다는 게 ASU의 설명이다. 정답은 간단했다. ASU는 사회적 역할과 경제력을 모두 잡을 수 있는 ‘기업’ 마인드를 꼽았다.

미누 아이프는 “이제 대학들은 단순히 교육과 연구에만 그 기능을 멈출 게 아니라 세계가 당면한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주도해서 해결해야 한다”면서 “대학이 스스로를 기업으로 생각해야 지식 제공에 그치지 않고 공공의 가치를 위한 책임감을 갖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경제적 성공은 저절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취임 직후 마이클 크로 총장은 ‘New American University’라는 새 비전을 설정했다. 지금까지는 ‘전혀’ 없던 새로운 대학을 만들겠다는 ‘엉뚱한’ 제안을 내놓았다. 이후 마이클 크로 총장은 조직 구조 변화와 지능 정보기술의 도입, 창업에 초점을 맞췄다. 교육과정 재구성, 학생들의 개별적 특성을 고려한 적응형 학습 등 전방위적 혁신을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ASU는 파격적인 학과 통폐합을 추진했다. 지난 10년 간 총 70여 개에 달하는 학과를 폐지했다. 대신 사회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30개의 새로운 융합 학과를 개설했다. 미국 연방정부기관이 전공의 벽을 허무는 융합 연구를 장려하면서 ASU의 정부 지원 연구비는 2002년 1억 달러에서 2017년 5억5000만 달러까지 늘었다.

17년이 흘렀다. 마이클 크로 총장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혁신 과정은 대학 구성원들간의 의사소통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그 중심에는 총장이 있는 셈이다.

국내 대학이 그간 학과 통폐합이나 구조조정에서 난항을 겪어왔던 것을 돌이켜보면, ASU의 통폐합과 그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4년 임기의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총장이 ‘완전히’ 새로운 대학으로의 혁신을 꾸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연수 과정에서 만난 추창연 산호세주립대 교수는 “미국에서는 대학 총장 임기가 대체로 길다. 미국 명문대학인 스탠퍼드대학의 존 헤네시(John L. Hennessy) 전임 총장도 2000년부터 16년간 재임하며 대학을 이끌었다. 대학 운영이란 게 단기간에 승부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산호세주립대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애리조나주립대의 에드플러스(EdPlus) 빌딩.  에드플러스는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학습모델을 선보이고 있는 ASU가 학생들의 학습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센터’ 역할을 하는 곳으로 애리조나주 스콧데일에 있는 스카이송(SkySong)이란 교육·연구·창업단지 내 위치해 있다.
애리조나주립대의 에드플러스(EdPlus) 빌딩. 에드플러스는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학습모델을 선보이고 있는 ASU가 학생들의 학습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센터’ 역할을 하는 곳으로 애리조나주 스콧데일에 있는 스카이송(SkySong)이란 교육·연구·창업단지 내 위치해 있다.

■ 정보화 기술 기반으로 ‘원격수업’ 십분 활용한 GFA…학생 ‘선발’ 아닌 ‘포용’으로 = ASU가 혁신을 이루는 데는 교육 방식의 변화가 큰 역할을 했다. 대규모 수강자를 부르는 원격수업이다. 정보화 기술을 기반으로 ‘열린’ 대학을 표방한 것이 학생들을 끌어들였다. 학생의 대상을 소수 엘리트 집단이 아니라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받아들이는 인클루전(inclusion, 포섭)의 정신을 실현한 것이다.

ASU의 ‘Global Freshman Academy(GFA)’ 프로그램은 ASU가 2015년 edX와 협약해 최초로 도입한 학점 인정 프로그램이다. GFA가 제공하는 8개 교과목을 모두 학습하고 이수할 경우, ASU 캠퍼스에서 1학년 과정을 이수한 학생과 동등한 자격을 얻는다. 이 자격을 토대로 2학년부터 대학 캠퍼스에서 수강하면 된다. 학습을 시작하기 전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학습자는 재정적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다. 또한 개방 강좌 형식으로 운영돼 교과목의 내용을 완전히 습득할 때까지 반복적인 학습이 가능하다.

이처럼 MOOC 플랫폼을 활용한 교육을 통해 ASU는 학습자의 접근성을 확실히 높였다. 2002년 5만5000여 명이던 재학생 수는 2019년 기준 180여 개국 23만여 명의 학생들이 수강할 정도로 ‘흥행’했다. 학습자의 진입이 쉽도록 MOOC로 길을 연 ‘열린 대학’ 콘셉트가 교육 혁신을 꾀하고 있는 셈이다.

■ 국내 고등교육의 한계는 대학과 정부가 함께 풀어갈 숙제 = 물론 이외에도 ASU가 펼친 혁신사례는 많다.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해 학생 개인별로 학습 성향과 적성, 진로 등을 조언하는 학습지원시스템도 ‘학생 관리’에 특화된 ASU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김수복 단국대 총장은 “2여 년 전 ASU 혁신에 대해 접한 뒤 관련 프로그램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ASU가 전통적인 ‘대학’에 머무르지 않고 고등교육의 미래지향적 방향을 일궈 나간 것은 단국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됐다. 단국대를 한국의 ASU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전민현 인제대 총장은 “ASU가 교육 혁신을 추진했던 행정 체계나, 구성원 편성 등의 거버넌스는 물론이고 부서나 학과 간 이해가 상충하는 것들은 어떻게 슬기롭게 풀어갔는지 이번 연수에서 얻은 내용을 앞으로의 임기 동안 활용하고 싶다”고 밝혔다.

ASU가 ‘기업’임을 표방하며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해답을 찾아가는 데 대해, 한금윤 삼육대 교수는 “대학을 넘어 세계를 더 좋은 환경으로 만들겠다는 ASU의 교육목표가 인상적이다. ASU는 학생들에게 단순히 대학 졸업장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영감을 주고 있다. ASU가 혁신에 있어서 인정받고 있는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ASU 연수단 중 한 대학 직원은 “정해진 틀에서 이뤄지던 대학 업무에 기계적으로 따르던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대학 교육에 있어서 행정 시스템은 그 어떤 집단보다 관성에 의해 이뤄지기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교육의 발전과 혁신을 위해 끊임없는 고민과 도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데 놀랐다. 스스로 돌아보고 대학 직원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질 기회가 됐다”고 돌아봤다.

한계도 있다. ASU의 혁신사례를 그대로 한국 대학에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 대학은 20% 이상의 학점을 온라인으로 수강할 수 없게 돼 있어 GFA같은 제도는 불가능하다. 대학마다 입학정원이 정해져 있어 ASU처럼 파격적인 학생 포용정책을 펼칠 수 없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4년 주기로 바뀌는 한국 대학의 시스템에서 총장의 장기 재임은 ‘독재’나 ‘비리’ 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고등교육이 필요한 인구가 4억명에 달하게 될 것이라는 ASU의 분석이 우리나라에서는 무색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어질 모든 강연은 여러분의 질문을 핵심으로 이뤄질 예정입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하는 이야기로는 모든 걸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적극적으로 질문해주세요. 질문 속에 답이 있을 수도 있어요”. 이틀간 이뤄진 연수 내내 총 7명의 강연자가 한결같이 강조했던 말이다. 어쩌면 ASU가 이루고 있는 혁신의 키 포인트(Key Point)는 이 말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한국 대학이 품고 있는 질문 속에 해답이 있을 수 있다. “17년 뒤 우리나라에도 한국형 ASU가 나올 수 있을까?” 대학은 물론이고 대학의 ‘정책’을 쥐고 있는 정부도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란 뜻이다.

애리조나주립대 캠퍼스
애리조나주립대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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